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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모도 헤도헨 May 13. 2024

2주. 시작의 스파크

넘을 수 없을 것 같던 산에 터널이, 뚫을 수 없는 벽에 문이

어떤 일을 '하는 게 좋겠다'는 판단과 그러므로 '해야겠다'는 결정, '하고 싶다'는 욕망, 그리고 '할 테다'의 의지는 다른 것이다. 그것들은 순서를 바꾸어 차례대로 생겨나기도 하고,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한꺼번에 고개를 들기도 한다. 떼어놓기 어렵게 얽혀 있기도 하고, 서로 싱크되지 않은 채 어느 하나가 다른 것들을 멱살 잡고 끌고 가기도 한다.


문제는, 어떤 일을 '실제로 하는 것'은 이 모두와 관계가 없을 수도 있다는 점이다.


여러 모로 달리기를 하는 게 좋겠어/ 아무래도 달리기를 해야겠어/ 달리기 정말 하고 싶어/ 달리기 진짜 할 테다, 이런 생각과 마음은 여러 번 나를 찾아왔었다. 언제가 처음인지 기억나지 않지만, 그냥 스쳐가기도 하고 꽤 오래 머물다 가기도 했다. 어떤 날은 그중 하나가, 혹은 넷 모두가 너무 강렬하고 또 진심이어서, 당장 내일이라도 시작할 것만 같았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실제로 시작을 못했다.


내 40여 년 인생에 '운동으로서 달리기'를 한 적은 딱 두 번. (한 번은 10대에 동네 친구와 겨울방학 동안 운동하자고 의기투합했다가 너무 춥고 힘들어서, 또 한 번은 20대 초 혼자 새벽에 동네 학교 운동장을 도는데 한 아저씨가 계속 빤히 쳐다봐서) 일주일을 넘기지 못했다. 이런 '시도'의 경험이 '시작'에 장애가 된 걸까?


달리기에 대한 판단/결정/욕망/의지가 나를 훑고 지나갈 때마다 가슴이 두근거리고 몸이 들썩였지만, 결국 언제나 그뿐이어서 번뇌에 휩싸였다.


왜일까, 왜 시작이 안 될까. 그 산은 어떻게 넘어야 하는 걸까. 그 벽은 어떻게 뚫어야 하는 걸까.





"달리기는 어쩌다 처음 시작하게 됐어요?"
달리기가 내 연관검색어처럼 따라붙고부터 종종 받는 질문이다. 이 질문을 맞이할 때면 상대로부터 옅은 기대감 비슷한 감정을 느낀다. 달리기가 인스타그램 피드를 가득 채울 만큼 삶에서 큰 비중을 차지한다면, 그 시작 역시 조금은 특별할 거란 기대일까? 자연스러운 호기심일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달리기라는 세계가 처음 시작된 그날, 그곳엔 대단한 이유도 극적인 이야기도 없었다. 이별 후유증에 휩쓸리던 일상에서 우연히 튄 스파크에 불과했다.

ㅡ김상민, <아무튼, 달리기> 중에서


어떻게 보면, 나의 시작도 김상민과 마찬가지로 '일상에서 우연히 튄 스파크에 불과'한 것이어서, 누군가에겐 동기부여가 되기보단 의문스러울지도 모르겠다. '음? 그것 때문에 시작했다고?'


나로서는 그의 '대단한 이유도 극적인 이야기도 없음'이 오히려 대단하고 극적으로 느껴진다. 그때까지 달리기에 대해 아무런 생각도 마음도 없다가, 한밤중에 그냥, 무작정 달리기를 시작하다니. 나는 이유와 욕망과 의지가 충만한데도 시작을 못했는데.


이번에도 그 욕망이 찾아와 나를 휘감고 의지가 서서히 불타올랐지만, 또 그러다 말 수도 있었다. 그럴까봐 몸이 달았고, 그러면서도 나를 달랬다. 마치 단발병 걸린 사람처럼 매일 거울 보며 머리를 이렇게도 잡아보고 저렇게도 올려보고 하고, 검색어 '단발'로 포털을 뒤지고, 단발 커트 잘한다는 미용실을 섭렵하고 리뷰를 죄다 훑으면서, 그러다 이 병이 사그라들기를 다른 자아는 기다리는 것이다. 나의 예전 단발 사진을 보며 '안 어울렸었어. 진정하자.' 하기도 하고.


그런데... 단발병이 극에 달해 한 손에 가위까지 든 어느 날 친구가 예쁘게 단발머리를 하고 나타나 말했다. "저기서 잘랐더니 정말 잘 잘라." "뭐? 나 안 그래도 자르려 했는데, 나도 가볼까?" 했더니, 그 친구는 상호명과 가는 길을 알려주고 내 손을 덥석...


