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디든 갈 수 있으니까

그래서 이렇게 오랫동안, 긴 글을 썼다.

by 모도 헤도헨

성당 마당에 들어가는 순간, 나는 안다.

본당 안의 공기를 마시는 순간, 자리에 앉아 눈을 감는 순간, 나는 느낀다.


잘 왔다고. 오길 정말 잘했다고.


천주교 신자로서가 아니라, 개신교 신자로 35년 동안 교회에 다닐 때도 마찬가지였다.

언제나 일요일 아침이면, 얼마간 몸이 가라앉고 찌뿌둥하다. 날씨가 맑든 흐리든, 덥거나 춥거나, 푹신한 이불은 알맞은 감촉과 온도로 나를 붙들었다. 오늘의 상황과 일정이, 아니 어제와 내일까지 이유가 되기도 했다.


그래도, 그게 무엇이든, 홀린 듯이, 아니면 끌려가듯이, 혹은 꽉 쥐고서 집을 나서면, 신 앞에 서서 그를 만나면, 이불 속에서의 기나긴 '실랑이'는 하잘것없게 느껴졌다. 기억도 나지 않았다.

이런 작은 경험들이 수백, 수천 번이 쌓이면, 어떻게 되는 건가.





여덟 살 때 처음, 집 근처의 교회에 나갔다. 동생이랑 언니도 데리고 와서 같이 다녔다. 3년쯤 다녔을 때 교회가 다른 '구'로 이사 갔다. 교회는 성도들의 집까지 셔틀을 운행했다. 봉고차를 타고 20분인가 30분인가, 차멀미가 심했던 나는 고된 시간이었다. 습관이었는지, 심심해서인지, 그 나름의 신앙이었는지, 언니와 동생이 떨어져나간 후에도 얼마간 꿋꿋이 다녔다.


그러다 결국, 나도 그만뒀다. 6개월쯤 더 다녔던가. 힘들었던 게 이유는 아니었나 보다. 이후 단짝이던 친구를 따라 그의 가족이 다니던 교회에 같이 다녔는데, 거긴 더 먼 곳이었다(차로 한 시간쯤).


그 교회는 그리 오래 다니지 못했다. 친구와 만날 때마다 싸웠는데, 일요일 아침까지 화해하지 못한 어느 날에 교회를 안 가기 시작했을 것이다.


그때, 열한 살인가 열두 살인가 그 나이에도, 나는 나를 설득해야 했다.


나는 하나님을 확실히 믿어. 꼭 교회에 다녀야 할까?

나 혼자서, 기도하고 찬양 부르면 되지 않을까? 성경도 읽고 말야.

꼭 그곳에서 하지 않아도 되지 않을까?


교회를 나가지 않기로 결정하느라 부대꼈던 시간들이 허망하게도, 아무 데도 가지 않는 일요일은 금방 익숙해졌다.

한두 주쯤 성경을 펼치고 찬송을 부르고 두 손을 모았지만, 흐지부지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 일요일 오전 시간은 흩어졌다.


어쨌거나, 내가 하나님을 믿는다는 사실은 변함이 없었다.





실제로, 나는 늘 기도하며 지냈다. 하나님과 대화하기 위해 따로 시간이나 마음을 낼 필요도 없었다.

그랬기 때문에, 중학교에 들어가 목사님의 딸인 짝꿍과 단짝이 된 후, 자연스럽게 다시 교회에 나가는 게 '변화'로 느껴지지도 않았다.


나를 빼면 가족인, '가족 같은' 교회를 결혼 전까지 15년쯤 다녔다. 나는 그곳에서 '내가 착각했던 거지'라고, (우울증으로 나의 모든 것이 흔들렸을 때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도저히, 스스로에게조차 말할 수 없는 '은혜'를, '기도의 응답'을 받았다.


아무리 중요한 일이 있고 바빠도, 시험기간이나 수능 직전에도 나는 교회에 빠지지 않았다. 더 좋은 결과를 주시리라는 '믿음' 때문이 아니라, 뭐든 효율이 중요하다는 걸 '확신'했기 때문이다.

교회에 가지 않고 손에 잡은 일요일 오전의 한두 시간, 어떤 이유를 붙여서든 내가 확보한 그 시간은, 아주 쉽게 소리 소문 없이 흩어져버린다는 걸, 나는 이미 경험했던 것이다. 달콤함, 여유, 아무 일도(주일성수를 하지 않은 벌?) 일어나지 않은 데 대해 그동안 속았다는 기분 등은 두어 주, 길면 서너 달 후면 사라질 것들이었다.


그 대신, 눈앞의 일에 삶의 중심을 흐트러뜨리지 않는다는 자부심, 마땅히 할 일을 마친 후 잡념이 사라진 말끔한 집중의 상태, 내게 허락된 선을 넘기면서까지 애쓰는 대신 그 이상은 맡길 때의 평안함 등은 시간이 갈수록 확실했다.

나는 그것에 삶을 걸기로 했었다.





그럼에도 여전히, 일요일 아침이면, 내 눈앞에 무언가 신기루처럼 나타난다.


갈까, 말까? 꼭 가야 할까? 오늘만 쉴까?

