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혼한게 뭐, 죄라도 되나요?
사실 이혼당사자가 되기 전까지는 몰랐던 것들이 참 많았다.
사람들은 너무 쉽게 이혼에 대해 왈가왈부하는 경향이 있다. 이혼 후 직면하는 가장 직접적인 난관은 '이혼 이야기'에 단순한 호기심을 보이는 사람들을 아무렇지 않게 상대하는 것이다.
그렇다. 그것은 내게는 크나큰 난관이고 이겨내야 할 거대한 장벽이었다.
왜? 요즘 세상에 이혼이 뭐 어때서?
이혼한 게 뭐, 죄라도 되나요?
내 탓이면 어떻고, 상대방 탓이면 어떤가요?
어차피 결과는 헤어짐이었고,
그 이별의 후유증을 지금 온 몸으로 견뎌내야 하는 건 저와 제 아이인데요.
왜 당신들이 그렇게 내 사생활에 관심이 많은 거죠?
이런 생각들이 머릿속을 잠시도 떠나지 않고, 스스로를 괴롭혔다.
세상에는 잊을 수 있는 아픔이 있고,
아무리 애를 쓰고 시간이 흐른다 해도 잊혀지지 않는 아픔도 있더라.
그런데 사람들은 아무렇지 않게, 나의 아픈 과거와 사생활을 궁금해 했다.
그래서 나는 이혼 후에 조금씩 방어막을 키워가기 시작했다. 사람들을 처음 만날 때면 '이 사람은 내 아픈 과거를 오픈해도 될 믿을 만한 사람인가? 친해지고, 가까워져도 될 만한 인품인가?'를 생각하게 됐다.
그리고 나를 진심으로 걱정하고, 위로해주던 지인들의 조언 중에 뼈 때리게 가슴에 박힌 말이 있었다.
"어차피 그래봤자. 다 남이야. 쉰 김치 한 쪼가리 안 나눠줄 거야.
도와줄 거란 기대는 하지 마라. 자기 자신과 신만 믿어. "
하.... 평소 내가 존경해 마지 않던 어르신 중 한 분께서 이런 말씀을 해주셨었더랬다. 솔직히 그 말을 듣고 좀 충격이었다. 결혼 전까지도, 아니 결혼을 한 이후에도, 아이를 낳고나서도, 나는 어린 애였던 것이다. 부모님과 지인들과, 친구들에게 의존적이었던, 전형적인 모범생. 남의 말은 잘 듣지만, 정작 스스로 본인의 삶을 지휘하고 책임질 각오나 준비는 없었던. 그런 '어른 아이'였던 것이다.
쉰 김치도 안 준다니? 정말 그렇단 말인가?
그런데.. 일 년, 이 년, 삼 년.... 십 년을 홀로 아이를 키우며 견디며 살아보니 그말은 정답이었다. 이혼 직후에야 주변 지인들이 도움도 주고, 관심도 주고, 걱정도 해주었지만, 언제까지고 남들 도움만 받아가며 살아갈 순 없다. 이제부터, 누군가의 엄마로서, 한 부모 가정의 가장으로서, 스스로 홀로서기에 성공해내야만 했던 것이다.
오히려 타인의 도움을 받기가 싫어졌다.
아무리 내 걱정을 해서 도와주고 싶다해도,
남의 도움이나 받고 의존적으로 살아간다는 것을 용납할 수가 없었다.
동정과 연민에 길들여져, 그렇게 내 아이의 인성까지 망칠 순 없었다.
이제, 내 인생의 운전대는 나 자신이 잡아야 하는 것이다.
교육을 해 보신 분이라면, '자기주도 학습'이란 말을 들어보셨을 것이다. 아무리 좋은 환경에서 값비싼 교육을 받더라도, '스스로 자신을 관리하고, 주도적으로 목적과 동기를 갖고 시련을 이겨내는 힘'이 없으면 결국은 언젠가는 실패하고 만다.
그렇지만 어떻게 '인생의 키'를 혼자서 잡고 헤쳐나가야 할지 막막했다. 더구나 싱글맘은 혼자가 아니다. 책임져야 할 내 새끼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고, 방황할 여유조차 허락되지 않는다. 순간적인 내 판단을 믿으며 살아야했고, 이왕이면 누구보다 잘 살아내고 싶었다. 남의 사생활에 이러쿵 저러쿵 떠들어대는 사람들이, 더 보란듯이.
사실 중요한 건 자신밖에 없다. 아무리 아이를 키워야 하는 싱글 맘의 처지라지만, 엄마의 행복과 회복이 아이를 키우는 데에도 가장 중요했다. 내향적인 성격 탓인지, 생각이 많아지자 동굴로 숨고 싶은 날들이 늘어갔다.
지금은 고전이 되어버린 '화성에서 온 남자, 금성에서 온 여자'라는 책에서는
대부분의 남자들은 자신만의 동굴이 있어서 고민이나 갈등이 있을 때
동굴로 숨어드는 경향이 있다고도 하였다.
