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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비령 Aug 18. 2024

든든한 육아 지원군과 함께 사랑둥이 키워내기

아이 한 명을 키우는 데 온 마을의 도움이 필요하다고 한다.

요즘 젊은 이들과 대화를 하다 보면 놀라게 되는 점이 아이를 낳아 기르는 것에 대한 두려움이 절정에 닿아있다는 점이다. 왜 이런 사회 분위기가 되어가는 건지 모르겠지만, 아이를 낳자마자 싱글맘에 당첨된 지지리도 운 없는 나로서는, 생각보다 육아도 할 만하다고 이야기해주고 싶다.

물론 그렇게 육아가 할 만해진 이유로, 필수적인 조건들이 몇 가지 뒷받침되어야 했다. 바로 주거지의 선택, 제2보호자로 육아지원군 만들기, 바쁜 시간을 쪼개어 현명하게 활용하기, 그리고 지치지 않고 버티는 육아 하기 등등이 그것이었다.


  첫째, 주거지로 역세권, 학세권, 몰세권, 숲세권도 아닌
'친정 세권' 혹은 '할 세권'을 선택해야 했다.

 

  이혼 직후 가장 막막했던 한 가지는 '24시간 동안 나 혼자서 어떻게 아이를 돌보지?'라는 걱정이었다. 출산을 하게 되면 많은 엄마들이 산후 우울증에 시달린다. 그도 그럴 것이, 신생아들은 낮밤 없이 4시간마다 수유를 해야 하고, 특히 밤중 수유는 너무나 힘이 든다. 잠이 절대적으로 부족해지고, 아기를 돌보다 보면 자아를 잃어버리는 '해체의 순간'마저 와버려서, 갑자기 다른 세상에 온 것처럼 블랙홀 같은 두려움에 휩싸이게 된다. 이렇게 어려운 시기에 혼자가 된 나로서는, 아이를 제대로 돌볼 수 있을지, 스스로를 믿어도 될지 의구심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그런 걱정이 무색하게 홀로 된 나를 도와주기 위해 친정 부모님께서 어벤저스처럼 헌신적인 희생으로 육아를 도와주셨다. 더불어 내 아이와 나를 아끼는 진짜 친구들과 친척들도 소소하게 많은 도움을 주셨다.

  갑자기 아이가 아프다거나, 내가 급히 볼 일이 있을 때,
혹은 기분 전환을 위해 잠시 카페라도 가고 싶을 때,
중요하거나 소소한 그 모든 순간들에 아주 조금씩의 친절이라도
 베풀어준 지인과 가족들 덕분에, 신생아 육아를 버틸 수 있었다.
그리고 그 순간의 도움들이 쌓여 마치 하나의 탑이 완성되어 가듯,
내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나, 지금은 스스로 자기 할 일을 잘 해내는
씩씩하고 의젓한 아이로 잘 자라주었다.


  특히 내 아이를 키워주신 데에는 든든한 육아 지원군이었던 친정 부모님의 역할이 거의 90%였다. 이혼할 당시에는 친정 집이 다른 시에 있어서 편도로 2시간이 걸렸음에도 그 먼 길을 마다하지 않고 매주 왔다 갔다 하시며 아이를 돌봐주신 친정 엄마 덕에, 다른 평범한 가정의 엄마들보다도 오히려 마음 편하게 아이를 키울 수 있었다. 나는 장거리 운전까지 해가며 고생하시는 엄마를 위해 이사를 결심했고, 직장을 옮기는 것도 마다하지 않았다ㅡ

이렇게 아이가 무사히 자라난 데에는 '할 세권'이라는 주거 편의성이 없었다면 불가능한 일이었으리라.


가끔 이렇게까지 엄마를 고생시켜도 되는 걸까. 나는 다 큰 성인인데,
아직도 부모의 그늘에서 못 벗어나서 육아에 도움을 받고 있다니,
이대로 괜찮은 걸까 자책감이 들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별 수 없었다.

나도 미용실도 가야 하고, 은행도 가야 하고, 직장일로 회식도 해야 하는데... 어떻게 사람이 24시간 아이만 돌보며 지낼 수 있단 말인가.


남편이 있다 하더라도 쉽지 않은 일이, 워킹맘으로서 아무 도움 없이 아이 키우는 일일 텐데. 나에게는 남편보다 든든한 우리 부모님이 계신다. 그리고 무엇보다, 나와 내 아이를 아껴주는 가족보다 더 가족 같은 진짜 내 사람들이 있다.



둘째, 육체적인 면에서 혼자 하는 육아가 지치지 않도록,
나에게 휴식을 선사하며 버티지 않는 육아를 해야 했다.


  싱글맘은 만능이어야 한다. 집에 남편(혹은 남자 어른)이 없으니, 사소한 집수리나 무거운 짐 들기, 장보기, 아이 케어하기, 아이와 여행할 때 장거리 운전하기 등등 모든 것을 혼자서 너끈히 해낼 수 있어야 한다.


