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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례지만, 제 어깨에 기대실래요?

by 씀씀


고향 가는 버스 안. 옆 좌석, 그러니까 내 오늘 귀향길 파트너는 한 아주머니시다. 외람되게 감히 그 나이를 예측해 보자면 50대 중반쯤이실 듯 하고, 높은 확률로 누군가의 어머니, 어느 분의 아내이실 거라 생각한다. 아니시라면 결례를 범했다.


하면 나는, 뭔 뉴스 속보도 아니고. 고속도로 쌩쌩 달리는 불 꺼진 버스 안에서 뭐 대단한 걸 쓰겠다고 여기까지 들어왔을까.


맞다. 바로 위. 나의 옆자리에 앉으신 처음 뵙는 아주머님으로부터 이야기는 시작된다.


격동의 한주를 마무리하는 금요일 저녁. 한 시간 반을 내달릴 버스 안에서 어느 누가 피곤하지 않을까. 물론 불면증 말기의 나만은 세상 모든 각성을 한 듯하여 상당히 불쾌한 드라이브를 하고 있는 중이지만, 내 시야에 들어오는 모든 승객은 이 얼마 간의 이동을 기꺼이 곤한 단잠에 내준 듯 하니. 그건 내 옆의 아주머님도 마찬가지.


고개를 이리저리 가누지 못하시는, 어른께 이런 표현은 예의가 아니다만 그저 이해를 돕기 위해 쓰자면, 소위 말하는 헤드뱅잉을 하시며 매우 불편하게, 그러나 매우 깊이 잠에 드신 모습을 옆에서 느끼자니. 실례가 아니고 허락만 해주신다면 내 오른쪽 어깨를 받쳐드리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아버리지 무언가.


그런데 이 느닷은 없지만 너무도 스무스하게 들어버린, 나의 프리숄더 욕구에 나는 그만 이래서 인생은 하루 이틀 더해가는 시스템으로 세팅된 거고, 사람 나이는 한 살 두 살 먹도록 만들어진 건가. 하는 생각을 하게 됐으니.


제법 뻔뻔한 소리일 거 알지만, 눈 딱 감고 뻔뻔해져보겠다. 그러니까 어렸을 때, 젊었을 때. 나는 그때도 인류애 충만했고 박애주의자였고 마음 여리고 고왔다.


하지만, 그럼에도 그때는 그 나이대 특유의 새침함과 깍쟁이스러움이 있어 나 아닌 이의 연륜과 경험, 삶의 무게를 아우르지 못했다. 지하철에서 고단한 누군가의 단잠이 내 어깨를 스칠까 지레 움츠렸고 서둘러 피했다. 물론 여성분일 땐 아니었던 같지만. 오늘 역시 아주머님이니 더욱 동할 수 있던 마음인 것 같기도 하지만. 아무튼 그랬다.


그랬는데 이제는 글쎄. 나에게 다이렉트로 위해가 되는 것들이 아니라면 공통의 정서나 에너지에 대해선, 아 여긴 넘어오지 마시고요 칼 같이 선 긋고 벽 치고 하지 않게 되었다.


이를테면, 키오스크 앞에서 쩔쩔 메시는 어르신은 모르는 사람이 아니리 나 없는 곳에서 같은 어려움으로 헤매실 우리 엄마 아빠로 보이게 된, 그런 것.


마을버스 시내버스 탈 때 기사아저씨들한테 안녕하세요 인사도 그래서 하게 됐다. 토탈 한 시간도 안 될 휴식 시간 동안이 아니면 하루 종일 사람이랑 대화를 하실 일이 없단 생각을 얼결에 해버렸더니, 세상에 그렇게 마음 고독하고 눈앞은 정신없는 근무 환경이라니,


주책이든 오지랖이든 넉살이든, 남들은 뭐라 부를지 모를 행동이래도 나한테는 그게 내가 행복해지는 방법인 거 같아, 그 별 것 아닌 다섯글자. 안녕하세요를 제법 자연스럽게 하게 되었다.


사실 오늘 굉장히 기 빨리고 과도하게 스트레스받는 일이 있어 몹시 힘들었다. 원체 안 하고 살아온 욕을 직살나게 하고 싶은. 속으로 열댓 번은 ;₩/;&:@/“-~$~$\=[~£~¥~+ 해버린 날이었다.


근데 뭐 욕한다고 풀리는 게 있던가. 내 입만 더러워지지. 역시나 풀리기는커녕 더 찝찝하고 거북하던 마음이, 고향행 버스가 출발하고 평화를 찾았다. 아주머님에게 어깨를 내어드리고 싶어 하는 나를 되찾고난 후의 일이다.


어느덧 고향 도착이 코앞. 아주머니도 잠에서 깨셨다. 옆자리 앉은 애가 무슨 얘기를 쓰고 있는지는 꿈에도 모르시겠지. 모르실 테니 한 마디만 더 쓸란다.


아주머님. 이번 한 주도 고생하셨습니다.


덕분에 저는 고요를 찾고 집에 가요. 너무 곤히 주무셔 말은 못 했지만, 열 살쯤 어리셨을 저희 엄마 같아, 고개에 제 어깨를 받쳐드리고 싶어 혼났답니다. 제가 라운드숄더가 아니고, 경직된 자세와 목디스크로 인해 승모근이 발달되지만 않았어도, 아주머님은 제 어깨에서 주무셨을 거예요. 편히 모실 수 있는 넓고 평평한 어깨가 못 되어 아쉬울 따름입니다.


이제 곧 터미널 내리네요. 물 좋고 산 좋고 인심 좋은 강원도에서, 저도 아주머님도 해피한 시간 보냈으면 합니다. 조심히 들어가셔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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