필자는 여자임에도 불구하고 갈등이나 문제상황을 남들과 공유하고 수다 떨며 해결하기보다는, 시간의 흐름에 자연스럽게 맡기거나 혼자만의 마음정리로 해결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인지 가끔 동굴 같은 공간에서 나만의 시간을 보내야만 일상의 답답함이나 이혼 상황에 대한 복잡한 마음이 해소되곤 했다.
'자연과 나'만 있을 수 있는 고즈넉한 공간에서 차박이나 솔캠을 하면서
답답한 마음을 흘러가는 구름에, 바람에, 강줄기에 흘려보내곤 했다.
돌이켜 다시 생각해보니 그간 고요하게 잠수탔던 몇 해간의 나날들은
아마도 이혼이라는 인생의 거대한 파도에 맞서서
따뜻한 동굴 속으로 숨고 싶었던 내면아이의 부르짖음이었던 듯도 하다.
동굴은 어둡고 습하고 빛도 없이 답답하지만, 달리 생각해보면 아늑하고 따뜻하거나 시원하며, 인적이 드물어 홀로 사색하기에는 매우 적절한 공간이다.
마치 어머니의 자궁 안처럼 안정감도 있고.
탁트인 빛나는 공개된 광장 같은 대중의 공간에서 분리하여
오로지 나만의 온기,호흡,움직임에 집중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가끔은 사람들과 대화하기가 피곤해서, 남들 시선이 답답해서, 정작으로 문제 해결할 방법을 찾기 위해 동굴에 숨고 싶었던 순간들이 있었고, 실제로 잠수를 탄적도 많다. 아마 mbti가 infp형이라서 그랬을 수도 있다.
남들이 뭐라든 간에, 내 갈 길 간다! 이런 마인드라면 좀더 편했을 수 있었을 것 같다.
사실 내 인생 살아내기도 바쁘다. 누굴 신경 쓸 여유도 없다.
세상은 그렇게 각자 도생이더라.
각자도생인 인생이라 하더라도, 주변의 정말 아끼는 누군가가 혹여나 자신만의 동굴로 숨어들었거나, 누구도 침범할 수 없는 공간에서 침묵하고 있다면 그저 말 없이 기다려주길 바란다. 그리고 진득히 옆에 있어주고 스스로 문을 열 때까지 다정한 눈길로 바라봐주면 된다.
그렇다면 단군 신화의 웅녀처럼 짐승이 인간으로 변하는 드라마틱한 결과는 없다해도 동굴 속에서 홀로 침잠하던 그 시간들을 이겨내고, 언제 그랬냐는듯 또 일상을 살아낼 것이다.
구태여 침묵하고 조용하게 '내적 고뇌'를 하고 있는 어려움을 궁금해할 필요도 없다. 이혼이라는 사고를 극복하는 방법은 사람마다 다양하기 때문이다.
내 경우에도 잠수타듯 조용하게 지냈던 시간들이 실은 깊은 바닷 속에서 서서히 헤엄쳐올라오고 있었던 엄청난 노력이었다. 그리고 이렇게 글로 어려움을 풀어내며 또다른 삶의 해법을 찾아냈다. 글 쓰기란 치유의 힘이 있어서, 한 마디로 표현하기 어려운 감정들을 그림을 그리듯 한 글자, 한 글자 적어내려가며 나조차 몰랐던 마음을 알아차리게 했다.
이혼 후 마주친 '쉰 김치 하나 안 나눠주는 차가운 현실' 속에서, 나의 내면은 몰라보게 단단해졌다.
그리고 다양한 이유로 마음 아파하고 있는 많은 분들이,
자신만의 안락한 동굴 속에서 답답한 마음을 풀어내고,
사소한 위로를 한 스푼씩 채워가며
일상의 아름다움을 느낄 여유를 찾으시길 바랄 뿐이다.
어느 노래가사처럼, 'bravo your life'이다!
해 저문 어느 오후 / 집으로 향한 걸음 뒤엔 /서툴게 살아왔던 후회로 /가득한 지난 날/
그리 좋지는 않지만 그리 나쁜 것만도 아니었어
석양도 없는 저녁 내일 하루도 흐리겠지
힘든 일도 있지 드넓은 세상 살다보면
하지만 앞으로 나가 내가 가는 것이 길이다
Bravo Bravo my life 나의 인생아
지금껏 달려온 너의 용기를 위해
Bravo Bravo my life 나의 인생아
찬란한 우리의 미래를 위해
내일은 더 낫겠지
그런 작은 희망 하나로 사랑할 수 있다면
힘든 1년도 버틸 거야
일어나 앞으로 나가 니가 가는 것이 길이다
Bravo Bravo my life 나의 인생아
지금껏 살아온 너의 용기를 위해
Bravo Bravo my life 나의 인생아
찬란한 우리의 미래를 위해
고개들어 하늘을 봐
창공을 가르는 새들
너의 어깨에 잠자고 있는 아름다운 날개를 펼쳐라
Bravo Bravo my life 나의 인생아
지금껏 달려온 너의 용기를 위해
Bravo Bravo my life 나의 인생아
찬란한 우리의 미래를 위해
https://www.youtube.com/watch?v=QXzxqiLmxFQ