위에서 든든한 육아 지원군이 있다고 했지만, 그럼에도 매 순간 누군가에게 의지할 수는 없기 때문에 스스로를 믿고 강해져야 했다. 그러나 그렇게 365일 혼자서 애쓰다 보면, 체력도 방전되고, 지쳐 쓰러지게 되는 순간이 오고 만다.


  신체적으로도 그렇지만, 정신적으로도 번 아웃되고 모든 것을 포기하고도 싶어지는 위기의 순간도 간혹 있었다. 산전수전 공중전까지 다 겪어 봤기 때문에 안다.

마음이 약해질 때도 있었고, 체력이 방전되어 쓰러진 적도 있었다.
링거 투혼으로 버티고 버티며 살아낸 십 년의 시간들이었다.
그럼에도 아이는 무럭무럭 자라났고, 시간은 야속하게도 결국은 흘러가더라.
아마 혼자서 아이 키운 이야기를 대놓고 할 수 있다면 일 년 열두 달도 할 수 있을 만큼, 많은 에피소드들이 있었고, 그 고생을 기어이 해냈음에 스스로 대견하게 생각한다. 그러니, 매 순간 너무 애쓰며 지칠 때까지 열심히 육아할 필요는 없다.


아이가 성인이 되기까지 버텨야 할 시간이 너무 길었기 때문에, 나는 중간중간 휴식하며 지치지 않는 육아를 하기로 했다. 내가 스스로에게 선사한 휴식은 각종 취미 생활 하기, 전국 투어하기, 방학마다 힐링 여행지를 찾아다니며 아이와 함께 휴식하기, 가끔은 솔로 캠핑 가기 등등 다양한 '쉼'의 순간들을 일부러라도 가졌다.

싱글맘인 내게도 '숨 쉴 틈'이 필요했기 때문이다.


 



 셋째, 아빠의 빈자리가 느껴지지 않을 만큼,
사랑을 듬뿍 주고, 듬뿍 받는 따뜻한 가정을 만들어갔다.


  우리 아이는 어려서부터 자신을 부모처럼 돌봐준 외할머니와 외할아버지를 '할 엄마, 할 아빠'라고 부른다. 누가 가르쳐준 것도 아닌데, 말을 떼기 시작하면서 아이가 친정 엄마를 '할 엄마'라고 부르는 것이 아닌가? 그 말을 듣고 손주 바보인 우리 엄마가 얼마나 기뻐하시던지. 아주 눈에서 꿀이 뚝뚝 떨어졌다.

 

  싱글맘으로서 경제적 가장이기도 했기에, 나는 늘 일을 하느라 바쁠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그런 바쁜 엄마 대신에 엄마보다 더 따뜻하고 경험 많은 할머니, 할아버지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내 아이는 오히려 사랑을 잘 표현하는 다정한 심성의 아이로 자라났다.


  양 부모가 멀쩡히 존재해도, 사랑이 부족하게 자라는 아이들도 많다. 특히나 부모의 사회 경제적 지위가 높다 하더라도, 차가운 가정 분위기나 돈으로만 모든 것을 해결하려는 부모들도 많다는 것을 안다. 하지만 우리 가정은 비록 한 부모 가정이지만, 아이에게 하루에도 열두 번도 더 '사랑한다' 표현하고 서로 아껴주며 애틋하게 챙기는 관계로 잘 지내고 있다. 아마, 아이가 다 성장한 뒤에, 우리 가족이 특별한 형태라는 걸 알아차린다 하더라도 '사랑이 부족한 집'이라는 생각은 안 들 것이다.


  요즘에는 친정 엄마가 바쁘신 날이면 친정 아빠가 오셔서, 아이 하굣길을 책임지신다. 그러면 아이 친구들이 'ㅇㅇ이 할아버지 안녕하세요'라며 인사를 바르게 한다고, 오히려 반갑게 칭찬하신다. 할아버지 할머니의 사랑을 듬뿍 받으며, 아빠의 빈자리를 못 느끼게 사랑 속에 키우려고, 더 많은 사랑을 쏟다 보니, 아이는 모두에게 보물처럼 귀한 존재가 되었다.

  


황혼육아를 하시느라, 이제 겨우 좀 쉬어야 될 인생의 노년기에 철부지 손자랑 티격태격하시며

육아에 진땀 흘리는 모습을 보고 있노라면 더욱더 그 감사함과 미안함에 어쩔 줄 모르겠지만,

지금 받은 감사함을 연료 삼아, 더욱더 열심히 살아야겠다는 각오와 의지가 생긴다.     


싱글맘은 고단하다. 그렇지만 그 고단함을 함께 나눌 육아 지원군이 있기에,
감사하고 행복하다. 아이가 자라나는 모습을 함께 공유하고 함께 기뻐할 수 있어서 너무나 든든하다. 그리고 이런 감사와 행복과 사랑 속에,
나의 아이가 잘 자랄 것을 믿어 의심치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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