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우겨우 황동알 하나 추가
이번엔 진짜 완주를 못할 수도 있겠다고 생각했다. 대학원에 들어가고 나는 오랜만에 나를, 내 정열과 역량을, 몸뚱이와 시간을 한계에 가닿게 쓰고 있었다. 그야말로 깔딱고개에서 눈을 부릅뜬 채로, 이대로 퍼져버리면 안 되는데, 안 되는데, 주문을 걸면서 버티는 중이었다. 물리적인 실체인 나를 믿을 수 없을 때 의지 따위 얼마나 허술한 것이었던가.
그러니까 마라톤도 그런 것이었다. 의지만으로는 될 게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것, 인생에 대한 비유로 찰떡인 달리기에 대한 감탄조차 눈앞을 알짱이는 날파리같이 번잡스럽기만 했다. 저기... 그럴 시간 있으면 빨래나 좀 갤래? (그 와중에 난 주부였던 것이다.)
나름대로 많은 걸 가지치기했으나, 그렇다고 달리기며 마라톤 프로젝트를 집어치울 수도 없는 것이, 그간 달리기라도 해두었으니 이만큼 나아가고 있다는 걸 알기 때문이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건설적인 방향으로 삶을
채우고 싶은 욕구의 씨앗과 그것이 자랄 비빌 언덕인 정신적/육체적 여력, 날마다 일용할 양식인 정서의 안정과 일상의 균형 모두, 달리기에서 비롯된 것이었다.
그러니 달리기가 너무 고마워서...가 아니라, 황금알을 낳는 거위의 배를 가른 것으로 끝내지 않기 위해, 날마다까지는 아니어도 때때로 황동알이라도 낳아주길 바라는 욕심으로, 나는 달리기를 이어가야 했다. 그러기 위해서 마라톤대회 참가, 그리고 이 프로젝트의 완성은 붙들었다. 이토록 비틀거리는 와중에도, 일주일에 한 번 5킬로미터라도 뛰었던 것은, 내 안의 허영심이든 오기든 그런 지푸라기 덕분이니까. 내 것이라면 쓸 수 있는 건 다 써야 했다.
무려 6개월 전에 신청하고 집결지 바로 옆 호텔 예약까지 마쳤던 나는, 그럼에도 후회가 막심이었다. 긴 여름 후 첫 마라톤인데 워밍업 삼아 10킬로미터 신청할걸, 상황 파악 됐을 때 진작 취소할걸, 결국 이 지경이 되었으면 시간 쪼개 좀만 더 연습할걸... 주섬주섬 짐을 꾸리며 돌덩이 같은 부담을 좀 내려놓고 싶어, 우리 집 너그러움의 대명사 12세 둘째에게 지나가듯 말을 붙였다.
ㅡ나: 엄마 내일 하프인데 말야.
ㅡ2호: 아! 엄마, 화이팅!
ㅡ나: ... 그게, 엄마가 이번에 너무 바빠가지고 달리기를 별로 못했...
ㅡ2호: 아니, 연습을 안 했어? 연습은 했어야지!
ㅡ나: 그, 그렇지... (-.-)
그렇다. 그녀는 너그럽기도 하지만 준비성이 철저한 모범어린이었던 것이다.
대회 당일. ‘코스모스 10리길 걷기’를 신청(당)한 남편과 아이들을 두고 먼저 호텔을 나설 준비를 하는데, 14세 첫째가 물었다.
ㅡ1호: 엄마, 완주하는 거지~?
ㅡ나: 아, 이번엔 아무래도 완주 못할 거 같아. (이미 마음을 비움)
ㅡ1호: 엥?
ㅡ나: 아니, 그렇게 됐어. 엄마가 요즘 넘 바빴잖아. 완주를 못하는 것도 경험이니까. 경험을 해본다는 마음으로 임하려고.
ㅡ1호: 아니? 그런 경험은 필요 없어.
그렇다. 그녀는 대문자 T 청소년이었던 것이다. 빠지지 않고 배경에서 울리는 9세 셋째의 외침.
ㅡ3호: 엄마! 절대 안 돼!! 무조건 완주하고 와야 돼!!!
타협을 모르는 대쪽어린이... 호텔 객실 문을 나서는데 뒤통수 뒤로 퇴로가 닫히는 것 같았다.
할 만큼은 하자, 그리고 진짜로 안 될 것 같으면 그만두자, 생각했다. 뭐 어쩌겠는가. 그런데 꼭 그렇게 비장하게 마음을 먹으면 현실이 그 정도까진 아니어서... 그만둘 타이밍을 찾다가 끝까지 가고 만다.
그때 왜 출산의 순간이 떠올랐나 모르겠다. 죽는구나 싶게 아프던 진통의 마지막 단계, 남은 힘이 없어 눈도 못 뜨겠고만 자꾸 힘을 주라고 할 때, 힘을 줄 정신도, 힘을 받을 몸도 너덜너덜할 때, 이 고통은 기다려서도, 참아서도, 버텨서도 아니고, 오직 내가 끝내야 끝난다는 걸 깨달았을 때가.
내가 달려야 끝난다. 이 일은 내가 끝내야 끝난다.
피니시라인을 지나자마자 물통을 받고 대충 그늘지고 평평한 곳을 찾아 그대로 뻗었다. 한참 그렇게 누워 있다 보니, 널브러진 내 바로 옆에서 인터뷰 중인 아마도 내 또래거나 조금 위일 것 같은 여성분의 당찬 목소리가 들려왔다. "네! 저는 이번에 철원국제평화마라톤 두 번째 참가고요, 일단 작년보다 기록이 더 잘 나와서 기분이 좋습니다!" (축하드려요... 제가 배경으로나마 도움이 되었기를.)
왼쪽 골반의 부상으로 며칠간 절뚝거렸고, 사흘간 소화불량을 겪었다. 그렇게 겨우겨우 황동알 하나를 더 나았다.
DMZ에서 얼마 떨어지지 않은 주로를 달리는 마라톤이라 신청했었다. 건물이 거의 없고 인적이 드문 시골길인데, 괜히 적막하게 느껴졌다. 중간중간 길을 안내하는 사람이, (보통 주최측이나 자원봉사원, 간혹 경찰인데,) 군인이었다. 구름 한 점 없는 날씨에 그늘 하나 없는 주로였다. 하프코스는 출발선이 달랐는데, 셔틀로 이동한 후 반환점 없이 결승선을 통과한다. 풀코스만큼 긴 주로를 경험하는 것은 좋았고, 셔틀 이동은 번거로웠다. 기념품이 티셔츠 대신 쌀이라 좋아했는데, 햅쌀이 아니라 그런지 내가 아는 철원오대쌀 밥맛이 아니었다. 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