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째, 주거지로 역세권, 학세권, 몰세권, 숲세권도 아닌
'친정 세권' 혹은 '할 세권'을 선택해야 했다.
갑자기 아이가 아프다거나, 내가 급히 볼 일이 있을 때,
혹은 기분 전환을 위해 잠시 카페라도 가고 싶을 때,
중요하거나 소소한 그 모든 순간들에 아주 조금씩의 친절이라도
베풀어준 지인과 가족들 덕분에, 신생아 육아를 버틸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의 도움들이 쌓여 마치 하나의 탑이 완성되어 가듯,
내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나, 지금은 스스로 자기 할 일을 잘 해내는
씩씩하고 의젓한 아이로 잘 자라주었다.
가끔 이렇게까지 엄마를 고생시켜도 되는 걸까. 나는 다 큰 성인인데,
아직도 부모의 그늘에서 못 벗어나서 육아에 도움을 받고 있다니,
이대로 괜찮은 걸까 자책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별 수 없었다.
둘째, 육체적인 면에서 혼자 하는 육아가 지치지 않도록,
나에게 휴식을 선사하며 버티지 않는 육아를 해야 했다.
마음이 약해질 때도 있었고, 체력이 방전되어 쓰러진 적도 있었다.
링거 투혼으로 버티고 버티며 살아낸 십 년의 시간들이었다.
그럼에도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났고, 시간은 야속하게도 결국은 흘러가더라.
아마 혼자서 아이 키운 이야기를 대놓고 할 수 있다면 일 년 열두 달도 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에피소드들이 있었고, 그 고생을 기어이 해냈음에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한다. 그러니, 매 순간 너무 애쓰며 지칠 때까지 열심히 육아할 필요는 없다.
싱글맘인 내게도 '숨 쉴 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셋째, 아빠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사랑을 듬뿍 주고, 듬뿍 받는 따뜻한 가정을 만들어갔다.
싱글맘은 고단하다. 그렇지만 그 고단함을 함께 나눌 육아 지원군이 있기에,
감사하고 행복하다. 아이가 자라나는 모습을 함께 공유하고 함께 기뻐할 수 있어서 너무나 든든하다. 그리고 이런 감사와 행복과 사랑 속에,
나의 아이가 잘 자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