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흔이 넘어가고 달라진 것 중 하나는 목표를 세우지 않는다는 것이다. 계획대로 되지 않는 것이 인생임을 알게 된 건 꽤나 더 어릴 때였지만, 목표를 세우고 하나의 목표에만 매달리는 것이 동기부여를 주기보다 외골수적인 나를 더 한정적으로 만든다는 생각 때문이었다. 무슨 일을 하든 목표가 꽂히는 순간 엔딩이 없이 끝까지 달리고 또 달리고 달리는 나의 성격에 목표라는 것은 늘 나를 갉아먹는 존재였다. 하지만 목표나 목적지를 정하지 않는 삶을 살자고 결심한 뒤로도 일평생 범생이로만 살아온 내가 하루아침에 달라지지는 않았다. 그래서 억지로라도 목적지를 정하지 않고 움직여서 생겼던 좋았던 기억들을 긁어모으기 시작했다.
선명한 첫 기억은 이십 대 후반쯤이었던 것 같다. 그날도 난 버스를 "또" 반대 방향에서 탔다. 심각한 방향치인 나에게는 자주 있는 일이었는데 그날은 왜인지 내리고 싶지 않았다. 어딘지도 모르는 동네까지 그냥 그 버스를 타고 오래 달렸다. 그리고 원하는 곳에 하차했다. 거기에 아주 작은 옷가게가 있었는데 이런저런 잡화를 함께 파는 동네의 작은 옷가게였다. 누가 여기서 옷을 살까 싶은 작은 옷가게였는데 들어가 평소에 입지 않을 법한 셔링이 잡힌 여성스러운 티셔츠 한벌을 샀다. 벌써 20년도 더 된 옷인데 나는 그 옷을 아직도 가지고 있다. 입을 때마다 그날의 그 차가웠던 겨울날 공기, 동네의 저녁 채도까지 선명하게 생각이 난다. 아주 특별하고 생경했던 그날의 기억에 대한 기념품으로 간직하고 싶은 걸 아는 것인지 그 옷은 아무리 빨아도 닳지도 변하지도 않았다. 그리고 올해도 무모했던 방황이 그리운 날 꺼내어 입을 예정이다.
겁대가리 없던 잃을 게 없다고 믿던 아가씨 시절, 혼자 인도에 갔을 때도 그랬다. 특별히 가고 싶은 목적지도 없었고, 내가 그곳에 왜 갔는지도 몰랐다. 그냥 목적지 없이 떠돌았고, 바라나시라는 지금은 유명하지만 그 당시에는 전 세계 예술가들만이 모여들던 도시에 도착했다. 영적인 기운으로 가득 찬 그곳에서 느꼈던 충만한 감정들이 아직도 잊혀지지 않고 선명하다. 인도를 다시 또 그것도 혼자서는 절대로 가지 않을 만큼 세상에 지켜야 할 것들이 많아졌지만 나는 아직도 목적지 없이 떠돌다 다다랐던 그 도시의 낭만 가득한 기분을 가슴 한편에 간직하고 살아가고 있다.
그리고 잘못 탄 기차가 마음을 충만하게 해 줄 목적지로 데려다준 기억 속에서 채울 또 하나의 추억이 일용직 현장에서 벌어졌다. 교과서를 분류하는 일용직 물류 현장으로 출근하는 날, 그 물류현장에는 황송하게도 셔틀버스가 운행하고 있었다. 꽤나 큰 사업장을 가지고 있는지 셔틀버스는 여러 대가 있었고, 나의 노동 파트너와 나는 일말의 의심도 없이 우리가 타기로 한 시간에 도착한 버스에 올라탔다.
