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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평창동, 성북동에 살지 않는다

by 씀씀


요즘은 모르겠지만 예전엔 그랬다. 잘 사는 집의 기품 있는 사모님을 a.k.a. 평창동, 성북동.


어디 사람을 동네 이름으로! 흠씬 혼날 수도 일겠으나, 내가 드라마에서 본 바로는 분명 그랬으니. 집에 걸려온 전화를 받을 때 그들 스스로 말하길 "네 평창동입니다, 성북동입니다". 전화 걸어 자기를 소개할 때에도 "평창동인데요, 성북동인데요".


아무렴, 전파 타고 전국에 나가는 드라마가 현실 고증을 안 했을 리는 없을 터.


당시 어렸던 강원도 촌년(지역 비하 아님. 내겐 애칭)이 평창동 성북동 하는 서울 부자 동네를 무슨 수로 알겠는가. 위에 쓴대로 드라마에 나오는 으리으리한 집의 안주인은, 꼭 본인과 자기네 집을 동네명으로 말하니. 자동으로 그리 학습이 돼버린 것이었다. 이것도 일종의 주입식 조기 교육이 된 모양이다.


저 동네는 잘 사는 데구나. 저기 아주머니들은 저렇게 전화를 받는구나. 저리 말하는 게 돈이 많고 오래 배운 사람들의 교양이고 기품이구나.


세월은 흘렀고, 그런 드라마 속 세계를 보고 자란 꼬마는 그 사이 상경이란 걸 했으니. 그게 벌써 스무해에 가까워졌다. 일찍 배울수록 좋다는 언어와 다르게, 서울은 조기 교육이 크게 힘을 발휘하지 못 하는 영역인지, 유년 시절 드라마로 학습한 내용은 현실 서울살이에 어떤 도움도 되질 않았다. 당연한 일이었다. 흐른 세월이 얼마인데. 그리고 평창동, 성북동과 같이 서울의 부촌에서 전화 받는 방법을 배워놨다 한들, 그것을 쓸 일이 어디에 있겠는가. 그래도 하나라도 있다면, 어딘가 가는 길에 그 두 동네에서 으리으리한 집들을 보곤 저기가 드라마에서 봤던 그런 집이겠구나 떠올린다는 것?


해서 상경해서 현재까지, 조기 교육보다 더 효과 직빵인 현실 교육을 연중무휴 받고 있는 만큼, 많은 걸 알아버렸으니. 드라마는 드라마일 뿐인 거고. 나는 로또가 돼도 이번 생엔 저런 부촌에서 사모님으로 살기 그른 팔자인 거고. 그 동네 여사님들을 지인으로 둘 일 또한 만무한 거고. 평창동 성북동 한남동 논현동 청담동... 동동동... 그곳에서 통하는 교양의 양식은 무어고 기품이란 어떤 건지 알 수 없으리란 것 정도랄까?


시켜준다면야 마다할 이유 없는 생이겠지만. 그럼에도 그 세계의 우아함이, 결핍이란 모르고 살 그 일상이 그다지 부럽지 않으니. 그건 바로 나의 엄마 때문이다.




안다. 세상 어느 딸이 자기 엄마가 안 곱고 안 예쁘겠는가. 나 역시다. 그러나 잠깐. 흐름이 이렇다고 본인한테나 눈물겨울 사모곡을 쓰려는 것은 아니다. 효도는 셀프로 하는 것. 단지, 나의 엄마는 객관적으로 고운 사람이라, 양심적으로 예를 들어 남기고 싶어 쓴다.


누구 부모를 막론하고 항시 붙는 사족대로, 지금이야 고생을 너어무 해서 아빠 눈 멀게 한 미모가, 세월보단 두 딸 키우는 고된 농사일에 많이 바라셨지만.


그런 것보다도. 그런 것들 말고. 세상 모든 어머니에게 있는 그 눈부신 청춘 고귀한 희생은 우리 엄마께 최고네 할 수 있는 게 아니니 묻어두고. 내가 쓰고 싶은 우리 엄마가 가진 단연 압권은 목소리와 말투, 그리고 감성이니.


엄마의 말을 어깨너머 통화로 들은 친구도, 직접 들은 친구도 누구 하나 거르지 않고 늘 놀라며 빼놓지 않고 하는 얘기란 컨트롤씨 컨트롤뷔.


말씀하시는 게 어쩜 이래? 목소리는 또 뭐야?

와 깜짝 놀람. 근데 넌 왜 그래?


죽이까...


