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화에서 밝혔듯 나의 노동 파트너는 내 초등 아들 친구의 엄마다. 우리는 우연히 윗집, 아랫집 이웃으로 만났고, 아이들이 같은 반이 되며 더욱 가까워졌다. 사실 우리 둘은 엄마들 사이에 아싸에 가까웠다. 나는 언니, 동생하며 남편욕, 애들 걱정하는 거에 취미가 없었고, 그녀도 마찬가지였다. 밖에서 보기에 우리는 대단한 깍쟁이에 말이 없는 아싸였을게다.
처음엔 우리도 아이들 이야기를 했다. 아들의 공부 얘기, 학원 얘기, 유난히 까다로운 서로의 취향과 기준을 나누며 너도 그냥 좋은게 좋은거다가 안되는 사람이라 세상 살기 편하지는 않겠구나 정도의 느낌을 주고 받았다. 그러다 나의 이야기를 시작했다. 꽤나 많은 이야기를 나눈 지 벌써 4년. 곁에 두고 가까이 알아온 관계지만, 우리는 서로가 이전에 어떤 직장에서 정확히 뭘 했던 사람인지, 20-30대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 시시콜콜하게 주고받지는 않았다. 그저 척하면 척. 그냥 스스로를 갈아넣으며 매사에 애를 쓰고 살아왔던 사람인지 한 눈에 알아보았을 뿐이다. 많이 묻지 않았지만 많이 보였다. 아랫사람에게도 말을 잘 못 놓는 탓에 아직도 존대를 하는 나를 언니라고 부르는 그녀에게 왠지 정말 좋은 언니가 되어주고 싶을 때쯤 우리는 서로의 불안을 알아챘다.
그녀도 마흔이라는 무서운 역병을 만났다. 내가 지난 몇 년 간 해결하지 못한 채 보내온 시간들 앞에 그녀도 서있었다. 한번도 멈춘 적 없고 한 번도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적이 없는데 아직 내가 정말 뭘 좋아하는 지 뭘 하고 싶은지 모르는 자의 당황스러움. 그녀의 눈 안에 두려움이 보였다. 그리고 나 역시 그에 대한 답변을 줄 수 없었다. 나 역시 여전히 방황 중이었고, 답을 알지 못했기에. 이러한 이야기들을 나누다가도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 누군가의 아내, 엄마, 그리고 당장 해내야 하는 나의 과업들을 해내며 애써 그런 것들이 가라 않기를 바라고 있었다. 하지만 달라지지 않았다.
우리는 너무나 간절히 무엇을 해도 해소되지 않는 불안에 힘든 나날에서 벗어나고 싶었다. 이대로 있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내가 진짜로 원하는게 뭔지 알아야 했고, 낯선 현장에 우리를 던져보기로 하고 함께 일용 노동의 현장에 나가기로 결의했다.
노동과 제일 안 어울릴 것 같이 생긴 허연 두 여자의 몸부림
처음엔 그저 웃음이 났다. 이유는 이런 현장에 어울리지 않는 사람을 줄 세워 본다면 어쩜 우리는 뒤에서 1%안에 들 것 같은 외모를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일단 둘다 유난히 하~~얗다. 똑부러져 보이나 측은지심이 온 얼굴에 가득차 있기도 하다.
노동이라고는 타자밖에 안 쳐본 히마리 없는 하얀 손 (이미지출처 : 픽사베이)
원래 아담한 체구의 그녀는 말할 것도 없고, 모든 강인함을 하체에 몰아 태어난 나는 큰 키에 어울리지 않는 가느다란 손목을 가지고 있다. 그리고 실제로 가끔 접시를 떨어뜨리거나, 병뚜껑을 못 따 초등학교 4학년 아들에게 따달라고 할 때도 있을만큼 손모가지에 근력에 근본이 없다.
