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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도 헤도헨 Mar 26. 2024

소풍 도시락의 마음, 식빵롤

최선의 도시락. '실용적인 예쁨'까지만.



네 살 첫째의 인생 첫 소풍은 정말이지 떨렸다. 소풍을 가다니... 아기가 아니구나... 어린이집에 적응했구나... 엄마 없이 선생님과 친구들이랑 차를 타고... 감상에 젖다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소풍 도시락을, 내가, 싸야 했다.


도시락을 만 번은 쌌을 만큼 검색하고 깨달았다. '이렇게는 도저히 못하겠는데.' 하나같이 어찌나 알록달록하고 먹음직스럽고 귀엽고 예쁜지. (다들 뭐 하시는 분들입니까...) 비엔나소시지로 만든 문어는 기본이고, 온갖 동물들이 눈코입을 달고 (심지어 표정도 제각각) 작은 도시락통에 옹기종기 모여 있었다. 이런 도시락들 사이에서 내 아이가 평범한, 그래서 초라한 도시락을 열면... 으앙! 하고 울어버리는 건 아닐까?


다시, 만 번의 도시락을 눈으로 싼 다음, 결정을 내렸다. '실용적인 예쁨'만 취하자. 그게 나의 최선이었다.


밥은 (김밥, 유부초밥, 무스비 말고) 주먹밥으로. 먹기도 만들기도 제일 편하다.

과일은 먹기 좋고, 무르지 않는 제철과일로 두세 종류. 방토, 포도, 블루베리, 귤, 오렌지 등.

그리고, 밥과 과일 사이에 무언가가 필요한데... 잘 먹을 게 분명하고, 내가 만들 수 있으면서, 특별하게 느껴지는.


내가 찾은 것은, 식빵롤. (처음 만드신 분과 퍼뜨려주신 분들께 감사의 마음을 전합니다.)


1. 식빵의 네 귀퉁이를 자르고, 밀대로 쭉쭉 민다.

(밀대가 없으면? 컵이나 병으로.)


2. 잼을 바르고, 슬라이스치즈를 올린다.

(잼은 묻히는 정도로 얇게. 치즈는 앞쪽에. 말다 보면 밀려나온다. 슬라이스햄을 더하기도.)


3. 돌돌 만 다음, 랩으로 꽁꽁 싼다.

(여기가 중요하다. 야무지게 잘해보자.)


4. 좀 두었다가, 칼로 똑똑 썬다.

(전날 밤 만들어 냉장고에 넣어두어도 된다.)


후기는 괜찮았다. 하지만 평소에 할 일은 아니다.






저녁 먹다가 첫째가 물었다.


1호/6세: 엄마, 아이가 많아서 좋은 점이 뭐야?

나: (곰곰) 힘들기도 하지만, 더 행복하고, 더 감사하고, 즐거운 일도 많고, 귀엽고 예쁜 것들 날마다 보고 만질 수 있어서 좋고...


진지하게 대답하는데, 별로 귀기울여 듣는 것 같지가 않다.


나: 근데 그건 왜 묻는 거야?

1호: 으응, 엄마 화날 때 생각하라고.

나: -_-+


그러게. 그 마음은 늘 같은데, 왜 특별할 때만 꺼내는 건가 몰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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