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느님'에게 기도할 수 없었다.
ㅡ복음서 중에 가장 먼저 쓰인 복음서가 뭐예요?
원래 교리수업은 평신도 선생님이 담당해주셨는데, (교육을 받아서 어떤 자격을 받는다고 한다. 수녀님이 가르치는 반도 있었다) 수업 후반 즈음 두 차례 신부님의 강론 시간이 있었다. 강당에서 다른 반까지 마흔 명 정도가 함께 모였다. 성경에 대해 설명해주시는 중이었던가, 신부님이 질문하셨다. 나는 무심코 대답했다.
ㅡ마가복음이요.
ㅡ뭐라고요?
나는 안 들리셨나 싶어, 조금 크게 다시 말했다.
ㅡ마가복음이요.
ㅡ(미간을 찌푸리고) 네?
ㅡ마가...
그 순간, '아차, 천주교에서 쓰는 말이 조금 달랐지' 생각났다. 그러니까 거의 같은 성경(천주교 성경에 있는 7권이 개신교에서는 빠졌다)이지만 번역이 달라서, 이름이나 지명 같은 고유명사까지 다른 게 있다. 창세기, 욥기, 이사야, 요한처럼 같은 경우도 있지만, 탈출기-출애굽기, 판관기-사사기, 에제키엘-에스겔, 필리피-빌립처럼 조금씩 다르기도 하다. 그건 이미 알고 있었다. 하지만 처음 듣는 천주교식 이름을 듣고, '아, 이건가 보다' 하지, 그 반대로 바꾸는 건 안 된다.
아무튼 그래도, '마가복음' 정도는 많이 들었는데... 갑자기 기억이 안 나는 것이었다.
ㅡ... 마카오..?
ㅡ...
ㅡ...
ㅡ개신교에서 왔어요?
ㅡ... 네.
신부님은, 떨떠름한 표정으로 '아무튼 개신교 신자들은 성경을 읽긴 읽는데, 우리는 안 읽는다' 그런 식의 말을 이어서 할 뿐이었다.
이상하게 부끄러운 그런 순간들도 함께, 예비신자 6개월 중 5개월쯤 지나고 있었다. 시간에 맞춰 성당에 가서 교리수업을 듣고 미사를 드렸지만, 어떤 영적인 감흥도 없었다.
6개월 동안 교리수업만 들으면 자동으로 '예비신자'를 떼는 게 아니라, '찰고'라는 시험을 통과해야 한다. 신부님을 만나 일종의 '면접'을 보면서 '기도문'을 외운다. 그리고 숙제로 성경 '마르코복음'(아, 신부님 질문의 정답)을 필사해야 했다.
기도문은 소책자 한 권 분량이다. 서너 줄짜리 간단한 것도 있고, 사도신경처럼 긴 것도 있었다. 그중 '시험범위'라고 할, 주요 기도문이 열다섯 개.
마르코복음은 복음서 중 16장으로 제일 짧지만, 해본 사람은 알 텐데 필사가 생각보다 쉽지가 않다. 글자를 그냥 따라 쓰기만 하면 되지만, 요령도 '벼락치기'도 통하지 않는 일이다. 시간을 들여 날마다 조금씩 써나가면 할 만하지만(읽는 것보다 마음에 와닿고), 전혀 마음이 동하지 않는데, 시간도 없는데, '해야 하기 때문에' 하노라면, 손가락부터 어깨까지 아프기만 하고 힘들기 그지없다. 그래서 선생님과 봉사자 분들이 '미리미리, 조금씩 하시라‘고 말하곤 했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있었다. 기도문을 하나도 외우지 않았고, 성경 필사는 시작도 하지 않았다.
원래 나는 숙제에 성실한 타입이다. 하지만, 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들지 않았다. 아니, 아무 생각도 하고 싶지가 않았다. 여전히 사막에 내동댕이 쳐진 것 같았다. 헤매고 있는 것 자체가 싫었다.
만약... 하느님이 살아계신다면, 나를 인도하신다면, 어떻게든 하시겠지, 아니면... 모르겠다, 그런 자포자기 상태였던 것 같다.
그럴 땐, 기도를 해야 한다. 그거밖에 더 있나? 나의 이 모든 힘듦과 고민의 시작과 끝, 아니, 전부. 하느님이 없다면 이게 다 뭐란 말인가. 계시다면, 제발, 뭐라도...
그런데... 기도를 할 수 없었다.
여덟 살, 처음으로 교회에 갔다. 놀이터에서 놀고 있던 나를 데려간 선생님은, 또래 몇 명을 앉혀놓고 설명했다. 하나님이 왜 '하나님'인지. 오직 한 분이란 뜻의 의미 '하나'에 '님'을 붙였다고.
나는 하나님이 세상에 계시고, 나를 만드시고,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만큼이나, 당연하게 그 설명을 받아들였다.
그리고 성당에 처음 간 날, 교리수업 시간에 선생님은 말씀하셨다. 천주교에서는 '하느님'을 믿는다고, '하늘'에 '님'을 붙인 말이라고. 덧붙여, ‘하나님'은 개신교에서 쓰는 말이니 헷갈리지 말라고.
나는 가만히 생각했다.
그래, 앞으론 '하느님'이라고 불러야겠다.
모르는 이야기도 아니었고, 어차피 이름일 뿐이니까. 다른 게 아니니까.
God, 여호와, 야훼, Jesus, 예수, 주님... 그냥 신을 부르는 이름인 걸.
내 삶에 어떤 순간에도, '암흑기' 같던 때에도, 울기만 했던 때도 울 수조차 없던 때에도, 심지어 당신이 있는지 모르겠다고, 살아계시긴 한 거냐고, 내가 배운, 믿었던 신이 맞냐고 할 때에도, 나는 기도하고 있었다.
그런데, 기도할 수 없었다.
이름을 부르지 못했기 때문에. '하느님,' 하고 시작할 수 없었기 때문에.
머리로, 아니 마음으로도 난 같은 분이라고 믿었다. 그냥 부르는 말이 다를 뿐이라고.
그런데, 그 막막한 순간에, 아무것도 할 수 없고, 하고 싶지도 않던 순간에, 남은 거라곤 신께 매달릴 뿐이라고 생각한 순간에... 이름을 부를 수 없어 기도가 나오지 않았다.
어떻게 이럴 수 있지...
내가 친 덫에 내가 걸린 걸까.
절망스러웠다.
그럼, 난 어떻게 해야 하나.
나는 천주교로 나를 인도했던 두 명의 언니(어떤 인도)에게 기도를 부탁했다.
그게 생각났다는 것이, 지금 생각하니, 하지 못한 기도에 (하나님이자 하느님인) 그분께서 하신 응답이었던가 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