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가움 하나하나에 비로소,
교리교육 과정에 '성지순례'가 포함되어 있다. 우리 본당은, 수료를 한 달쯤 남겨둔 주일에 대전의 갈매못성지로 다녀왔다.
성지순례를 가는 날, 나는 코로나 확진으로 격리생활을 하다 3주 만에 성당에 가는 것이었다. 대모를 구하지 못한 상태였고, K언니와 A언니가 기도해준다고는 했지만, 얼마간 포기 상태였다(나만 없어, 대모). 나의 개종이 하느님의 인도가 아니라, 어리석은 방황이거나 간음과 같은 죄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나를 침울하게 했고, 그런 생각 때문인지 코로나 후유증 때문인지 몸도 마음도 기운이 없었다.
그냥 무언가를 거스르는 데 아무 자신이 없어져서, 시간에 맞추어 성당으로 갔다. 도와주세요, 인도해주세요, 제발... 그런 기도인지 모를 말을 한숨 쉬듯 내뱉으면서.
대절한 버스의 짝은 나보다 세 살 위인 S언니였다. 간혹 교리반에서, 교중미사에서 옆 자리에 앉아서 가볍게 말을 주고받기도 했다. 워낙 사람을 편안하게 해주고, 일상적인 대화를 잘 이끄는 사람이었다.
그 언니도 교회에 다니다 성당에 왔다고 했다. 나만큼 오랜 신자는 아니고, 그때까지 (교회에서) 세례도 받지 않고 예배 외의 모임에 참여하거나 봉사를 맡거나 한 적 없는 초신자였지만, 어쨌든 우리의 전사는 대화의 물꼬가 되어주었다.
그게 시작이었다. 그동안 5개월이라는 길다면 긴 시간 동안 한 공간에서, 같은 목표를 가지고 교리 공부를 같이 해놓고도 눈인사 정도만 했던 동기들과, 그리고 우리를 도와주셨던 봉사자들과 비로소 눈을 맞추고 속 이야기를 하고 웃음을 나누었다. 그러는 가운데 나는, 누군가 일부러 군데군데 놓아둔 것 같은 '개신교'의 흔적을 보았고, '교회'와 '개종'에 관한 대화에 초대되었다.
물론, 처음부터 끝까지 그 이야기만 한 것은 아니었고, 또 좋은 이야기만 있었던 것도 아니었다. 어떤 봉사자는 "나도 교회 다니다 왔어요. 20년 전에 온 가족이 다같이. 그때 목사가 우리 보고 지옥 갈 거라고 했어."라며 치를 떨듯 말했고, 어떤 봉사자는 독실한 개신교 신자였던 상사가 자기를 얼마나 괴롭혔었는지 담담하게 말하기도 했다.
내게도 비슷한 경험이 있을 거라 짐작한 것인지, 아니면 나를 보고 묻어두었던 무언가가 떠오른 것인지 모르겠다. 아직 나는 그런 이야기를 들으면 부끄럽고 속상할 뿐이었지만 그렇다 해도, 그들의 이야기는 '나'만 다르고 '나'에 대해 모를 것이라는 생각에 괜히 움츠러들었던 내 어깨를 두드려주었다. 우리 사이에 보이지 않는 벽이 가로막고 있다고 여겼는데, 사실 정말 벽이 없었던 건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에 가만히 머리를 긁적였다.
점심 식사 때에는 짝꿍 S언니, 함께 입교한 70대 자매, 함께 입교한 모녀 이렇게 여섯이 한 식탁에 앉았는데, 그중 나까지 다섯 명이 교회에 다니다 온 사람들이었다. 원래 가족인 분들과 한 자리에 있으니, 또 맛있는 걸 먹는 시간이다 보니 분위기는 격의 없이 편했는데, 다른 기도문보다 주기도문이랑 사도신경 외우는 게 더 어렵지 않으냐(없던 기억을 만드는 게 아니라 자리잡았던 걸 바꾸어야 하니까)부터 신부님 참 동안이지더라까지 '우리끼리'만 할 수 있는 푼수 같은 이야기를 하며 오랜만에 키득거리며 웃기도 했다.
나처럼 늘 혼자였던 20대 청년이 있었다. 그도 첫 인사할 때 교회에 다니다 왔다고 했다. 그의 눈빛에서, 언행에서, 태도와 분위기에서 나만큼이나 신앙에, 개종에 진지한 것을 짐작했다. 한 번도 개인적으로 말을 붙여보진 못했지만, 나는 늘 반가웠다. 그도 나도 각자 외로운 결정을, 나름의 중대사를 겪고 있다는 것을, 서로 알아보았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몰래 응원을 보내고 있었다. 그도 여기까지 왔구나. 응원을 하는 입장이면서 의지가 되었다.