그렇게 된 것이다. 최근 달리기를 시작한 A가 '런데이'라는 앱을 소개하면서, 드디어 스파크가 튀었다.



앱이 시키는 대로 달리다 걷다 했더니,
30분 동안 '하.나.도. 안. 힘.들.게' 첫 훈련을 마쳤어.



그러니까 나는 젊은 시절 '운동으로서 달리기' 실패의 경험이 아니더라도, 지각할 때 뛰었고 지하철이나 버스를 붙잡아 타기 위해 뛰었다. 요즘도 초록 신호등을 놓치지 않으려 달리고, 아이들이랑 장난 삼아 달리기도 한다. 그런데 힘들었던 것이다.


그런 힘든 달리기를 한 번에 몇십 분 동안, 40대가 되어버린 내가 정말 할 수 있을지 사실 나는 자신이 없었나 보다. 아니면 필패의 싸움을 피하고 싶었는지도.


그런데 신뢰하는 사람이 '하나도 안 힘들게' 했다니까, 넘을 수 없을 것 같던 산에 터널이, 뚫을 수 없는 벽에 문이 나타난 기분이었다.



* 나이키런클럽 앱은 이미 있었다. 진작에 깔았고, 가입도 했었다. 달리기를 한다면 당연히 엔알씨와 함께일 줄 알았는데... 훨씬 소소해 뵈지만 확실한 문을 열고 보니(친구 맺기를 이렇게 하고, 그럼 서로 응원할 수도 있고, 초보 달리기 가이드는 이 페이지에서...), 더 멋지고 더 넓고 더 많은 사람이 드나드는 문은 그냥 내 것이 아니었던 걸로.



물론 달리기라는 운동이 영원히 쉬울 리도 없고, 제대로 달린다면 당연히 힘들 거라는 건 나도 안다. 그래서 시작을 못했으니까.


하지만 처음부터 힘든 게 아니라면, 그 과정에서 생겨날 일에 대해서는, 지금까지 살면서 깨달은 바가 있지 않은가? 발휘하지 않던 나의 힘을 쓰며 호쾌해지고, 한계에서 헐떡거리는 나를 스스로 응원하고, 배신하지 않는 노력에 감동하며, 본 적 없는, 상상도 한 적 없는 나를 만나기까지. 그 길은 시작한다고 끝을 보장하지 않으나, 뿌린 대로 거두는 것만큼은 확실했다.





'일단 6개월은 달린다', '글쓰기와 콜라보한다'는 계획을 세우고, 드디어 5월 1일 첫 달리기를 했다.


정말... 이리도 쉬울 수가. 하라는 대로 5분 동안 걷다가, 1분 달리고 2분 쉬기를 다섯 번 반복했더니 끝. 내가 달리기 훈련을 끝낸 거야? 산책 비슷했는데? 이야. 이런 식이라면 한 번 더 할 수도 있을 거 같은데?


정말로 연달아 두 번 한 날도 있고, 내친김에 2만 보를 걸었던 날도 있다. 그리고 내가 정말 놀랐던 것은, 그렇게 달리기(라고 하기엔 반 이상 걸었지만 어쨌든 달기리 훈련으)로 하루를 시작한 날들의 나머지 시간을 활력 넘치게 보냈다는 사실이다. 아침부터 운동에 에너지를 썼으니, 조금은 골골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최근 몇 년 중 가장, 내가 좋아하는, 내가 기억하는 나로 살았다. 이러니 다음날 아침이 되면 또 달리고 싶어질 수밖에. (2주의 훈련을 마친 지금, 이제는 두 번 연속으로 할 만큼 쉽지 않다. 그치만 나머지 하루가 활기찬 것은 여전히 확실하다.)


어떤 사람은 이유도 없이, 도구도 없이, 그냥 아무것도 없이 달리기를 시작할 수도 있다. 그렇게 자기 몸의 상태와 한계를 알아가고 나아갈 수도 있다.


그런데 생각 많고 의심 많은 나는, 백지 같은 상태에서 확실히 의지할 무언가가 있으니 가뿐한 마음으로 운동화를 신고 밖으로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일단 시작한 후로는 잡념이 하나도 없었다.


아주 신박한 시작이었다.




요약

달리기를 하고 싶다면, 일단 시작하자. (달리기 앱이 도움이 될 수 있다.)

일단 쉬운 시작을 하고, 그다음은 달라진 내일의 나에게 맡기자.



막내는 학교 가는 길, 나는 달리러 가는 길.


매일 하려고 힘이 빡 들어갔는데, 달리기는 일주일에 세 번이 적당하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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