“푸하하하ㅋㅋㅋ 보똥! 오늘 약 묵었나??”
"와그라노? 내 아까 묵었다!"
시답잖은 나의 말에 우스갯소리로 지인 언니가 하는 소리다. 나도 오늘 약을 먹었는지 안 먹었는지 감이 안 올 때가 있지만, 아마도 먹었을 거다. 눈뜨면 녹용을 시작으로 무슨 약이든 집어 먹는 게 습관화되어 있어서 빠지진 않았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침에 일어나 눈뜨면 배고파서 주섬주섬 약부터 먹고 보는 건 절대 아니다! 그나저나 장난 삼아 주고받는 말이지만 언제까지 이 알약들을 삼켜야 하나 싶은 생각에 왠지 모르게 이 말이 씁쓸할 때도 있다.
무기력함에 젖어드는 나를 보면서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나약 하디 나약한 내면을 마주하게 되면 아직은 약을 필요로 하는 나임을 인지하게 될 때 참 무어라 말로 형용하기 복잡한 심정이 든다. 혼자 몸이면 괜찮겠지만 가정이 있다 보니 그렇고, 거기에 아이까지 있다 보니 아이 때문에 정신 차려라 자꾸만 다그치는 남편이 미울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 나도 내가 내 맘처럼 움직여지면 좋겠다. 그러나 아직은 그렇게 움직여지질 않는 걸 어째야 좋을지 모르겠다.
남편은 아프면 아프다. 몸이 안 좋으면 안 좋다.라고 말을 하라는데 이건 그냥 “아프다. 몸이 안 좋다.”라고 얘기한다고 상대방이 이해할 수 있는 문제도 내 상태가 설명될 문제도 아니다. 그냥 사람이 진창에 빠지면 살려고 발버둥 쳐야 하는 게 맞는데 우울감에 빠질 땐 그나마도 귀찮은 상태가 된다. 그리고 남편의 듣는 태도는 남보다 못하다. 나를 이해하기 이전에 다그치기 급급하기 때문에 굳이 약을 먹고 있음을 말하지도 않는다. 친절한 카톡이 보호자랍시고 남편에게 병원 예약 문자를 보내줘서 내가 아직도 병원에 다니고 있는 줄 알고 있을 뿐이다.
3년 전 보험 영업에 이어 학습지 교사를 하면서 물론 일은 재밌었지만 재미 뒤에 깔리는 스트레스는 만만치 많았다. 우와우!! 보험은 말할 것도 없고 학습지 역시 실적 실적 실적이었다. 내가 원하는 만큼의 소득을 올리기 위해선 실적을 올려야 했고 그러다 보니 올 초에 들어서자 스트레스가 극에 달했다. 줄였던 약은 점점 늘어나가기 시작했고 용량 또한 늘어갔다. 점점 상태가 심해지자 교수님은 입원 치료를 권했다. 이런 상황을 국장님께 얘기하고 수업을 빼 달라고 얘기했으나 교사 부족을 이유로 6개월이 지나도 교실을 빼주지 않았다.
"보혜 샘 그래서 약 몇 알 먹노?"
"아침에만 8-9알 먹어요."
"얼마 안 먹네. 충분히 하겠네."
"아.. 네.. -_-;;"
난 좀 꼼꼼한 성격이다. 메모도 잘하고 계획도 잘 세우는 편이다. 젠장할. 기다릴 만큼 기다렸다. 괜한 심보가 발동되면서 국장님을 엿 먹이고 싶었다. 일주일 수업 분 교재를 미리 챙겨서 캐비닛에 정리해두고, 노순표와 학부모 연락처, 카드번호, 회원들 특이사항 외 기타 필요한 것들을 메모로 남기고 핸드폰 메모로도 자료를 만들어 나 대신 누가 투입되어도 수업이 될 만큼 만반의 준비를 마친 뒤 외래 가기 전날 운을 띄웠다.
"국장님. 저 잡혀 들어갈지도 몰라요."
그리고 다음 날 아침 외래에 가서 교수님께 입원하겠단 의사를 밝혔고, 지구장님께 내가 만들어 둔 자료를 다 넘겼다. 지구장님과 국장님은 열심히 수습하셨단다.
자의입원은 자유롭기 때문에 핸드폰을 사용할 수 있다. 그런데 잡혀 들어간 척하느라, 또 나를 좋아해 주시는 학부모님들의 연락이 너무 많이 와서 핸드폰을 꺼놓고 살았다. 나의 빈자리를 채운 애먼 신입 선생님의 죽는 곡소리만 여전히 들려오는데 미안하다.
환자의 입원 의사에 따라 이루어지는 자의입원이 정신과 입원 형태 중 보편적으로 가장 많이 이루어지는 입원 형태이다. 그러나 무조건 입원하고 싶다고 해서 입원할 수 있는 건 아니고 전문의의 진료 후 입원이 필요하다고 판단될 때 환자의 입원 의사가 있으면 입원이 이루어지는 게 자의입원이다. 환자의 의사에 따른 입원이기에 퇴원도 자유롭거니와 병동 생활도 그다지 큰 제약이 없어 부담 가질 필요가 없다. 평상시 짧은 상담 시간이 불만이었다면 입원 기간 동안 주치의와 상담할 수 있는 좋은 기회가 될 것이다. 단점이라면 역시 그렇듯 병원생활은 늘 지루하다는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