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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IN Sep 27. 2024

09. 골라먹는 즐거움, 함바하우스 정식

직장을 고를 때도 그렇지만 일용직을 고를 때도 체크할 복지가 있다. 내가 누군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는 대신 기본 중의 기본급만 지급하는 곳이 대부분이지만 오아시스 같이 있는 베네핏이라면 그것은 바로 "점심제공"이다. 보통은 아침 일찍 시작해야 하는 일들이 많아서 점심을 제공해지 않을 경우 밥을 싸가지고 가야 하는 일이 많았다. 대부분의 물류 센터라는 것이 주변에 허허벌판 내지는 망망대지인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편의점 하나 찾기 힘든 곳에 위치해 있다 보니 점심을 사 먹을 수 있다는 기대는 버려야 한다. 또 어디를 다녀오기에도 점심시간이 그렇게 넉넉하지 않기 때문에 점심이 제공되지 않는 곳에 나갈 때는 보통 도시락을 싸가야 했다. 


일용직 현장의 가장 중요한 베네핏, 점심제공 


내가 나의 노동파트너와 물류센터 투어를 할 때는 정말 너무나도 더웠던 여름이었다. 밥을 싸가는 것은 정말 상상도 할 수 없는 날씨였다. 게다가 땀을 비 오듯 흘리고 나면 의외로 입맛이 뚝하고 떨어진다. 얼음물만 계속 들이키고 싶지 뭘 먹냐 싶게 먹고 싶은 의욕이 뚝 떨어지지만 그저 오후에 남은 잔업을 처리하기 위해 억지로 씹어 삼켜야 했다. 그래서 중식이 제공되지 않으면 빵이나 달고 단 우유 같은 것들을 챙겨가는 게 전부였다. 그러니 알아서 따뜻한 지어 주는 중식제공은 너무 좋은 베네핏이었다.   


큰 기업의 물류센터를 갈 때는 그곳의 식당이 있어 급식처럼 가서 배식을 받아먹는 시스템이었다. 로켓보다 빠른 기업의 물류센터는 무려 메뉴가 한식, 분식, 중식으로 3가지였고, 아이스크림 후식도 무한정 제공되었다. 특별한 맛은 아니었지만 특별하게 편리했다. 하지만 새로울 것은 없었다. 


그러다 굽이굽이 한 참을 달려 들어가야 하는 어딘가에 위치한 물류센터를 갔을 때 일이다. 중식제공이라고 쓰여 있었는데 도착해 본 물류공장에는 어디에도 식당은 없어 보였다. 최근 니들샷으로 인기가 많아진 한 화장품 업체의 물류공장이었는데 무척 덥고 별도의 공장도 없어 보여 여기서 어떻게 점심이 제공되는지 궁금했다. 

너무 더운 오전 업무가 지나가고 드디어 점심시간이 왔다. 그리고 나는 난생처음 말로만 듣던 함바집 포장 배식을 먹게 되었다. 


일단 도시락은 아니었다. 커다란 배식통이 도착했고, 식판이 아닌 커다란 접시를 하나씩 받았다. 정말 양껏 정말 양껏 담아 먹는 시스템이었다. 저 작은 몸에 저게 다 어떻게 들어가지 싶게 사람들은 접시 가득 음식을 담았다. 반찬이 7가지나 됐다. 그리고 방금 도착했는지 연기가 펄펄 났다. 보통은 이렇게 더운 곳에 오래 있다 보면 입맛이 뚝 떨어지는데 처음으로 먹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일단 어떤 맛인지 궁금해서 하나씩 다 

접시에 담았다. 완벽한 탄단지와 채소까지 적절하게 구성하여 담았다. 


닭다리는 분명 닭다리 같이 보였지만 사이즈만 보면 타조 다리가 아닐까 싶게 컸다. 이렇게 큰 다리들을 어디서 구했을까 싶은 호기심이 들었지만 길게 생각하면 식사가 불가능할 거 같아 일단 담기만 담았다. 


뷔페 안 좋아하지만 야무지게 담은 함바지 정식 그리고 식탁이 되어준 작업대



흑백요리사들과도 쌍벽을 이룰 고수들의 요리 향연, 함바집 정식 


진짜 음식의 찐 고수들은 흑백요리사가 아니라 함바집과 기사식당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어왔던 터라 또 함바집 선정이 꽤나 까다로운 맛의 기준으로 선정된다고 알았어서 큰 기대를 가지고 담아왔다. 땀을 많이 흘리는 현장이라 그런지 모든 음식들은 매우 간간했고, 그래도 따뜻한 집밥처럼 다정함과 정성이 담겨 있는 맛이었다. 



자꾸 타조 다리가 생각나서 먹지 못했던 초대형 울트라 닭다리(이미지 출처 : 픽사베이) 

물론 닭다리는 대지를 달리는 타조가 자꾸 생각이 나서 끝끝내 먹지 못했고 밥은 나풀거려 식감을 

다소 헤쳤지만 그래도 맛있게 잘 먹었다. 식당이라는 다른 공간도 없었고, 작업 테이블로 평소에 쓰고 있는 널찍한 테이블을 대충 치우고 먹는 음식이었지만 뭔가 낯선 공간에서 집밥을 먹는 것 같은 이색적인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진짜 노동의 현장에 들어와 있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그런데 사람들은 많이 퍼오고도 깨작깨작 최선을 다해 밥을 먹는 것 같지 않았다. 그 이유는 퇴근길에 알 수 있었다. 


그날 업무는 오후 연장 근무도 가능했는데 나는 저녁에 돌아가해야 할 나의 본업이 있었기에 그것은 지원하지 않았다. 퇴근을 하러 남은 사람들을 두고 돌아가는 길에 사람들은 저녁을 먹을 채비를 하고 있었는데 그 음식이... 점심에 먹었던 그 함바집의 같은 메뉴들이었다. 아... 함바집의 메뉴는 매번 바뀌는 게 아니었구나 그래서 반찬이 이렇게나 여러 가지였구나. 락앤락에 담았다 취향에 따라 꺼내먹는 정말 집밥처럼 잘 골라 나누어 먹어야 하는구나 알게 되었다. 


아이를 낳고 남이 해주는 밥이 세상에서 가장 맛있는 밥이라는 철칙이 생겼던 내게 따뜻한 온기가 담긴 푸짐한 한상인 함바집 정식은 꽤나 마음을 채우는 음식이었다. 하루보고 안 볼 일용직 현장에서 소울푸드를 운운하는 게 말도 안 될 일이지만 다른 의미의 소울. 힘든 노동 뒤에 그 힘듦을 채워주는 에너지 넘치는 소울 푸드.

함바집 정식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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