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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렁이는 것도 괜찮지_구리유채꽃마라톤_하프

동생이라는 거울 앞에서 나는,

by 모도 헤도헨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잠시만요, 죄송합니다, 죄송합니다..."

초 단위로 한 번씩 '죄송하다'는 말을 뱉으며 사람들을 헤치고 나아갔다. 빽빽하게 모여 있는 러너들을 뒤에서 뚫고 가려면 그들의 맨살을 건드리며 살짝 밀쳐야 했다. 출발신호를 기다리며 각자 나름대로 긴장 중이었을 참가자들은 마구잡이로 들이미는 내게 반사적으로 공간을 내주면서도 흠칫했다. 화를 내거나 짜증스러워하는 것 같진 않았다. 뭔지 모르겠지만 (이 정도 민폐를 끼치려면) 아주 긴급한 상황이 있겠거니 했을 것이다.


맞다. 급했다. 9시에 하프코스 출발이라고 했는데, 나는 대회장에 9시 1분에 도착했고(이유는 후술), 급하게 화장실 이슈를 해결하고 출발선을 찾아 달려오니, 9시 7분이었다. 출발선 앞에 가득 모여 있는 사람들은 아마 9시 10분에 출발할 10km 코스 참가자일 것이고, 그들이 출발하기 전에 출발선을 넘어가야 혹시라도 주로가 꼬이지 않겠지 싶었다.


서른 번쯤 '죄송합니다'를 외치고 겨우 출발선 앞. 나는 거리낌 없이, 누가 미처 제지할 틈도 주지 않고 튀어나갔다. '띡!' 운동화에 걸린 칩에 센서가 반응하는 소리가 들렸다. '그래, 늦었고 정신없이 출발했지만, 이제부터 두 시간 동안 달리며 진정해보자!'


그런 생각을 마치기도 전에, 그러니까 한 50미터쯤 달렸을 때 벌써 갈림길이 나왔다. 나는 제자리 뛰기를 하면서 그 앞에 서계신 진행요원에게 물었다.


ㅡ어느 쪽이에요?
ㅡ뭐가요?
ㅡ길이요!
(두리번) 어느 쪽이지? 모, 모르겠는데...
ㅡ네? 아니, 왜...
ㅡ저, 자원봉사자라... 잘 몰라요!
(??) 사람들 어디로 갔는데요?
ㅡ어디로 갔지? (두리번)


그때 근처에서 자전거를 타고 있던 세 명의 사람들(레이스 패트롤이셨던 듯) 중 한 명이 끼어들었다.


ㅡ아직 출발 안 했어요.

ㅡ아니요, 하프요. 10킬로 말고 하프.

ㅡ그러니까, 아무도 출발 안 했어요.

ㅡ출발 안 했어요? 아무도??


자전거 패트롤 세 분과 뭔가 자신감을 되찾은 듯한 자원봉사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ㅡ9시 넘었는데... 아직 시작을... 안 했다구요...?


나는 뒤돌아 출발선 쪽을 바라보았다. 모인 사람들 앞으로 현수막이 띠처럼 걸려 있었고, '하프' 어쩌고 하는 글자가 보였다. 그제야 사회자의 마이크 소리도 귀에 들어왔다. "대회가 지연돼서 대단히 죄송합니다. 이제 잠시 후, 9시 10분부터 드디어 하프코스 레이스를..."


모두가 지켜보는 가운데(그렇게 느껴졌다...), 50미터를 되돌아오는 그 길은... 한여름 햇살보다 따갑고 그때 하는 달리기처럼 땀이 났으며 하프코스만큼 길었다. 진짜 출발신호가 있기까지 1분여 동안, 출발선 한쪽에 얌전히 서서 핸드폰을 조작하(는 척하)며 생각했다. '그래, 매우 민망하고 정신없이 출발하지만, 이제부터 두 시간 동안 달리며 진정해보자...'





동생을 다시 만나기까지 7년이 걸렸다. 동생의 개인적인 사정, 우리 가정사, 그리고 우리 둘 사이의 어떤 일들로, 동생이 마음을 다치고 마음을 닫았었다. 나 역시 내 삶의 폭풍 같은 시기를 지나느라, 또 친정의 이러저러한 상황들, 나 역시 다치고 닫힌 마음 때문에, 못내 불편하면서도 애써 잊고 지냈다.


지난 2월 외가의 어떤 소식을 전한다는 핑계로 카톡을 남겼다. 그냥 넋두리처럼 말을 걸었는데, 답이 와서 오히려 놀랐다. 몇 마디 카톡으로 다 알 수는 없지만, 아주 잘 지내는 것 같진 않아도 간혹 불길하게 끝 간 데까지 상상이 미치는 대로 못 사는 건 아니어서 이상한 안도를 했었다.


