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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비령 Sep 21. 2024

우울증에 상담센터를 전전하다가 발견한 것

상처를 치유하는 마법같은 글쓰기

당당하게 살겠다고 야심차게 외쳤건만, 실상 현실은 그리 녹록치 않았다.

독박 육아와 일을 병행해야하고, 직장에는 이혼을 커밍아웃할 수도 없었기에 혼자 괜찮은 척, 씩씩한 척 다하면서 속으로는 몸과 마음이 너덜너덜해져가는 날들이 지속되었다.


아이를 홀로 키우겠다고 결정한 건 나의 선택이자 당연히 지켜야 할 책임이었지만, 그 과정은 대학 입학보다도, 취업 준비보다도 어려웠다. 육아라는 게 이성적인 판단으로 할 수 있는 일도 아니고, 아이라는 존재는 돌발상황을 너무 많이 만들어내서, 마치 지금 이건 신이 나를 시험하고자 하시는 건가 싶을 만큼 정신이 없었다. 그러다가도 아이가 잠든 고요한 밤이 되면, 지쳐 쓰러져 잠이 들 법도 한데, 불면에 시달리곤 했다.


이혼의 시작은 이혼 도장 찍고나서부터라더니.
그 후유증은 생각보다 오래 지속됐다.
사실 전부터 내면이 풀꽃처럼 여렸던 나로서는
회복하는 데 시간이 당연히 오래 걸리리라는 것을 예측했어야만 했다.
소위 말해 '유리멘탈'이었던 걸까?


아니다. 실제로 나는 많은 어려움을 혼자서 이겨낸 경험이 많았다. 그리고 이혼할 당시에도 주변 지인들이 나의 이혼을 말리지 않았던 것은 그만큼 내가 잘 해낼 것이란 믿음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거대한 상흔 앞에서 우리는 누구나 본래의 자아를 잃게 된다.

낮에는 육아하고, 일하느라고 감춰두었던 깊은 슬픔이, 답답함과 억울함이 부정적 자아를 만들고,

과도하게 스스로를 옭아매고 있었음을 미리 눈치챘어야했다.


지금이야, 그간의 '우울감을 보이는 증상'들을 객관적으로 인정할 수 있지만, 당연히 힘들 수도 있는 상황에서 우울한 감정을 느끼는 것에 대해서조차 자책감을 갖곤했다.


마음에도 감기가 있고, 환절기가 있고, 건강해질 때가 있다.

몸의 면역력이 건강한 생활 습관과 영양가 있는 식단에서 길러진다면,
마음의 면역력은 어떻게 키워야 할까?
'마음 공부'가 필요한 순간이었다. '마음 근육'을 길러야하기도 했다.


그래서 나의 마음을 어루만져주고, 치유해 줄 수 있을 걸로 기대하고 여러 상담 센터에서 다양한 상담 선생님을 만났고, 몇 개월에 걸쳐 상담도 받아봤다. 그렇지만, 내 이야기를 한 사람에게 털어놓는 걸로는 마음에 위로가 되질 않았다. 생활에 변화도 찾아오지 않았다.



구하는 자에게 답이 찾아온 걸까?

우울증에 상담센터를 전전하던 어느 날,
한 상담사 선생님께서 내게 추천해주셨다.     
'혹시 글을 써 보는 건 어떠세요?'     



그래, 누군가는 나처럼 복잡한 마음을 둘 곳 없어 헤매이다가

흘러넘치는 고민들과 잡다한 걱정들을 글로 풀어내기도 하겠구나.     

그렇게 한번 씩 내 마음을 털어놓고 , 글이라는 매개체로 표현해보고 나면

사실 '별 것 아니었구나. 내어놓으니 가벼워졌다.' 이런 마음이 들기도 하겠구나.     


독박육아에 지쳐가며, 답답하고 고달픈 마음을, 더는 숨길 수가 없어서
마치 가득찬 병에서 흘러나오는 액체처럼
터져나오는 마음들을 글로 옮겨보기 시작했다.     



브런치 작가가 되고, 이렇게 매거진을 발행하게 된 것도 다 이런 이유에서였다.

처음부터 글을 도구로 무언가 목적이 있었던 것도 아니었지만, '글'이란 녀석은 '말'과 달리 누군가에 의해 곡해되거나 오해를 사게 하지도 않았고, 차분하게 앉아 생각을 정리하다보면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느낌이었다.


글쓰기에는 마법같은 치유의 힘이 있었다.
뇌를 관장하는 어떤 화학적 약품보다도 더 훌륭한 치유력이 있었고,
보이지 않던 부정적 감정들을 바깥으로 끄집어내 정화할 수 있도록 해주었다.


회복을 위해서도 나쁜 감정을 없애고 마음을 비우는 일이 우선되어야 했다. 그러려면 마주치고 싶지 않았던 나약한 내면과도 직면해야했고, 그것 또한 나의 또다른 모습임을 인정해야했다. 글쓰기는 잠 못들게 하는 잡다한 생각들을 깨끗이 청소해주는 고마운 엄마같았다.


생각에 관한 명언 중에 이런 말이 있다.
"자신의 생각만 바꾼다면 삶을 전혀 변화시키지 않고도 행복해질 수 있는 법이다."


결국 내가 원했던 것은, 스스로를 옭아매던 부정적인 감정들을
정리하고, 작별하는 일이었다.

이별(이혼)은 사람 사이의 일이었지만,
내 안의 감정을 회복하는 일은 오로지 나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과거의 힘들었던 순간들을 떠나보내기'

'이혼과 그 과정, 그리고 후유증으로 덧난 상처들을 제대로 치유하기'

'부정적 상념을 몰아내고, 긍정적인 감사로 내 감정을 변화시키기'.

'현재의 상황을 인정하고, 선택할 수 있는 것에 집중하기'


자기계발서에 무수히 나오는 말들을, 실제로 실행해야할 순간이었다.



삶이 극적으로 변하는 것은 생각만큼 쉬운 일은 아니다.
하지만 우리는 누구나 키보드로 자판을 두드릴 수는 있다.
하다못해 다이어리에 혼잣말을 끄적일 수도 있다.
그렇게 한 글자 한 글자 쓰다보면, 어느 새 삶의 문제들이 하나 둘 풀리고,
꼬인 생각의 실타래도 풀리는 마법같은 경험을 하게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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