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례 받은 날, 남편과는 싸우고

한없이 좋은 날, 한없이 좋기만 하지 않아서

by 모도 헤도헨

한번 마른 사막을 건너고 골짜기를 빠져나오고 나니, 그런 경험을 통해 더욱 확신하고 나니, 나는 몸도 마음도 너무나 가뿐했다.


하느님으로부터 한없이 축복을 받고 있다고, 세심한 인도를 받고 있다고 생각했다. 마치, 엄마아빠를 대동하고 놀이터를 향해 출동하는 다섯 살짜리 어린아이처럼, 나는 이제 뭐든지 잘 풀릴 것 같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다 이겨낼 수 있을 것 같고, 어떤 자격을 부여 받은 것 같고 그랬다.


마지막 교리수업은 보좌신부님의 강의였다. "여러분은 왜 성당에 오셨어요?" 질문하셨다. "잘 모르겠지만 알아보려고..." "하느님 믿고 싶어서요.“ 이런 대답들이 이어졌다. 다음으로 가만히 있는 나를 지적하셨다.


ㅡ순례자의 길을 더 잘 가고 싶어서요.

ㅡ... 네?

ㅡ... (천주교에선 이 단어를 안 쓰나...) 순례자...의 길을... 더 잘... 가려고...

ㅡ어후. 제가 신자분들에게 이 질문을 해본 이후로 처음 듣는 답이었어요.


자기 삶을 하느님께 통째로 바친 신부님까지 당황시킬 만큼, 나는 좀 그런 상태였다. (그 말은 물론 진작부터 내 진심이었지만)





세례식이 있기 전날, 예행연습이 있었다. 미사보를 선물로 가지고 온 대모님도 함께 했다.

엄숙하고 경건한 분위기에서 여럿이 난생처음 해보는 의식을 치르는 일이라, 보좌신부님의 설명을 듣고 연습을 했는데도 내일 잘할 수 있을까, 조심스러웠다.


특히 세례식의 핵심인 물로 세례를 주는 의식은, 한 사람씩 앞으로 나가면 신부님이 신자의 머리에 주전자로 세례수를 부어주는 것으로 진행된다. 그러려면 90도로 인사하듯 상체를 앞으로 굽힌 다음, 그 상태에서 머리만 또 90도로 옆으로 돌려야 한다. 이게 처음 해보는 자세이기도 하고 제대로 하면 조금 우스운 꼴이라 머뭇거리는 사람이 많았다. 신부님은 온통 젖거나 줄줄 흘리지 않으려면, 부끄러워도 몸을 확 굽히고 고개를 홱 돌려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그리고 드디어 세례를 받았으니 첫 영성체를 하는데, 일반 미사 때와는 달리 세례식에는 '양형 영성체'로 한다. 성체를 포도주에 적셔서 신부님께서 직접 내 입에 넣어주시는데(정확히는 혀 위에 얹어주시는데), 절대 떨어뜨리면 안 되니 혀를 길게, 끝을 살짝 오므려서 내밀어야 한다고, 그리고 부끄러워도 금방 집어넣지 말고 잠시 정지 상태로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셨다. 이 의식은 연습조차 할 수 없어서 신부님의 설명을 들으며 머릿속으로 그려보았다.


그 외 다른 것은 안내자의 인도에 따라 움직이면 되는 것이었다.


다를 것 없는 시간의 흐름에 선을 긋고 여기서부터 '새해'라고 이름을 붙이고 약속이라도 한 듯 모두 새로운 마음들을 가지니 정말 다른 날이 열리기도 하는 것처럼, 약속과 상징과 의례로 만들어진 이 '세례식'을 통해 우리는 새로워지기로 한다. 나는 하느님의 자녀가 된다.

마음이 덜 여물거나 혹은 너무 굳어버렸다면 어땠을까 모르겠다. 나는 인간들이 이런저런 의미를 넣어 공들여 만들어놓은, 하지만 그 자체로는 아무것도 아닌 일련의 움직임들을 소중하게, 성스럽게 받아들였다.





세례식 당일. 부활절이었다. 교중미사 중에 세례식을 하기로 했다. 그러니까 일요일 11시.

남편과 아이들이 다니는 (내가 다니던) 교회에서도 부활절 행사가 있었다. 그래도 나에게 중요한 날이니, 교회에 빠지기로 하고 다같이 미사에 참여해서 축하해주기로 했다.


미사가 익숙하지 않아 나처럼 어리바리할까 봐(“처음 미사를 드리고”), 나는 며칠 전부터 복사한 미사통상문을 남편과 아이들에게 나눠주며 연습을 시켰다. 하지만 아이들은 갈수록 이런 @.@; 표정이었고, 남편은 뭐랄까, 수동적이었다. 그런 준비보다도, 편안한 마음으로 임하고 싶다고 했다.


아침. 평소보다 분주하고 들뜬 상태에서, 나는 남편과 묘하게 부딪혔다. 원래도 지각을 안 하는 남편은 늦지 않도록 아이들을 재촉했고, 나는 평화롭고 부드러운 시작을 원했다. 그래놓고 먼저 가 있어야 하는 내가 늦어서 남편에게 차로 데려다달라고 부탁했다. 차에서 남편은 입을 꾹 다물고 있었다.


짧은 리허설을 마치고 미사가 시작됐다. 그리고 세례식도. 나는 그럴 줄 알았는데, 역시 울컥해서 조용히 울었다. 나는 교회에서 세례를 받았었는데, 또 받는 것에 대해서 따지는 마음 같은 건 들지 않았다. 이미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는데, 또? 왜? 그런 생각보다 다시 태어나는 것 같았다. 이번에도 역시.