그리고 우리는 예술가의 마음을 가지고 태어났다. 나는 평생 글을 썼고, 그녀는 대학 때 그림을 그렸었다. 무슨 계절을 타냐는 질문에 4계절을 다 탄다는 나와 똑같은 사람이 그녀였다. 봄이 오면 꽃이 피어서, 여름이 오면 녹음이 푸르러서, 가을이 오면 바람이 서늘해서, 겨울이 오면 크리스마스의 기운이 온 세상을 채워서 설레고 서글프고 감정이 요동을 치는 사람. 그게 그녀와 나다. 그녀는 정명훈이 좋다고 했고, 나는 조성진 마니아다. 예술을 즐기고, 사색을 사랑했으며, 작은 것과 큰 것에 온 마음을 다해 감동했다.
이에 못지 않게 우리의 예민함은 깐깐함으로 이어지기도 했다. 학원에서 보내오는 안내문에 오타가 있으면 참을 수 없고, 설명회에서 받은 자료의 폰트가 다르거나 들여쓰기가 안 되어있으면 신뢰가 사라지는 앵간히 까다로운 여자들. 학교에서 줌으로 학부모 모임을 하면 접속자 1, 2등은 늘 그녀와 나였다. 깐깐하고 예민하기가 이를 데 없는 인생의 모든 순간을 스스로 평가하고, 저울질하며 혹독하게 나를 몰아붙였던 흔적이 곳곳에 묻어 있었다.
그런 두 사람이 단순함이 미덕인 노동의 현장에 던져졌다. 아니 정확히 얘기하면 스스로를 던졌다. 누군가를 이기거나 남들보다 주목받아야 직성이 풀리던 두 여자가 나를 없애고, 수 많은 대중 속의 하나의 점같은 존재가 되어버리는 곳에 나를 던져놓았다. 그리고 참 이상하게도 그런 환경 속에서 알수없는 편안함을 느꼈다.
누구를 이기려고 하지 않아도, 더 돋보이려고 애쓰지 않아도 되는 공간. 그저 이 순간을 성실하게 잘 보내기만 한다면 무탈한 환경. 그 곳에 우리는 이상하리만큼의 위안을 느꼈다.
무엇보다 우리는 더 이상 아이들의 이야기를 나누지 않았다. 아이들이 어떤 학원에 가야하는지 어떤 공부를 해야하는지, 어떤 성취를 해야하는지 그런 것들은 궁금하지 않았다. 우리 이야기를 나누는 것만으로 이 관계가 충만함을 느꼈고, 행복했다. 서로 다른 인생을 살아왔어도 출산경력자라는 매우 중요한 한 가지 공통점,
애도 낳았는데! 정신으로 우리는 주어진 노동의 순간들에 최선을 다하며 나의 이야기를 나누었다. 아들친구엄마에서 아들과 엄마가 빠지고 친구가 되어가는 느낌. 참으로 오랜만에 반가운 기분이었다.
땀을 나눈 나의 전우
땀을 나눈 전우가 되어버린 아들 친구 엄마 (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그렇게 이제 그녀는 아들 친구 엄마가 아니라 전우가 되었다. 우리는 검은 티셔츠에 남은 하얀색 땀 자국도 보았고, 소금기로 떡 진 머리도 보았다. 새카매진 신발, 화장기 하나 없는 건 물론 땀으로 쾡해진 얼굴도, 풀풀 나는 땀냄새도 공유했다. 가장 추한 모습을 함께 한 어찌보면 남자들의 군대 동기 같은게 이런 모습이 아닐까?
다녀와 몸이 힘들 때도, 현장에서 순간순간 현타가 올 때도 그녀가 있어서 웃을 수 있고 힘이 됐다. 여기저기 비슷하게 생긴 현장에서 길치인 나에게 길을 알려주고, 파워 J의 발 빠른 정보력으로 새로운 일용노동현장에 대한 정보를 공유해주기도 했다.
그리고 잊지 않고 오늘의 이 고된 경험으로 충만해진 용기를 가지고, 나아가고 싶은 서로의 미래, 채워지길 바라는 마음들을 알아보고 물어주었다. 너무도 고맙고 든든한 나의 노동 파트너!
앞으로 기록할 모든 기록들이 그녀와 함께 였기에 즐거웠고 깊이 있는 시간이었음은 다시 생각해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