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엄마, 쌈뽕하다가 욕이에요?"
초 4 아들이 물었다. 깔쌈하다와 유치짬뽕에서 업데이트가 안된 나의 비속어 사전은 정확한 뜻은 맞추지 못했지만 그래도 대충은 멋진다의 은어 같았다. 친구들이 쓰기 시작하는 다양한 비속어들이 늘어가며 아들이 나에게 뜻을 물어올 때마다 나의 대답은 한결같다.
"다이소에서 파는 물건이 못 쓰는 물건은 아니지만 금방 망가지잖아? 저렴한 말도 못 쓰는 말은 아니지만
금방 사라지고, 안 써도 살 수 있는 말이야."
아이는 고개를 끄덕거렸고 나 역시 아이에게 모범이 되려면 더욱더 언행에 공을 들이며 살아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 결심은 일용직 현장 냉동창고에서 무참히 깨져버렸다.
직주근접에 가장 잘 부합하는 위치에 있는 배달 혈통을 타고난 기업의 실시간 마트 배달 서비스 현장에 일용직으로 출근을 한 날이었다. 해당 알바 후기에는 대놓고 너무 춥다는 의견들과 대놓고 반드시 긴팔 작업복을 챙기라는 말이 쓰여 있었다. 평소에 갑상선 호르몬도 조금 부족하고 근육도 부족하여 추위를 심하게 느끼는 나는 정성스레 기모 후드집업을 챙겼다. 그리고 지난 노동 현장에서 얻은 지혜로 물건을 잘 집기 위해 목장갑을 챙기고 집에서 장갑의 엄지와 검지의 끝을 잘랐다. 뭔가 경력직 다운 혜안, 프로 다운 준비성이 드러나는 것 같아 좀 멋이라는 것이 폭발했다.
현장에 가서 작업 내용을 들어보니 크게 세 개의 존이 있고, 하나는 냉장, 하나는 냉동, 하나는 실온보관이 가능한 물건들로 구분되어 있으며, 고객이 주문한 것들을 이 세 가지 존에서 찾아 포장하여 배달기사에게 넘기는 것 까지가 나의 임무였다. 뭔가 그동안 다른 현장의 일들이 적절히 믹스되어 처리해야 하는 일용직 계의 멀티 플레이어 같은 느낌이었다. 그날 일용직 사우들의 구성은 전부 20대 초반의 남자아이들이었다. 반바지를 입은 아이부터 반팔 입은 아이, 목장갑을 챙기지 않은 아이들이 대부분이었다. 엇! 이거 뭔가 후기가 과장되었던 건가. 두꺼운 후디 점퍼에 목장갑까지 무장한 내가 너무 40대 아줌마 느낌이 물씬 났지만! 어쩌겠는가. 엄마가 물려주신 삶의 지혜!
'멋부리다 얼어죽는다'
나는 더 꽁꽁 옷을 여몄다.
그리고 첫 주문을 처리하게 되었다. 순두부와 대패삼겹살로 토요일 저녁을 준비하는 사람의 주문이었다.
냉장 창고의 무거운 문을 열고 들어가자 금세 입김이 나왔다.
'아… 서늘하다..' 바로 느낌이 확 왔다.
마치 멋 내느라 끈나시만 입고 나온 날, 마트에 가서 두부와 채소를 고르느라 한참이고 그 자리에 서 있는 느낌이 들었다. 그러나 무더운 여름날이었고, 이 정도는 선선하다 정도의 마인드 컨트롤로 견딜 수 있었다. 야채와 순두부를 담고, 대패삼겹살을 담기 위해 냉동 창고의 문을 열었다. 벌써 손잡이 온도부터 확실히 다른 느낌. 지옥문을 여는 느낌이었다.
10.... 5,4,3,2,1 "삐~~~~~~~~~"
욕없이는 대화가 불가능한 중고딩 남자아이처럼, 난 그 곳에 들어간지 10초 만에 내가 아는 가장 저렴한 욕을 입으로 뱉었다. 정말 너무너무 추웠다. 입김이 나오는 것은 물론이고, 두피 속으로 냉기가 액체처럼 퍼져나가는 것 같았다. 코와 눈에는 서리가 꼈다. 본능적으로 지퍼를 목까지 채웠다. 아무것도 모르고 온 게 분명한 반바지, 반팔을 입은 남자아이들의 숨소리 같은 욕설이 곳곳에서 들렸다. 순두부와 대패삼겹살만 먹으면 됐지 왜 하필 후식으로 아이스크림을 택한 건지 원망하며 각양각색의 아이스크림들을 찾아 담고서야 그곳을 탈출할 수 있었다.
