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손엔 백지수표, 한손엔 영화표.
어떨 때에는 '기를 쓰고' 달린다는 생각이 든다. 굳이 이런 추운 날에, 굳이 밖에 나가, 굳이 달리기를. 요가원에서 한 시간 동안 몸을 휘적대며 끙끙거릴 때도 그런 생각이 스치고, 집에서 소박하게 스쿼트나 플랭크, 모디파이드 푸시업을 할 때도 그런 생각이 떠오른다.
결국 두 가지 질문에 맞닥뜨린다. 하나는 '그렇게까지 해서 얻고 싶은 게 무엇이냐'는 것이고, 또 하나는 '꼭 그렇게 해야만 얻을 수 있는가'이다.
물론 얻고자 하는 건 '건강한 삶'이라고 할 수 있는데, 어떤 질병에 걸릴 확률을 낮춰준다는 것, 노후에 할 수 있는 일이 많아진다는 것 등은 사실 흐릿한 백지수표 같다. 품고 있으면 기분이 좋아지긴 한다.
그보다 이 힘든 시간 후에는 상쾌하고 뿌듯할 것이며, 오늘 하루 활력이 있을 것이고, 사나흘은 정신은 맑고 정서가 편안할 거라는 기대를 붙든다. 그것은 영화표를 예매한 것처럼 확실한 약속이다.
지금까지 사는 동안 아등바등하며 기를 쓰고 애를 썼던 덕분에 좋았던 점도 얻은 것들도 있지만, 궁지에 몰리는 느낌은 떠올리기만 해도 지친다. 어떤 때에는 최선을 다하고도, 아니 나를 다 토해내고도 이내 힘이 솟았는데, 어떤 때에는 영혼까지 너덜너덜해지고 바닥이 없는 곳으로 가라앉고 갈가리 갈리는 것 같았다.
조금 덜 얻더라도 편안하고 평화롭게 그 시기를 지나왔더라면 내가 좀 덜 다치고 덜 아프지 않았을까, 이제 와서는 그런 생각도 한다. 그러니 앞으로는 동글동글, 순둥순둥, 낭창낭창, 쉬엄쉬엄 그렇게 살아가자고. 이제 젊은 것도 아니니까, 나이 든 사람의 미덕을 갖자고, 꽤 오래 차츰차츰 다짐했다.
운동할 때는 말 그대로, 온몸으로 기를 쓰고 애를 쓴다. 인식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럼 몸도 힘든데 머릿속이 위의 생각들로 조금 시끄럽다. 하지만 결국 53 대 47 정도로 아주 약간 우세하게 운동을 이어가자는 쪽으로 기운다.
30분만 힘들면 돼. 그다음을 생각해.
버틴다, 이기려 하지 않고. 싸워서 얻으려는 게 아니라 지키려는 것이다. 나의 지금을, 나의 하루를, 나의 일상을. 그리고 나의 사람들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