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류센터의 패킹, 피킹 업무를 해보고 알게 된 것은 세상에 이렇게 다양한 물건이 있다는 사실과 이렇게나 다양한 취향이 있다는 사실이었다. 한 사람이 어떤 취향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 일상을 보내고 있는지 가장 쉽고 빠르게 알 수 있는 방법은 역시 그 사람의 쇼핑리스트를 보는 일 같다. 최근 나의 주문 전 장바구니에는 건강 관련 식품들이 가득 담겨 있다. 귀리, 카뮤트, 유산균, 단백질 음료, 아몬드 등 남편의 다이어트와 함께 얼떨결에 나도 시작하게 된 건강 관리 아이템들이다. 때로 자존감이 바닥을 칠 때는 자기 관리 도서나 예쁜 옷들이 바구니에 가득할 때가 있다. 일용직 물류현장에서 반복되고 힘든 업무에 잠시나마 멘탈이 흔드릴 때는 타인의 주문 목록 속 물건들을 보고 과연 이걸 주문한 사람은 어떤 사람이었을지를 상상해 보았다. 얼굴도 나이도 모르는 타인의 이런 취향과 일상들을 유추해 보는 재미가 쏠쏠했던 기억이 난다.
한 사람은 고양이를 무척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쇼핑 바구니가 온통 고양이 물품으로 가득했다. 고양이 간식, 고양이 장난감, 고양이 발판 등 알록달록 보기에도 귀여운 물품들이 가득했고 그가 자신을 위해 시켰던 것이라곤 햇반이 전부였다. 자신은 즉석밥을 돌려먹더라도, 고양이 간식은 유기농을 먹이는 참으로 반려묘를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자식 입에 들어가는 것만은 모두 유기농으로 챙기던 나의 지난날이 생각났다. 뉘 집 고양이인지 참으로 자식처럼 사랑받고 있구나 부럽기도 했다.
어떤 이의 장바구니는 스파게티 재료로 가득했다. 저녁메뉴로 이탈리아를 느끼고 싶다는 생각으로 호기롭게 스파게티를 고르긴 했지만 아마도 지극히 한국인 입맛을 가진 사람 같았다. 왜냐하면 스파게티와 함께 시킨 음식들에 콜라 1.5L와 피클, 열무김치 등이 들어있었기 때문이다. 한 입 먹고 한 입 극복하고, 한 입 먹고, 한 입 눌러주고를 반복해야 하는 사람. 그의 저녁상이 느끼하지 않기를 바랐다. 저녁 야식으로 열무비빔밥과 고추장 한 스푼, 참기름을 둘러 한입 가득 물 주문자의 얼굴이 자꾸 상상됐다.
욕망 가득한 다이어터의 장바구니도 있었다. 제로 식혜, 저당 아이스크림, 저지방 버터를 주문한 사람의 장바구니는 줄여먹을지언정 맛있는 것은 포기할 수 없는 사람의 취향이 담겨있었다. 맛있게 먹으면 0칼로리라는 신념으로 살고 있는 건지 저당, 제로, 저지방도 이렇게 먹으면 다이어트는 내년에나 가능해 보였지만 그래도 누군지 모를 그의 다이어트가 꼭 성공으로 돌아가길 바라며 바구니에 그의 주문 상품을 담았다.
애미가 되고서야 이해하게 된 장바구니도 있었다. 비닐포장봉지 50개, 사탕 빅사이즈 한 봉지, 초콜릿 빅사이즈 한 봉지를 주문한 사람도 있었는데 이 것은 아마 어린이집에 보내는 간식을 포장하는 엄마의 장바구니가 아닐까 싶었다. 하나하나 포장하고, 우리 아이에게 한 명이라도 더 친절함과 웃음으로 보답하길 바라는 애미의 마음이 담긴 꼬물꼬물 한 작은 사탕 봉지. 예전에는 이해할 수 없었던 그러나 지금은 알 수 있는 주문 목록이었다.
어떤 이의 장바구니는 유통기한이 임박한 물품으로만 가득 채워진 것도 있었다. 유통기한이 임박한 상품들은
개수가 몇 개 되지 않은 채 한 곳에 모여있었는데 그의 장바구니는 유통기한이 오늘까지인 초밥, 느타리버섯, 샌드위치 등으로만 구성되어 있었다. 아마도 알뜰하면서도 유통기한과 소비기한의 경계 정도는 구분이 확실한 합리적인 사람이 아닐까 생각이 들었다. 아님 주머니 사정이 빠듯한 자취생의 장바구니이거나!
화장품 물류현장에서도 여인들의 피부고민과 취향을 그대로 읽을 수 있었다. 수분크림과 팩으로 가득한 배송박스는 환절기 건조한 피부가 고민을 가진 여자의 것이었을 테고, 이렇게 리들샷을 바르다간 얼굴이 따끔거려 참을 수 없을 텐데 싶게 리들샷으로만 박스를 가득 채운 사람도 있었다. 이 것을 시킨 여인은 아마 다가오는 노화에 대한 고민으로 거울을 볼 때마다 한숨을 쉬던 사람이 아닐까 싶었다. 그녀의 얼굴에는 중력이 조금 덜 작용하기를 바라며 꼼꼼하게 포장을 했다.
누군가의 취향을 안다는 것은 그가 지금 어떠한 삶을 살고 싶은지 또 어떤 삶을 살아왔는지에 대한 관심인 것 같다. 대부분의 것들을 온라인으로 구매하는 시대를 살며 물류현장은 누군가의 취향으로 가득 찬 공간이었다. 그들의 삶을 들여다보며, 알 수 없는 이들의 삶에 관심을 가질 수 있었던 시간은 잊을 수 없는 재미이자 즐거움이었다. 내가 주문한 이번주 장바구니를 보며 배송을 위해 물류센터에서 이 것을 담고 있는 누군가도 나의 취향에 대해 생각하고 있지 않을까 생각하니 흥미로웠다. 아 참으로 밥 하기 싫어하는 그러나 아이 때문에 요리를 놓을 수 없는 딜레마에 빠진 여인의 장바구니일 거라고 생각하며 측은해해 주기를 바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