성지순례 다음주에 소감을 말하는 자리에서, 그는 말했다. 가족 모두가 개신교이고, 특히 어머니는 권사님이기도 하고 독실한 분이시라 아들이 천주교로 개종한다고 할 때 마땅치 않아 하셨단다. 어디 얼마나 가는지 보자, 하는 태도셨는데, 성지순례까지 다녀오는 걸 보고 진심이라는 걸 인정하고 묵주반지를 맞춰주셨다고. 내가 다 감사했다.
무엇보다도, 하느님께서 내게 마련해둔 것은 미사, 그리고 미사를 집전하신 신부님이었다.
성당의 물리적 규모는 크지만, 성도 수가 30-40명 정도 되는 작은 공동체였다. 모인 신자들의 반이 우리들이었다. 복사도 없고, 사회자도 없이, 제대 위에서는 신부님이 모든 절차를 담당하고, 그 외 나머지는 사회자 석에서 수녀님이 인도했다. 반주자도 없어서, 수녀님을 따라 기도문 외우듯 성가를 불렀다. 어떤 작은 교회에 온 것 같았다.
그동안 성찬 때에 우리 예비신자들은, 아직 성체를 영할 자격이 되지 않아 자리에 가만히 앉아 있었는데, 신부님께서 우리들도 나오라고 하셨다. 두 손을 모으고 다른 신자들처럼 줄을 서서 신부님 앞에까지 가면, 신부님은 한 사람 한 사람 머리에 손을 올려 짧게 안수기도를 해주셨다. 제자리로 돌아오는 발걸음이 왜 그렇게 벅찼었는지.
미사가 끝날 즈음, 우리들을 환영한다며 신부님은 직접 만드신 노래를 선물로 불러준다고 하셨다. 한쪽에서 기타를 가져와 메고선 기타 치며 찬양을 불렀다. 나는 입술을 깨물고 노래를 들었다. 반가워서 눈물이 났다. 내게 익숙한 장면, 친근한 분위기였다. 처음부터 끝까지,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것 같았다.
멍하고 뚱했던 상태로 갈매못성지로 가는 차에 올랐을 때, 동행하는 수녀님은 자리를 돌며 우리에게 상자를 내밀었다. 말씀이 적힌 종이를 준비해 오신 것이다. 나는 조금은 설레는 마음으로, 조금은 무딘 마음으로 말씀종이를 뽑았다.
당신을 그리면서 성소에 왔사오니
당신의 영광을 뵈오려 합니다.
(시편 63,2)
울컥했다. 그렇지... 나는 다른 그 어떤 것도 아니고, 하느님만을 그리면서, 하느님의 영광을 뵈려는 마음으로 이곳에 왔지. 다른 그 어떤 것도 아니다. 다른 건 어떻든지 상관없다. 괜찮다.
성지순례에 다녀오는 길에, 갈매못성지에서, 그리고 미사에서, 하느님은 내가 보아야 할 것은, 내가 진정으로 원했던 것은 바로 당신이라고, 당신의 영광이라고 일깨워주시고 드러내셨다. 그러면서도, 그동안 혼자 외롭다고, 마음을 나눌 수 없어 갑갑하다고 했던 것을 풀어주셨다.
개신교에서든 천주교에서든, 교회에서든 성당에서든, 그 어느 곳에서든 당신뿐 아니라, 나처럼 당신을 그리고 당신의 영광을 보려는 사람들을 찾을 수 있을 거라고, 형식이나 겉모습은 때에 따라 상황에 따라 비슷할 수도 다를 수도 있다고, 그런 것은 상관없다고, 아무것도 아니라고 말씀하시는 것 같았다.
갈매못성당에서 신부님의 노래가 울려퍼지고, 그다음 제대 뒤에 벽처럼 있던 문이 양쪽으로 활짝 열리며 바다가 보였을 때, 여기저기서 탄성이 나왔다. 나 역시, 언제부터 마련해두셨는지 모를 인도에, 어디서부터 쌓였는지 모르는 감탄이 주책없이 흘러나왔다.
우리 동네에 도착했을 때, 내 마음은 갈 때와 완전히 달라져 있었다. 그럴 수 있을까 할 정도로.
곧 대모님도 구해졌다. 나를 위해 기도해주는 사람과 그에 응답하는 하느님이 자꾸만 든든했다.
기도문을 외우고, 성경 필사 숙제를 시작했다. 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지만, 아무 일도 아니었다.
내가 기도문을 혼자 외다가, 아이들 앞에서 확인을 받았다. 세 아이들이 그 일에 얼마나 적극적인지, 재미까지 생길 판이었다. 오늘 쓸 성경의 양을 다 썼는지 묻는 일도 거르지 않았다.
예상하지 못한 골짜기를 지나고, 상상한 적 없던 인도를 받아, 나는 결국 천주교에서 세례를 받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