그리고 지난달, 틈 나면 하는 대로 마라톤대회 일정을 훑는데 동생이 사는 지역이 나왔다. 열 번쯤 참여했다고, 마라톤대회에 대한 나름의 기준이랄까, 내가 대회를 통해 얻고 싶은 것이랄까 그런 것들이 대강의 스케치처럼 그려지고 있었다. 그중, 가야 할 이유가 있는 지역에서 마라톤대회가 열린다? 그럼 효율러버인 나로서는 겸사겸사 무조건 갈 만한 대회가 된다.


ㅡ아직도 구리에 살아?

ㅡ응.

ㅡ구리한강시민공원 가까워?

ㅡ응, 차로 한 10분?

ㅡ그럼 나 24일에 갈 테니까 하루 재워줄래?

ㅡ그래.


그렇게 7년 만에 동생과 동생의 아들들을 만났다. 사춘기를 지난 남자아이들이 격변한 거야 그렇다 쳐도, 나는 동생의 얼굴이나 목소리가 내 기억과 달라 한참 어색했다. (가만히 생각하니, 객관적으로 달라진 건 아니었다.) 친구들, 선후배들은 5년이 아니라 10년, 20년 만에 만나도 한눈에 변하지 않은 모습을 찾아내고 '그대로'라고, '하나도 안 변했다'고 신기해하고 반가워하면서, 어떻게 이럴 수 있을까.


그럼에도 만 하루 반 동안 나는, 태어나 스무 살이 넘도록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 했던 존재가 주는 편안함에 취했다. 그리고 한편으로 우리가 서로 얼마나 다른 존재였던가, 생각났다. 전생처럼 묻혔던 기억들까지, 때때로 각인됐던 깨달음도 보태서, 머릿속에서 폭죽 터지듯 난리였다.


그러니까, 내가 얼마나 불안을 잘 느끼고 생각이 많은지, 얼마나 성미가 급하고 쉽게 흥분하는지, 얼마나 까다롭고 예민한지, 또 얼마나 주변 분위기와 타인의 언행에 영향을 받고 감정 기복이 심하며 그게 그대로 얼굴에 드러나는 사람인지, 나아가 얼마나 고지식하고 틀에 박힌 사람인지, 그러면서 동시에 과격하고 극단적인 사람인지, 다른 한편으로 얼마나 부족과 결핍을 세밀하게 인지하고 나아지려는 욕망이 뚜렷한 사람인지, 나는 그 누구보다 동생을 통해 알게 됐었다.


생각의 속도나 양, 감정의 농도나 폭이 달랐다. 그것이 표현되는 언어의 수와 행동의 크기가 달랐다. 우리는 다른 눈금을 쓰는, 다른 단위를 쓰는 세계에서 살았다. 적막한가 싶은 동생의 집에서, 간결하게 말하는 동생의 가족들 사이에서, 차분하고 느긋하고 단조롭다고 할 만큼 출렁이지 않는 분위기에서, 나는 오랜만에 잡티와 솜털까지 환히 보이는 거울 앞에 선 것 같았다.


나는 거기서 혼자 말하고 혼자 크게 웃었다. 동생은 전보를 치듯 말했고, 나는 카톡을 하듯 말했다. 동생은 공유오피스처럼 굴러가는 카페의 주인처럼 굴었는데, 나는 찜질방에서 열린 초등학교 동창회 참석자 같았다. 호들갑스럽고 방정맞았다. 그러면서 내가 보고 배운 정도(正道)에서 벗어나 요령껏 살고 있는 동생을 보며 고개를 갸우뚱했다. 스무 살 때에도 동생을 보며, 세상 사는 데엔 여러 길이 있구나, 수긍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그때처럼 이번에도 나는 동생을 보며 놀라기도 하고 감탄했지만, 따라 할 엄두도 안 났고 따라 한다고 될 것 같지도 않았다. 언제나 예상과 계획에서 벗어날까 봐 신경을 곤두세우고 안절부절못하는 나였으니까.


그러니까 이것은 7분쯤 늦었다고 그렇게 난리를 치고 생쇼를 했던 마라톤 출발선 전후의 100미터쯤, 그사이 2-3분 정도의 시간에 대한 이야기이기도 하다. 이후로 두 시간 남짓 달리는 동안, 나는 나에 대해, 동생에 대해, 우리의 서로 다름과 서로 다른 삶에 대해 생각했다.


