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일용노동의 현장은 로켓보다 빠르다는 온 국민이 사랑하는 기업의 물류센터였다. 새벽에 일어날래 밤샐래를 물어보면 밤샐래를 고를만큼 새벽기상에 자신이 없는 나는 6시 50분 셔틀버스를 타기 위해 5시부터 잠을 설쳤다.
평소 약속이 있을 때와는 사뭇 아침 준비부터 달랐다. 오늘의 ootd는 내가 가진 티셔츠 중 가장 낡은 티셔츠를 골랐고, 가장 편한 바지를 꺼내 입었다. 아침에는 영 입맛이 없는데 아몬드 한 줌을 씹어 삼켰다. 고열량의 뭔가를 먹어야 할 것 같은 기분. 정체를 알 수 없는 노동을 앞둔 자의 뭔지 모를 비장함. 전장에 나가는 장수의 마음으로 옷 매무새를 가다듬고, 머리를 한 올도 남기지 않고 올려 묶었다. 어젯밤 출근 전 공지사항에 머리가 컨베이너 벨트에 끼여 머리가죽이 벗겨진 사례가 있었다는 경고문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며칠 전부터 계속 되었던 기침이 채 낫지 않았으니 가래기침약도 하나 짜 삼키고, 마스크도 살뜰히 챙겼다. 신발중에 가장 편한 운동화를 꺼내 신었고, 귀걸이도 오늘은 서랍에 넣어두었다. 이제 정말 준비 끝! 나가면 된다!
넌 정말 괜찮은거냐고 계속해서 묻는 남편에게 애도 낳았는데 정신을 다시 한번 알려주고 길을 나섰다. 구해야할 나라는 없었지만, 불안으로 부터 구하고 싶은 자아가 있었기에! 난 정말 괜찮다 주문을 외우고 집을 나섰다.
셔틀 버스 정류장으로 향하자 토요일 아침에도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정말 많은 사람들이 이 시간에
이렇게 노동의 현장으로 가고 있었구나. 그 곳에는 어린 대학생들도 있었고, 딱 봐도 월요일이 되면 셔츠를 입고 출근을 할 것 같은 투잡족 가장인 것 같은 사람도 있었으며, 복대에 기능성 티셔츠까지 복장부터 프로페셔널한 중년의 부인들도 있었다. 그리고 허~연 얼굴의 나의 노동파트너가 커피우유를 두 개를 들고 먼저와 손을 흔들었다. 오늘 이 전장으로 향하는 길이 혼자가 아님이 왠지모르게 위안이 되었다.
도착한 현장은 정말이지 새로운 세상이었다. 사방이 뚤린 회색 콘크리트로 세워진 거대한 물류창고, 그리고 그 곳에 마치 80년대 고향을 찾으러 터미널에 몰려든 사람들처럼 바글거리는 사람들의 행렬. 그렇게나 원하던 익명성의 세상. 그 익명성의 공간에서 하나의 점이 되는 데는 그렇게 오래걸리지 않았다. 아무도 나의 이름을 묻지 않았고, 내가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 하지 않았다. 오늘 이렇게나 허름한 옷을 입었어도 누구하나 관심을 갖지 않았다. 모두 함께 있었지만 혼자 존재하는 듯 했다.
며칠 전 먼저 이 곳을 와본 나의 노동파트너는 선배답게 얼음물 두개를 내 손에 안겨줬다. 내내 필요할 거라며 평소에는 입에도 대지 않는 얼음물을 잘 챙기라 말했다. 전화기를 두고 가야하는 규칙상 사물함에 전화기를 두기 전 남편에게 전화를 했다. 넌 정말 괜찮은거냐고 또 한 번 묻는 남편에게 무슨일이 생기면 나를 구하러 오라고 우스개 소리를 하고 전화를 끊었다. 하지만 농담처럼 건네었던 그 말은 나의 진심이기도 했다. 마스크를 꺼내 쓰려는 내게 그거 쓸 수 있을 날씨가 될지 모르겠다며 묘한 웃음을 짓고 나의 노동 파트너는 먼저 현장으로 투입됐다.