아참, 내게 선택권이 있었지, 하는 보암직도 하고 먹음직도 한 사과 같은 마음이,

아주 불시에.


남편과 세 아이들이 교회로 가고 나니, 이 신기루는 더 손에 잡힐 듯이 생생했다.

내가 성당에 다니겠다고 한 마음과 결정은 의심할 바 없이, 더할 나위 없이 신앙적이고 성스러운 것이었는데, 일요일 아침 내 손에 쥐어진 '사과'를 보면 나조차도 내 진의가 살짝 헷갈릴 정도였다.


내가 개종했다는 말을 들은 어떤 사람들은, 그런데 남편과 아이들은 여전히 교회에 다닌다는 말을 듣고 나면, 알 만하다는 웃음을 띠기도 했고, 편하겠다고 말하기도 했고, 좋으냐고 묻기도 했다.

나는 정색하는 대신, 그냥 '하하하' 웃었는데, 일주일에 하루 몇 시간 육아에서 벗어나보겠다고 '개종'을 할 수도 있는가, 그렇게 의심할 수도 있는가, 그에 대한 답이 필요한가, 그중 어느 것에 정색해야 하는지, 어느 부분의 어느 만큼이 농담인지 알 수 없었기 때문이다.


'혼자' 하는 신앙생활은 편한 만큼 외롭고, 더 자유로운 만큼 더 많은 질문에 휩싸인다.

나는 이 편함과 자유로움만큼, 외로움과 질문의 시간과 공간이 좋다. 필요했다.


그래서 세례 받은 이후로, 성당 안의 어떤 '사회적' 모임도 부러 피했다. 이런저런 소속에서의 봉사, 배움, 사귐 등을 통해 성당 공동체와 더 쉽게 가까워질 뿐 아니라, 천주교 체계를 더 잘 이해하고 나아가 신앙도 자라게 한다는 걸 알면서도 그랬다.


하지만 한편으로, 그렇게 연결된 선 하나 없는 신자가 되어, 오직 하느님 한 분에게만 끌려서 나를 일으키고 나아가게 하고 싶었다. 내겐 또 다른 훈련의 시간이라 생각하면서.





내게 '개종'이란 말은 조금 껄끄럽다. 그렇게밖에 표현할 길이 없어 내가 쓰면서도 말이다.

내가 종교를 바꾸었나, 하면 맞긴 하다. 교회에 다니다 성당에 다니니까.

하지만 나는 믿는 '신'을 바꾼 건 아니다. 게다가 '개신교' 신자에서 '천주교' 신자가 된 것은 여전히 '기독교' 안의 이동이라는 점에서, '장로교'에서 '감리교'로 바꾼 것과 비슷하게, 나로선 큰 의미 부여가 안 된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혼자서 그렇게 생각한다 하더라도, 부산 살다가 서울로 이사 온 것과, 북한에서 남한으로 넘어온 것이 같다고 할 수는 없을 것이다. (그게 어느 때엔 별다른 일이 아니었던 것처럼, 언젠가 별일이 아니게 되리라 희망하지만)

그래서 이렇게 오랫동안, 긴 글을 썼다.


천주교에 안착하여, 개신교에서의 기억은 지우고, 거기보다 좋은 이곳의 어떤 점을 찾아내면서 스스로의 선택에 만족하며 지낼 마음이 없다.

그렇다고 언제고, 이곳에서 뭔가 거슬리면 되돌아갈 태세로, 어정쩡하게 지낼 생각도 없다.


나는 다만 하느님이 아닌 다른 것에 얽매이지 않고 싶을 뿐이다.

(좋은 공동체든 아니든) 얼기설기 얽힌 관계, 맡고 있는 직책, 재미있고 유익한 활동, 습관, 부담감, 두려움... 그 무엇에도.


때로 하느님이 아닌 것들로 믿음이 생기고, 이어지고, 성장할 수 있다는 걸 안다. 나 역시, 어떤 사람을 통해 하나님을 만났고, 배웠고, 느꼈다. 어떤 사람을 보면서 믿음을 키웠고, 어떤 사역을 감당하며 하나님을 경험했다.


아무리 그래도, 그것들은 본질이 아니다.


내가 하느님을 믿기로 매번 선택하는 것은, 하느님 앞에 서서 나를 뒤덮었던 것을 치우고 내 안을 채웠던 것을 비워내고 가장 나다워지는 그 시간 때문이다.


그 시간과 공간이 주어지는 곳이라면, 이 교회나 저 교회나 상관없었던 것처럼, 교회든지 성당이든지 상관없다. 멀든 가깝든, 소규모든 대규모든, 골방이든 광야든, 동역자나 공동체가 있든 없든 무방하다.


그런 선택을 하느라 혼자가 될 땐 물론 외롭지만, 괜찮다.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디든 갈 수 있으니까.*

나는 그렇게 내 마음에 귀를 기울이는 일이, 그렇게 하느님을 마침내 만나는 시간이 더 귀하다.



*고정희의 시 <상한 영혼을 위하여> 중,

‘외롭기로 작정하면 어딘들 못 가랴‘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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