두런두런 이야기를 나누며 한 번도 해보지 않은 일에 대한 걱정과 오늘은 또 무슨 웃긴 일이 벌어질지에 대한 기대감들을 나누었다. 그런데 한참을 달리던 중 뭔가 이상했다. 처음 들어보는 회사에 어디인지도 모르는 공장인터라 겁 많은 우리는 전날 로드뷰를 한참이고 당겨봤더랬다. 그런데 버스가 가고 있는 곳은 우리가 지도로 달려본 길이랑 달라도 너무 다른 곳이었다. 여기는 어디일까.. 슬슬 불안감이 엄습해 오던 찰나. 다시 상세 주소를 확인해 보니 전혀 다른 공장으로 가는 버스였다. 뭔지도 모르는 일을 뭔지도 모르는 공장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일단 종착지에서 내려 주변 버스 정류장을 검색해 봤다. 온 주변이 공장뿐인 이곳에서 우리가 가야 하는 공장까지는 버스를 타고 갈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재빠르게 택시를 검색해 봤다. 택시가 있을 법한 장소도 아니었지만 택시를 타고 거기까지 갔다가는 하루 일당의 30%를 택시비로 쓸 판이었다. 이 또한 옳지 않구나.. 생각하고 마지막 선택지로 기사 아저씨에게 가서 애도 혹시 그쪽에 가실 일 이 있으시면 내려줄 수 있는지 사정을 해보았다. 물론 당연히 세상에서 가장 온화한 얼굴로 거절을 당했다.
이를 어쩌나.. 당황스러움에 입과 몸이 삐걱거렸다. 그렇다고 비장하게 입은 검은 작업복과 질끈 묶은 더러운 운동화를 신고 출발한 지 1시간 만에 집으로 돌아가는 것도 너무나 굴욕스러워 보였다. 어쩔 수 없다. 마지막 카드! 출산경력자들의 '포기를 모르는 정신'으로 반장에게 물었다.
"저 버스를 잘 못 탔는데 여기서 일해도 되나요?"
버스를 잘 못 탄 건 내 탓인데 여기서 일해도 되냐고 묻는 뻔뻔함이라니. 당황했을 법도 한데 거기 반장님은 웃으면서 "어쩔 수 없죠! 오늘은 여기서 일하셔야지 어떻게 해"라고 답을 주셨다. 마지막 카드라고 던져본 것에 너무 쉽게 답이 돌아왔다.
그리고 잘못 탄 버스가 내려 준 그곳에서 다녀본 곳 중에 가장 따뜻하고 배려 넘치는 일용직 현장을 만났다. 일하는 내내 다치면 절대 안 되니 느려도 괜찮고, 부디 천천히 안전하게만 작업해 달라는 이야기를 들었고, 작업하는 내내 1인 1 대형 선풍기가 할당됐다. 높은 천장에 잘 정돈된 작업 환경은 마스크를 쓰는 걸 깜빡할 정도로 쾌적했다. 힘들다 싶으면 어느새 옆에 와 도와주는 관리자들은 쉬는 시간에는 빵과 음료를 간식으로 챙겨줬고, 점심시간에 맛있게 먹으라는 다정한 말 한마디도 빼놓지 않았다. 그리고 오늘만 나오느냐 앞으로 2주간 계속되니 시간 될 때 나오라는 다음 업무 스카우트 제의까지! 여러모로 배려받고 있다는 느낌이 충만히 드는 현장이었다.
어떤 일이던 좋지 않은 경험들이 초반에 계속되면 지속이 힘든데 초반에 이렇게나 배려심 넘치고 따뜻한 현장을 만나 이후에 멈추지 않고 많은 일용현장들을 경험할 수 있었다. 잘못 탄 기차 아니 잘못 탄 버스가 우리를 다음 용기를 낼 수 있는 목적지로 데려다줬다.
그날의 경험이 얼마나 괜찮았던지 우리는 바로 다음 주 같은 현장에 근무 신청을 했고, 교과서 특성상 신학기에 작업이 이루어질 테니 겨울방학에도 한번 와야겠다는 농담 같은 진담을 다짐으로 주고받았다.
언제 들어도 희망과 낭만으로 가득 차게 하는 잘못 탄 기차가 목적지에 데려다준다는 말은 일용직 현장에서도 느낄 수 있는 말이었다. 우리와 어울리지 않을 것 같던 잘못 탄듯한 이 일용직 경험의 기차가 나와 나의 노동파트너를 데리고, 다음 인생을 이어갈 힘을 주는 멋진 목적지에 내려줄 것이라는 확신으로 가득 찬 날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