나는 오전내내 교육을 들었다. 지금이 가장 편할 시간이니 이 시간을 즐기라고 했다. 교육이 지겨운지 사람들이 가만히 있지 못하고 들락날락 교육장을 드나들었다. 그러나 모범생 유전자를 가지고 태어난 나는 남들은 코를 골고 자는 그 현장에서 또 너무나 집중해서 그 모든 교육을 들었다. 끝나고 시험을 봤으면 또 주책맞게 기를 쓰고 1등을 하려고 애를 썼을지도 모를만큼 열심히 들었다. 시작 전 하는 체조도 누구보다 열심히 했다. 손목도 풀고, 발목도 풀고, 어깨도 정성스럽게 풀었다.
나의 첫 임무는 PDA를 가지고 물건의 재고량을 체크하는 일이었다. 물건의 위치를 잘 찾아야하는 것과 물건을 정확하게 세어야 하는 일. 담당 교육자는 숫자를 20까지 못세는 사람은 이 일을 할 수 없다며 자발적 포기를 권했지만 다행히 공고육을 성실하게 이행한 나는 20까지는 자신있었다. 물론 길을 찾고, 정확하게 숫자를 맞추는 건 길치이자 엑셀 알러지가 있는 나에게 가장 어려운 일이지만 그래도 일이 그렇게 힘들지는 않아보였다. (물론 뭣 모르니 하는 노동 첫날 애송이의 섣부른 생각이었다.) 다들 덥다고 난리였지만 나는 누구보다 더위에 강했고, 수족냉증도 달고 사니 더위 따위 걱정없었다.
그래도 혹시 모르니 나의 노동 파트너가 알려준 대로 나의 바구니에 얼음물 두개를 실었다. PDA는 잘 눌러지는지 몇번이고 확인했고, 나눠준 장갑은 PDA가 잘 눌러지도록 주변 사람들을 따라 눈치껏 엄지부분을 잘랐다. 그리고 역사적인 순간! 정말 업무에 투입되었다. 첫 번째 임무다! 패널 안 박스안에는 립스틱이 30개가 맞는지 머리끈이 15개가 맞는지 정확히 세야했다. 처음엔 덤벙덤벙 저 뒤에 숨어있는 물건을 못 찾아 계속 에러가 떴다. 물건의 수량과 내가 센 수량이 맞지 않을 때 뜨는 에러 메시지를 계속해서 봐야했다. 정신을 집중하기에 날씨는 너무 더웠고 나는 너무나 긴장을 하고 있었다.
힘들지 않아 보였다는 나의 지난 생각을 꾸짖고 싶었다. 계속해서 걸어야 하는 일이었기 때문이다. 물건은 제각각 다른 곳에 있었고 나는 계속해서 걷고 물건을 찾아 수량을 세야했다. 평소 더위라고는 느끼지를 못하고 땀이라고는 흘리지 않았던 나는 그날 내 안에 이렇게나 많은 소금과 물이 있다는 것을 처음으로 알았다. 계속해서 땀이 흘러 떨어졌고, 내 옷은 금새 하얗게 땀의 지도를 그렸다. 나는 그동안 내가 땀이 없는 사람인 줄 알고 살아왔는데 그것이 아니었다. 나는 땀이 없는 것이 아니라 땀을 흘릴 만큼 움직이지 않았던 것이었다.
선배의 말대로 얼음물은 생명수와 같은 것이었다. 얼음물은 금새 녹아버렸고 나는 녹은 물을 연신 마셔대야 했다. 1시간도 지나지않아 1리터의 물을 마셨다. 처음에는 어리버리 하던 손이 어느새 기계처럼 움직였다.