남자아이들은 뛰어가 현장에 굴러다니는 주인 없는 점퍼를 주워 입었다. 나는 목까지 올린 지퍼를 또 올리고 또 올린 뒤, 머리에 후드 모자를 뒤집어썼다. 혹시 몰라 가져갔던 마스크도 썼다. 추위를 줄이려면 본능적으로 빨리 움직여야 했고, 본의 아니게 작업은 점점 더 빨라졌다. 눈치 없이 경험을 바탕으로 자른 장갑이 원망스러웠다. 잘라낸 장갑사이로 튀어나온 엄지손가락 끝과 검지 손가락의 끝부분이 빨갛게 차가워졌다. 왜 하필 이럴 때 부지런을 떨었는지 참으로 원망스러웠다.
그날은 역대급으로 더운 토요일이었고, 시간이 지날수록 아이스크림의 주문량은 폭주했다. 그럴 테지. 한 걸음도 밖으로 내딛기 싫은 날 당기는 건 차가운 아이스크림뿐이겠지. 이해는 됐지만 왜 이렇게 한 집에서 한 가지 맛으로 통일을 안 하고 제각기 자기 입맛대로 아이스크림을 시켰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너무 추웠으니까.. 이성적 판단 같은 건 함께 얼어버렸다. 누가바를 먹든 수박바를 먹던 죠스바를 먹든 내 알바 아니지만 하나로 통일하지 왜 이렇게 하나씩 여러 개를 시켰는지 원망스러웠다.
같은 아이스크림 일지라도 맛이 달라 한 참을 찾아다니는 일도 있었다. 팥맛은 있는데 초콜릿맛이 없으면 그냥 팥으로 먹으면 안 되냐고 직접 전화를 걸어 말하고 싶을 정도로 어딘가에 숨어있는 똑같은 브랜드의 다른 맛을 찾아야 했고 난 찾는 내내 계속해서 욕을 뱉었다. 정신을 차려야겠다는 생각 때문이었는지 입만큼은 열기를 잃지 않기 위해서였는지, 계속 욕을 중얼거렸다. 어디선가 에베레스트 산을 오르던 등반대원들이 추위에 지지 않기 위해 계속해서 서로에게 말을 걸던 게 생각 나서기도 했다. 냉동창고를 나와 상온에서 물건을 고를 때는 금세 물방울이 되어 속눈썹에 맺힌 물을 닦느라 또 곤욕이었다. 상온에 있는 강아지 밥이나 화장품 같은 물건들만 시킨 사람에게는 물건 하나하나마다 축복을 담아 포장했다.
나중에는 목소리까지 냉기에 차가워져 쉰소리가 났다. 추위를 심하게 타는 나에게 후드집업 따위 소용이 없었고, 경량패딩에 기모 레깅스 정도는 입고 갔어야 하는 현장이었다. 20대 남자아이들의 혈기도 냉동창고 앞에서는 점점 식어가는지 젊은이들의 표정과 초점이 없어졌다. 그렇게 한숨도 쉬지 못하고 그날의 일이 끝났다. 오후조를 선택했던 탓에 그날은 오후 2시 반에 시작해 밤 11시 반이 돼서야 일이 끝났는데 이 현장이 힘든 것이 아니라 당장이라도 냉동창고에서 탈출하고 싶어 발걸음을 재촉하게했다.
밖은 열대야로 34도에서 온도계가 멈추었는데 내 몸은 냉동고와 냉장고 그 사이 어딘가에 서있는 듯했다.
집안 행사 때문에 함께 하지 못한 나의 노동파트너에게 퇴근시간에 맞춰 어땠냐는 메시지가 왔고 나는 딱 한마디로 그날의 노동 소감을 보냈다.
"너무 추워요"
그리고 나는 그 뒤로 그곳만은 다시 지원하지 않았다. 집에서 엎어지면 코닿을 곳에 있었지만 생각만해도 머리가 서는 것 같은 추위가 느껴져 지원할 수 없었다. 과거 영화나 드라마에서 주인공이 냉동창고에 갇히는 장면이 얼마나 공포스러운 장면인지 몸소 깨닫게 된 것이다. 나는 더운 현장에서는 일해도, 추운 현장에서는 절대 일할 수 없는 사람임을 깨달았다. 추위에게 졌음을 인정하고 입에서 아직도 입김이 나오는 듯한 기분을 느끼며 건물 밖을 나왔는데 아들과 남편이 서있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빵을 들고 있는 그들을 보는 것이 그날 하루 가장 '쌈뽕한'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