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없어, 대모

대모가 구해지지 않는다면, 여행을 끝내야겠다.

by 모도 헤도헨

세례를 받기 위해선, 기도문을 외워 '찰고'를 통과하고, 성경 본문(나의 경우 <마르코복음>)을 '필사'하는 것 외에 한 가지가 더 필요했다. 바로 대모님(남자라면 대부님).


"여러분들 대모/대부 정하셨나요? 이제 정하셔야 해요. 혹시 없으시면 말씀하세요." 이런 이야기를 교리교육 중반쯤부터 선생님과 봉사자 분들이 하기 시작했다. 나는 대모를 부탁할 분이 두 명이나 있었기 때문에(나를 천주교로 인도한 A언니와 K언니), 나는 그 부분은 걱정하지 않았다. 이전 글에도 썼듯이, 다른 두 가지도 나 몰라라 하고 있었지만.

어쨌거나 나는, 세례를 받지 않기로 할 수도 있었기 때문에, 마음이 정해지면 그때 부탁해야지, 생각했다.


이제 6개월 중 5개월이 지나고 있었고, 대모님의 이름을 적어내야 했다. 나는 언니들에게 일단 물어보기로 했다. 그런데...


나처럼 개신교에서 개종한 A언니에게 먼저 물었다. 언니는 자신에게 부탁해줘서 기쁘다면서, '견진성사'(세례성사를 받은 후 신앙적으로 성숙하면 받는다. 종교적 성인식. 실제적으로는 예비신자 교리교육처럼 교육을 받는데, 그보다는 간단하다)를 받지 않아도 가능하냐고 물었다. (선생님께 여쭈어보니) 안 되는 일이었다. 언니는 견진성사 받지 않은 걸 처음으로 후회한다고 했고, 나는 아쉬웠다. 기도 부탁을 하고 대화를 끝냈다.


K언니는 한참 답이 없었다. 나는 시무룩한 채로 시간만 보냈다. 며칠 후 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내 부탁은 간단했는데, 답은 하지 않고 교리교육은 어떤지, 성당에서 지낼 만한지 물었다. 그러고는 하는 이야기가, 언니가 그사이 수녀가 되기로 했다는 것이었다. 헉! 며칠 연락이 되지 않은 것도 두 군데 수녀원에서 수행을 하는 중이라 그랬다고. 결국 한쪽으로 정했고, 수녀가 되는 서원식이 내가 세례 받는 부활절 직전에 있으며, 수녀는 누군가의 대모가 될 수 없다는 것이었다. 너무 충격적인 소식이라 언니 이야기만 묻다 시간이 다 갔다. 전화를 끊기 전, 언니는 기도하겠다고 했다.


다음 교리시간에 선생님에게 쭈뼛쭈뼛 말했다. "저... 대모님을 못 구할 것 같은데요." 선생님은 그러냐며 봉사자에게 말하라고 했다. 봉사자에게 말하니, 머뭇거리다 알겠다고, 구해보겠다고 말했다.


이전에 그분들이 '대모/대부가 없으면 말하라'고 했을 때, 나는 예비신자가 대모/대부를 못 구하는 경우가 흔하고, 그래서 말만 하면, '아, 당신에겐 이 분이 딱이겠군요.' 하며 좋은 대모/대부를 바로 연결해줄 줄 알았다. 그런데 그때까지 대모/대부를 구하지 못한 사람은 나 포함 네 명이 다였는데(모두들 어디서 구하는 걸까...), 나 말고 세 명은 미리 말해서 우여곡절 끝에 그제야 대강 구해진 상태였고, 나를 위해 또 누군가 찾아야 해서 그분들도 난처한 것이었다. 당연하게도, 언제든 누군가의 대모/대부가 되겠다고 준비된 사람들의 명단 같은 건 없었다.


예비신자의 나이와 결혼 여부와... 그런 것들을 따져 떠오르는 사람들에게 그분들도 그제야 알아보는 것이고, 그게 후딱후딱 될 일은 아니었다. 어쨌든 봉사자 분은 내게 맞는 사람이 바로 떠오르지 않는 얼굴이었고, 나는 거기에 그때까지의 내 고민이 가득한 한 마디를 보탰다. "저처럼... 개신교에서 개종한 분이었으면 좋겠어요."