다리도 본능처럼 움직이며 걷고 또 걸었다. 나중에는 내가 이 곳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 여기에 왜 왔는지 조차 하얗게 지워지며 오로지 지금의 시간과 공간만이 느껴졌다. 마치 인터스텔라의 한 장면처럼 어디선가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고 있는 느낌이 들었다.
여러 가지 감정들이 나를 스쳐지나갔다. 나는 왜 이렇게 복잡하게 태어나 끊임없이 나를 찾으려 하는가, 나는 어떤 것을 얻으려 이 곳으로 스스로를 몰아왔는가 스스로 물었고 대답은 할 수 없었다. 이런 복잡한 생각들을 하다가는 물건의 숫자를 틀릴 수도 있기 때문이다.
교육을 빼고 총 5시간을 걸었고, 수 없이 많은 물건을 셌다. 이런 물건이 세상에 있었나 싶은 신기하고 진기한 물건들까지 마치 보물 상자를 열어보듯 물건 위치를 찾고 박스를 열어 재고의 물량을 확인했다. 모든 일을 마치고 보니 나는 그날 하루 2.5리터의 물을 마셨고 화장실을 한 번도 가지 않아도 될 만큼 땀으로 그 모든 물을 흘려보냈다. 버스를 타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노동 파트너와 왜 아저씨들이 노동 후에 고기와 술을 마시는지 알겠다며 노동 후의 고된 기분들을 이런저런 농담들로 주고 받으며, 집으로 돌아왔다. 소금기로 가득한 나의 옷을 보고 적지 않게 놀란 나의 아들과 남편을 뒤로하고 씻고 보니 뭔지 모르게 가슴이 숙연해졌다.
먼저 오늘 이렇게 많은 땀을 흘리며 낯선 현장에서 도망치지 않은 나에 대한 대견함이었다. 한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세상, 계획, 연습 따위 존재하지 않는 바로 투입이 되야하는 오늘, 지금만 있는 현장에서 당황은 했으나 도망가지 않고 최선을 다한 나에게 무한 박수를 보내주고 싶었다. 그리고 내가 오늘 흘린 땀. 이렇게 많은 땀을 흘리며 내가 무언가를 해본 적이 있나 싶게 정말로 정직하게 보낸 시간들이 1분, 1분 정말이지 소중하게 느껴졌다. 1분에 이렇게나 많은 걸음을 걸을 수 있고 이렇게나 많은 땀을 흘릴 수 있으며, 이렇게나 많은 일을 할 수 있다니. 내가 헛되이 보낸 시간들에 대한 생각도 지울 수가 없었다.
물론 노동 애송이의 첫 출근이 모든 것이 순조롭지는 않았다. 야심차게 일요일도 출근 등록을 해놓았으나 기침은 밤새 심해지고 먼지로 심해진 기침으로 열이나면서 다음날 출근을 물거품이 되었다. 컨디션 난조로 다음 노동을 기약해야 했지만 아이와 남편은 나의 이 모든 행동과 결심을 치기어리게 보지 않고 열심으로 응원해줬다. 편견없는 나의 따뜻한 아이는 평소 노트북 앞에 앉아 얼굴을 구기며 글을 쓰던 엄마와 다른 뭔가 새로운 일을 하고 온 나를 경외스럽게 쳐다보기도 했다. 남편도 평생 온실의 화초로만 자라온 내가 자발적으로 걸어들어가 보내고 온 하루에 걱정과 응원을 보냈다.
그리고 나는 다음날까지 연거푸 얼음물을 마셨고, 몸이 기억했던 더위는 계속해서 얼음물을 곁에 쟁이게 했다. "힘을 써"움직인 나의 땀. 노동의 땀. 마치 온 몸이 울어내며 너는 이렇게 뭐든 할 수 있는 사람이라고 말해주는 것 같았다. 그 때의 그 강렬한 응원과 경건해지는 마음을 잊을 수 없어 나는 나의 노동파트너와 다음 노동을 계획했다.
자신감과 대견함이 고속충전으로 온 몸에 차오르는 느낌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