나라는 사람은 그런 일이 한 번으론 부족한 것인지도, 아니, 때때로 필요한 건지도 모르겠다.


세례식과 미사가 끝났을 때, 나는 비로소 얼마간의 방황을 끝내고 하느님께로 가는 길로 다시 들어섰다는 안도, 새로운 세계에서 첫 단계를 잘 맺었다는 기쁨, 지금까지처럼 앞으로도 하느님께서 인도하시고 함께하시리라는 든든함으로 벅찼다. 신부님들과 수녀님들, 교리를 가르쳐준 선생님, 봉사자 분들, 동기들, 처음 얼굴을 보는 구역 식구들, 그리고 뭇 신자들의 축하를 한껏 받고는 감격했다.


이 순간을 남기고 싶어서 사진을 찍으려는데, 남편이 보이지 않았다. (아이들까지 네 명이 함께 앉을 빈자리가 없어 2층 저 끝쪽에 앉은 걸 봤는데 거기에도 없고... 왜 끝나자마자 내가 있는 자리로 오지 않지?) 제단을 배경으로 신부님과 동기들과 단체 사진을 찍고, 대모님과도 찍고, 독사진도 찍고... 가족이랑도 찍어야 하는데. 전화 연결이 한참 안 되다 통화가 되었다.


ㅡ어딨어? 빨리 와.

ㅡ애들도 너무 힘들어하고, 나도 정신없고 답답해서 나왔어.

ㅡ뭐라고? 사진 찍어야지. 빨리 와.

ㅡ그래. 알았어.


사진을 찍는데도 계속 시큰둥해 보였다. 영원히 남을 사진인데, 저런 표정으로 찍다니. 마음에 들지 않았다. 나의 기쁜 일에 함께 기뻐해줄 수 없나? 이 정도 상황에 멘탈이 나가나?


대모님이 여기까지 오셨으니 안 그래도 식사를 함께하려고 했는데, 성당에서 식사를 준비했다기에 식당으로 갔다. 식당도 역시 어수선했다. 줄도 길고, 자리 잡기도 어려웠다. 그래도 어찌어찌 한 자리에 앉아 점심을 먹었다. 일곱 살 막내는, "엄마, 나는 커서도 다시는 성당에 오지 않을 거야. 정말 재미없었어."라고 내 귀에 속삭였다. (나중에 듣자니, 그 자리에선 제대로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았다고...) 나는 시원하게 웃었다. 이야기를 전해 듣고 대모님도 웃었다. 대모님은 아이들에게 부드럽고 친숙하게 대하려고 했다. 그런데, 남편은 대모님에게 최소한의 예의만 갖출 뿐이었다.


대모님께 감사 인사를 하고 헤어지고, 아이들과 남편과 집으로 돌아왔다. 선물과 꽃다발, 기념으로 받은 것들을 정리한 후, (주말이면 종종 하던 대로) 아이들에게 게임 시간을 주고 남편과 나왔다. 산책하다 카페에 들어갔다. 나에게 너무 좋은 하루니까, 남편과도 불편한 상태로 있기 싫었다. 하지만 대화는 겉돌았다.


다시 집으로 돌아오는 길. 나는 결국 참지 못했다.


ㅡ오늘 진짜 왜 그래?

ㅡ뭐가?

ㅡ나한테는 너무 기쁜 날인데, 왜 하루 종일 그렇게 못마땅한 얼굴이냐고.

ㅡ... 후... 당신한테는 오늘이 기쁜 날이겠지만, 나한테는 그렇지 않아.


나를 떠나보내는 것 같다고 했다. 이제 신앙생활이 분리될 거라고 생각하니, 마음이 복잡하다고 했다. 처음 내가 성당에 가보겠다고 했을 때, 그리고 이후로 줄곧 이런 결과를 예상하지 못했던 건 아닐 테지만, 막상 '정말 이렇게' 되어버린 상황 앞에서, 그도 그럴 수도 있겠다 싶...기는커녕, 실망스러웠다. 왜 같이 기뻐해주지 않아? 어쨌든 오늘은 나의 날인데? 내가 아는 당신은 이렇게 마음이 넓지 못한 사람이 아닌데.


몇 마디 더 불유쾌한 말들이 오갔다. 슬프고 지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왔다. 오늘 하루에, 이런 일은 정말 바라지 않았다.





그날의 일기에는 세례식의 설렘, 떨림, 감격과 함께 남편에 대한 서운함이 흠처럼 쓰여 있다.


한없이 좋은 날, 한없이 좋기만 하지 않았던 것이 다행이라 생각한다. 옥에는 티가 없어야겠지만, 나도 내 삶도 옥이 아니니까. 티와 흠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뭐가 잘못되었나, 이렇게 된 마당에 그럼 어떻게 해야 하나, 잠잠한 시간이 내겐 언제나 도움이 되었다.


내일이면 성탄절 세례식이 있다. 예비신자로서 6개월, 세례식 이후로 8개월쯤의 시간이 지나는 동안, 나는 가족과, 남편과 별개의 신앙생활을 했다. 이제 와서는 조금, 남편의 마음을 이해한다. 우리는 어쩌면 정말 다른 길에 들어선 걸지도 모른다. 그에 대해 애도의 시간을 가졌어야 했던 걸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역시 이런 생각도 든다. 모든 걸 함께하는 게 꼭 좋은 건 아니다, 함께 있는다고 꼭 같은 마음은 아닌데 그걸 모르는 게 더 비극이다, 각자의 세계에서 어떻게 지내는지 말하지 않으면 모를, 어쩌면 말해도 모를 그런 서사를 쌓아서 함께 있어도 궁금한 게 괜찮을 수도 있겠다, 그러다 또 만나게 될지도 모르고.






keyword
이전 09화멍하고 뚱하게 성지순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