그 와중에 코로나에 걸렸다. 그때까지 3년 동안 잘 피했는데, 다섯 식구가 한꺼번에. 2주 동안 집 안에서 격리되어 보내는 동안, 아이들은 금방 제 컨디션을 되찾았는데 남편과 나, 특히 나는 무기력증이 오래갔다. 몸도 마음도 한없이 바닥으로 꺼져가던 때에, 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만약 대모가 구해지지 않는다면, 세례를 받지 말아야겠다.


개신교와 교회에 대해 크고 작은 아쉬움과 실망이 쌓이다 끝내 내린 결정, 개신교를 떠나 천주교에 들어갈까, 일단 알아보자, 하고 시작했던 도전이, 모험이 여기서 끝나는 건가 싶었다. 얼마간 새로웠고 신선했고, 여행하듯 배우고 알았고, 때때로 어색했으나 이곳에서의 삶을 그려보기도 했다.


하지만 줄곧 나는, 이방인이 되어 겉도는 듯한 느낌을 받았고, 그때마다 개종의 시도가 실은 죄를 지은 게 아닐까 의심하느라 괴로웠다. 시끄러우나 내 귀에 의미 있게 들리는 소리는 하나도 없는 '번화가'에서 스승을 찾아, 인도자를 찾아, 혹은 동행자를 찾아 순례하는 마음으로 이곳에 왔으나, '사막' 같았다. 아무도 없었다. 나와 소통할 존재가 보이지 않았다.


기도를 해야 할 때인데 기도도 할 수 없었다. '하느님,'으로 시작하면 기도가 나오지 않았고(신의 이름 앞에서), 어떤 말이든, 어떤 식으로든 자유롭게 기도했던 나는 '기도문'을 외는 것은 기도라고 생각되지 않았다.


5개월을 성당에 다녔으나, 엘리베이터에서 어쩌다 만나 인사하는 이웃처럼, 아무도 '연결'된 사람은 없었고 심지어 대모가 되어줄 사람조차 없다.

나는 내가 벌을 받고 있다는 생각을 지울 수 없었고, 씁쓸해하며 자리를 털고 일어나려 했다.


그래, 이 막막했던 모험을 이제 끝낼 때가 된 건지도 모르지. 대모가 구해지지 않는다면, 그렇게 알아야겠다.





그렇게 삐딱하게, 엉거주춤한 채로 있을 때, K언니에게 전화가 왔다. 하느님께서 기도를 들어주셨다면서.


나에게 소개해줄 대모를 찾으며 기도했는데, 정말 딱 맞는 분을 찾았다고 했다. R언니는 K언니의 견진 대모이기도 한데, 청년 때 오래 같이 활동했고 진심으로 존경하는 언니라고. 그래도 (세례식을 위해 적어도 두 번 오셔야 하고, 자주 만나진 않더라도 관계를 이어가기 위해서) 집이 멀면 안 될 텐데, 알아보니 그 언니가 최근에 내가 사는 도시(우리 집에서 차로 20분 거리)로 이사했다는 것이었다. 언니는 정말 놀라고 기뻐하면서 내 이야기를 전했고, 그분은 기꺼이, 감사한 마음으로 대모를 수락해주셨다고 했다.


나는 눈물이 날 것처럼 감사하긴 했으나(대모조차 없는 내 처지가 그야말로 '엄마 없는 애'가 된 기분이었다) '개신교에서 개종한 사람, 적어도 개신교에 대해 조금은 아는 사람'이길 바랐기 때문에, 나로선 이게 '하느님의 응답'으로 느껴지진 않았다. 언니는 그분도 나처럼 고민도 많고 질문도 많은 사람이고, 그런 걸 좋아하는 사람이니, 한번 만나보라고 했다.


그분과 따로 연락해서 약속을 잡고 떨리는 마음으로 만났다. 성경을 선물로 가지고 우리 집 근처로 온 그분과 나는 카페에서 두 시간 남짓 이야기를 나눴다. 나는 소심하거나 내성적인 사람은 아니지만, 어떤 사람과 편하고 친밀하게 지내는 데 젬병이다. 심지어 이런 관계는 경험해보기는커녕 본 적도 없기 때문에 조심스럽기만 했다.


그분은 나보다 두 살 위였고, 나의 막내와 동갑인 딸이 있었다. 남편의 직업이 같았다. 그런 것들로 이야기를 편하게, 술술 이어갈 수 있었다.


그보다 놀라운 건, 그분의 신앙 여정인데, 그간 에큐메니컬운동(교파, 교회의 차이를 초월하여 모든 기독교 교회를 통일시키고자 하는 운동)을 하셨다는 것이었다. 오래 봉사도 하고 일도 하셨을 뿐 아니라, 이것을 전공으로 유학도 다녀오셨단다. 평신도 목회자라고.