엄마는 딸들을 혼 낼 때도 아빠에게 가끔 화내실 때도 늘 같았고 지금도 그렇다. 되도록 좋은 표현. 보통 때 같은 목소리 크기. 사랑해서 화가 나셨구나 느껴지는 말투. 내가 기억하는 유년부터 내내, 엄마는 평창동 사모님이었고 성북동 여사님이었다.


그래서 어렸을 때 드라마를 보면 그게 너무 너무 이상했다. 우리 엄마는 저 동네 안 사는데. 우리 집 주소는 저기 아니라 무슨 동인데. 우리 엄마는 전화 받을 때 여보세요 하지 무슨 동입니다 안 하는데.


드라마 속 사모님들의 말투며 하는 것들이 자기 가진 것에 맞게 되게 신경 쓴 꾸밈이라는 것을 알기까지, 나는 교양 있는 말투, 기품 있는 목소리가 무언지 모르고 살았다. 듣고 자란 게 엄마 말이었으니까.


모르고 산 건 또 있었다. 내 나이 몇인데. 지금껏 엄마와의 모든 통화 종료음은 하나의 거짓 없이 "우리 큰 딸, 사랑해". 이게 일반적이지 않다는 것도 나는 최근에야 알았다. 아. 그 녹아내지리 않을 수 없는 엄마 말에 한결 같은 내 대답. 응.이 정상은 아니라는 건 일찌감치 알았고.




엄마 생일도 아닌데 갑자기 이런 헌정글 스타일의 얘길 쓰게 된 건 다름아닌 봄 때문. 오늘 날이 모처럼 봄 같아 작년 봄에 엄마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이젠 시골 아저씨도 아니고 할아버지가 된, 지긋한 연세의 아빠는 봄이면 가끔씩 이 산으로 저 들로 나물 캐러 가시는 게 행복이신 분이다. 작년 이맘때에도 그러셨고, 그 날은 마침 내가 본가에 갔던 주말 아침이었다.


아빠가 전날 뜯어온 냉이랑 달래, 또 뭐더라. 찬 만드신다며 엄마가 그것들을 다듬으시는데. 이 나이에도 엄마 아빠가 차려주시는 밥상 가만 앉아 얻어먹는 철부지 딸년, 그런 엄마 보고 말하길 “아니 그 많은 걸 그렇게 하나하나 다 한다고? 어느 세월에? 그냥 한 번에 훅 하고 말아"


그런데, 거기에 돌아온 엄마 말이 두고두고 잊히질 않는다.


“봄이 원래 손이 많이 가"


봄나물이 손이 많이 가도 아니고, 나물 손질이 힘들어도 아니고 나물 다듬는 게 번거로워도 아니고. 이런 류의 표현이 얼마나 무수한데 그 어떤 것도 아닌. 봄이 손이 많이 간다라니.


고마웠다. 저런 여자의 딸이라서.


한번은 나보다 하루 먼저 본가에 온 동생이 말하길.


언니, 어제 엄마랑 드라마 보는데 여주인공이 엄마한테 전화를 해서 그 엄마 폰에 '딸래미'라고 떴거든? 그래서 엄마 배우가 전화를 받는 장면인데. 엄마가 그걸 보고 나한테 "어머, XX(동생 이름)야. 딸 이름이 래미인가봐!“ 이러는 거 있지. 나 순간 뭔 소린가 했잖아. 내가 엄마! 이름이 래미가 아니라 딸래미! 딸내미 할 때 그 딸래미! 했더니 어머, 그런 거였어? 하는 거 있지.


행복했다. 저런 여자의 딸이라서.




평창동, 성북동은 고사하고 서울특별시도 아닌, 저기 강원도 어느 곳에 살고 계신 아빠의 사모님이자 두 딸의 여사님아. 그 모진 세월에도 감성과 엉뚱함과 사는 재미를 안 잃어주셔서 감사해. 그런 엄마가 나는 너무 좋아. 나도 최선을 다해 엄마처럼 늙으려고. 근데 엄마처럼 고생은 안 하고 싶어. 그래서 그 쪽에 더 최선을 다 할 건데, 엄마도 그게 좋지?


내가 이런 글을 쓸 정도로 두 어른을 많이 많이 그런다는 걸, 내 입으로 말도 하고 좀 사근사근 딸 같은 딸이어야 되는데. 세상 사내새끼처럼 투박하고 뚝딱거리니. 딸 키워서 엇다 쓰나 싶다.


근데… 나 지금 이거 뭔가 아빠 헌정글도 써야 할 거 같은 느낌은… 왜지. 아니지? 아닐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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