그날도 그랬듯이, 나는 나의 어떠함 때문에 난감하고 민망한 일들을 종종 겪었고, 부끄럽고 초라해질 때도 있었다. 동생을 언니라고 불러야 하나 싶게, 교과서에서 배운 것 말고는 아는 것도, 할 줄 아는 것도 없는 바보처럼 느껴질 때도 많았다. 여전히 나는 어떤 사회적 상황이나 경우에 관해선 까막눈에 가까워 실수할까 경직된 채 더듬거린다. 또 '지금 뭐 하고 있나? 이렇게 살아도 되나?' 그런 의문이 언제나 매섭게 들이쳐서 느긋하기가 어렵다.


달리기가 끝날 무렵 동생은 다시 나를 데리러 왔다. 데려다줄 때 집결지 찾느라(집결지가 구리한강시민공원에서 시민운동장으로 변경됐는데, 티맵과 카카오맵이 다른 곳을 알려줬다. 그래서 고지된 주소로 찍고 출발했더니 다리 위 한가운데에... 카카오맵 찍고 갔다가 아니어서 티맵 찍고 겨우 도착. 15분 거리를 40분 걸려서...) 헤맬 때도 하나도 허둥대지 않더니, 나를 태우고 돌아갈 때 주차장을 빠져나오는 데만 40분이 걸려도 미간 한 번 찌푸리지 않았다.


나의 달리기에 대해서도, 완주 기념사진을 찍어주면서도, 으레 할 만한 '대단하다'는 류의 그 어떤 빈말도 하지 않았다. 질문조차 없었다. 응원도 격려도 없었고 감탄도 없었다. 데려다줘서 고맙고 이래저래 고생 많았다는 내 말에 대답도 안 했다. 동생은 나와 달라 나를 비추기도 했지만, 섣부른 평가나 가치 판단 없이 나를 그대로 두어서 나를 알아보게도 했다. 세상의 끊임없는 피드백에 쉴 새 없이 휘청이다가, 동생이라는 거울 앞에서 나는 어딘가 어색해하면서도 금방 내 추를 잡을 수 있었고, 훨씬 편안하고 자유로웠다.


동생과 나를 빗대면 내가 더 낫기도 하고 못하기도 하다. 아니, 나을 것도 없고 못할 것도 없는 것 같다. 동생이라면 위에 쓴 얼굴 빨개질 행동은 하지 않을 것이다. 그전에 달리기를 하지도 않겠지만. 나로 말할 것 같으면, 한 3분 동안은 그 어떤 구멍에라도 숨고 싶었는데, 달리는 동안 진짜로 진정됐으며, 그 일에 대해 동생과 남편과 내 아이들에게 전할 때는 우스워 죽는 줄 알았다.


이제 와 어쩔 수도 없고 이왕 이리된 김에 하는 말이기도 하지만, 한없이 출렁이며 사는 것도 괜찮지, 싶은 마음이 어느새 들어와 있었다.



대규모 대회는 아니었고, 업다운 없는 코스라 편했다. 자전거길 옆 보행로로 달리는 구간이 많아서 주로가 좁기도 하고 자전거를 조심하며 달려야 했지만, 크게 불편하진 않았다. 날씨도 알맞았고 자연도 적당히 느낄 수 있었다. 급수대가 촘촘히 있었고, 물과 전해질음료 외에도 바나나, 방울토마토, 사탕, 소금알약도 구비되어 있었다. 진행요원도 많은 편이었고, 적극적이고 긍정적인 기운을 주었다. (출발하자마자 만났던 그분은... 나 때문에 당황하셨을 뿐. 죄송합니다...)

이런 사진을 찍을 수 있는 가판대도 여기저기 여러 개 만들어놓아서, 줄 서지 않고 찍을 수 있었다. (기록 창이 있는 가판대엔 줄이 좀 있었다.) 완주 후 기본 간식 외에 파파존스 차에서 아직 따수운 피자 한 조각씩 나누어주었다. 꿀맛이었다. 주최측에서 찍은 고퀄 사진을 무료로 받을 수 있게 해놓았다. (다른 곳에선 보통 판다. 한 컷에 5천원...)

집결지를 중간에 바꾸었던 것은 사정상 그럴 수도 있고 문자와 홈페이지를 통해 미리 공지하기도 했지만, 주소(경기도 구리시 아천동 1)로 내비에 찍으면 다리 한가운데에서 안내가 멈추고, '시민운동장'으로 찍으면 티맵과 카카오맵이 다른 곳으로 안내한다는 걸 체크했어야 했다. 실제로 카카오맵이 안내한 곳에 도착해서 나 말고도 잘못 온 것을 깨닫고 헤매는 사람들이 몇몇 있었다. 시간이 임박해서 그 정도였으니, 그전엔 더 많았을 것이다.



출렁이며 사는 것도 괜찮아. 재미가 있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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