거기다, 교회를 바꾸려고 ‘싸운다’는 표현을 썼고, 스스로를 ‘반동분자’, ‘의문반발심투성이’라고 말했다. 나는 속으로 생각했다. 아니, 이럴 수가. 내가 나에게 쓸 표현들인데.


그분과 헤어지고 돌아오는 길, 나는 만나러 갈 때와 다른 의미로 가슴이 떨렸다.

내가 개신교에서 천주교로 넘어가기로 한 건, 개신교가 영 틀렸고, 천주교가 아무래도 옳다는 판단을 해서가 아니었다. 나는 줄곧 (개신교 안에서 충분히 행복할 때에도) 두 종교(뿐 아니라 예수님을 믿는 모든 종교)가 나뉘어 서로 배척하는 게 이상하다고 여겼다. 인간들의 불화와 어리석음, 잘못된 선택으로 여차저차 갈라졌고, 이제는 되돌려 하나가 되기 어려울 정도로 문화와 체제가 달라졌지만, (마치 남한과 북한처럼) 서로 미워할 이유도 싸울 이유도 없을뿐더러, 할 수만 있다면, 어떤 식으로든 어떤 정도로든 화합하는 게 옳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역시나 통일처럼) 평소엔 따로 깊이 생각하지 않는 주제이긴 했지만.


성당에 다니면서 생각보다 쉽지도 편하지도 않았다고, 말로 딱 표현할 수 없는 어려움과 어색함이 있었다고, 어떻게 견디고 나아가면 되느냐고, 그런 좁은 이야기를 하고 싶었던 내게, 고작 그런 의지처를 찾던 내게, '교회는 하나'라고 주장하고 실행하는 분을 내 앞에 데려와주신 것이다.


이렇게 응답하실 수도 있구나. 이렇게 누군가를 만나게 하실 수도 있구나.





천주교로 개종한 후에 한 번이라도 후회하거나, 죄책감 들거나, 다시 교회 갈까, 생각한 적 없냐는 질문에, A언니는 '네버'라고 답했다. 의문점이나 불만이 있으면 신부님에게 여쭸고, 이런저런 모임에 참여한 후 자신에게 맞는 것(피정, 고해성사)과 안 맞는 것(성모성심 모임, 레지오 모임)을 찾았다고. 묵주기도가 불편해서 안 하고, 싫다고 도망가도, 그 이유를 솔직히 말해도 누구도 뭐라 하거나 강요하지 않는다고. 긴 역사와 타락과 회개의 경험을 통해 천주교는 뭔가 깨달은 것 같다고.


그리고, 개종이 '간음'과 같은 죄인지 하느님의 '인도'인지 사이에서 의심하고 불안해하는 내게 덧붙였다. 이렇게 좋은 예수님을 믿는 일에, 죄책감을 갖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뭔가 억지로 하지도 말고.


사람 마음 안에서 일어나는 일에 대해, 무엇이 맞다고 혹은 틀리다고, 누가 말할 수 있을까? 같은 질문에 대해 사람마다 서로 다른 결론에 이르고, 의견을 나눌수록 각자 공고해질 뿐이며, 결코 정답을 알아낼 수 없고, 어쨌거나 한낱 개인의 내면세계의 일인 것을.

하지만 어떻게 할까, 어디로 가야 맞을까, 고민하는 자체가, 마음이 이끄는 대로 가며 몇 번이고 앉았다 일어났다 하고 되돌아보았다 멈추었다 하는 것이 무의미할 리는 없다. 그러는 가운데, 어떤 것에 내가 끌리고, 어떤 것에 놀라는지, 어떻게 하면 내가 성장하고 어떻게 하면 멈추다 썩거나 뒤쳐지는지, 그리고 과연 어떤 생각과 판단이 스스로를 속이는 쪽인지, 아니면 흐릿한 가운데서도 제대로 간다고 확신하는 쪽인지, 그 차이를 알게 되는 것 같다.


신을 믿는 일에 너무 비장해지고 말았지만, 다행스럽게도, 결론은 가뿐한 것이었다.

이렇게 좋은 예수님을 믿는 일에, 어떤 당위에도 틀에도 짓눌리지 말고, 어떤 의무감과도 죄책감과도 함께 가지 않을래, 하는.




keyword
이전 07화신의 이름 앞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