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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비령 Sep 21. 2024

가족사진을 찍을 수 있는 용기

아이가 여덟 살이 되어 초등학교에 입학할 무렵에 우연히 가족사진 촬영권에 당첨됐다는 문자를 받았다.

사실 싱글맘이 된 이후로 가족사진을 찍었던 적이 언제였던가 생각해 보니 아이가 태어난 뒤로 백일 사진을 찍었던 기억이 마지막이다. 그 아이가 벌써 초등학생이 되었으니, 

나는 참 아이에게 '가족의 단란한 추억을 남겨주지 못했구나' 싶어서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내 소중한 아이가 자라나는 모습을 가급적 많이 남겨두려고 하지만 가족이 전부 함께인 모습을 찍어놓은 것이 별로 없었다. 대부분 둘이 있는 시간이 많기 때문에 일부러 남기려고 애쓰지 않는 이상 '자연스러운 일상'이 담긴 가족사진도 거의 없었다. 


왠지 사진이란 찍으려고 마음먹고 정면으로 찍는 어색한 사진보다는 꾸밈없이 생활하는 모습이 담겨야 제맛이라고 생각하는데, 우리에겐 그런 소소한 가족사진이 아주 귀했다. 


뭐가 그리 바빴던 건지, 아이를 키우면서 아이를 포커스로 찍은 사진은 많았어도 나와 아이가 함께 찍힌 사진은 많지 않았던 것이다. 그래서인지 '가족사진 촬영'이라는 말을 들은 순간 가슴 한 구석이 철렁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었다.     


가족사진은 엄마, 아빠, 아이들이 함께 모여
'우리 이렇게 예쁘게 잘 살고 있어요~'이런 마인드로 찍는 거 아닌가?
2인 가족인 한 부모 가족도 가족사진을 자랑스럽게 찍으면 안 되는 건가? 


순간 망설였지만, 이내 결심했다. 까짓 거, 한번 제대로 찍어보자고.

예쁜 옷도 때깔 나게 맞춰 입고, 헤어스타일도 꾸며보고,
깔끔한 흰 운동화나 구두로 맞춰 신고, 오랜만에 부모님도 모시고
우리만의 단란한 가족사진을 촬영했다.      


아들은 어여쁜 한복을 입혀서 독사진도 촬영해 주고,
부모님의 황혼 부부 사진과,
엄마가 조심스레 부탁한 영정사진도 미리 찍어드렸다.

(참고로 영정사진은 한 살이라도 젊으실 때, 고운 얼굴로 웃으면서 찍어두는 것이 안심이 될 것 같다.     

엄마도 내가 나중에 당황하지 않도록 미리 해두어야 한다며 숙제를 끝낸 것 같다고 말씀하시는데 뭔가 가슴이 아련하더라.. 그래도 해야 할 일은 해야 하니까.)     



가족의 숫자만큼 열쇠고리도 만들어 자동차 키에 걸어두고 

소중한 가족사진은 액자로 가능한 크게 해서 부모님 댁에도 선물해 드렸다.    

 

현재의 단출한 가족사진을 보고 있노라니,
불현듯 가족사진을 찍었던 어린 시절의 추억이 떠오른다.    

  



때는 바야흐로 내가 초등학생이던 90년대 중반 어느 날이었다.

어린 시절, 할머니 칠순 잔치에 나의 어머니,  아버지, 

어머니와 아버지의 형제자매들. 고모와 이모의 자식들인 이종사촌, 고종 사촌, 

그리고 할머니의 누이들, 그 누이들의 자제들까지 

몇 십 명에서 100명은 족히 될 인원이 모였었던 기억이 난다.      


단지 하루일 뿐이었지만, 넘치도록 화기애애했던 그날의 떠들썩했던 기억과 

그 기억을 거창한 금빛 액자에 담아서 남기고, 

몇 십 개의 액자가 배달된 날, 그 액자를 가지러 다시 방문했던 각각의 친척들의 얼굴도 떠오른다.      


그리고 그 황금빛 액자는 나의 유년 시절 내내, 집안 거실을 장식했고,

아직도 친정에 가면 그날에 박제된 친척들의 얼굴이 환히 빛나고 있다. 

     

할머니와 내 부모님께서 내게 선물했던 건 
'너에게는 너를 지지해 줄 이만큼 많은 가족이 있고,
너는 자랑스러운 그 가족들 사이의 구성원이란다. 
우리는 함께 배를 탄 한 식구들이다.'라는
철저한 가족중심주의 아니었을까.     



점점 핵가족화되어가고, 가족의 형태도 다양해졌다고 학교에서도 가르치고는 있지만

실제로 평균적이고 이상적이었던 4인 가족이 아직 우리 사회에서는 '평범한 가족'으로 인식되는 것 같다.     

출산율이 갈수록 낮아지고, 비혼율도 증가하고 있다고는 하나,

아직 현재 중학생인 학생들 기준으로는 외동인 친구들도 별로 없고, 4인 이상의 가족 구성원인 경우가 많다.


그들의 부모가 내 또래이니 1970,80년 대생들 정도까지는

결혼을 하여 자녀를 '둘만 낳아 잘 기르자'는 세대일지도 모르겠다.     


글쎄.. 가족의 의미가 무엇일까?      

국어사전을 찾아보니, 

"주로 부부를 중심으로 한, 친족 관계에 있는 사람들의 집단. 또는 그 구성원. 혼인, 혈연, 입양 등으로 이루어진다."라고 되어 있다. 

    

그렇다면 부부가 아니거나, 혈연관계에 있는 사람들과 연을 끊었거나 
친족 관계가 없는 사람들은 어쩌란 말인가.  


세대를 불문하고 점점 1인가구가 늘어나고 있다고 한다.      

나의 경우, 한 부모와 자녀로 이루어진 2인 가구에 속한다. 


1인 가구나 2인 가구. 숫자만 들어도 작고 소중하다. 
숫자가 아주 작아서, 또는 너무 적어서, 
하나만 없어져도 가족이 붕괴되는 상황이 우려된다.  


    

어쩌면 삶의 전부라고도 할 수 있는 '가족'을 의미 있게 사진으로 남기는 일을

숫자가 적다고 해서, 형편이 안 된다고 해서, 하루 이틀 미루지 않았으면 좋겠다.         


      

어떤 신문 기사를 보니 

1인 독거노인분들의 영정 사진이나, 소외 계층의 가족사진을 무료로 찍어주는 사진관이 있다고 한다.


문득 드는 생각이, 

복지 정책의 하나로 매년 모든 국민에게 '가족사진 촬영비'를 지원해 주면 어떨까 싶다.

적어도 가족사진을 찍는 것만큼은 누구나 소외됨 없이, '찍어도 되나', '찍을 수 있나' 고민하지 않게 말이다.     

가족의 수가 많든, 적든, 설령 이 세상에 나 외에는 피붙이가 하나도 없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작고 소중한 나만의 '가족사진'을 모두가 간직했으면 좋겠다.

그리고 혈연관계를 넘어,  누군가에게 가족 같은, 가족보다 더욱 끈끈한 이웃이자 친구가 되어 주었으면.

더 많이 사랑하고, 더 많이 따뜻한 마음으로 살아가야겠다.

안 그래도 험난하고 팍팍한 세상 아닌가.          


2인 가족으로 살아가다 보니, 나처럼 쓸쓸하고 소외감을 느낄 많은 한 부모 가족의 설움을 잘 알게 되었다.

사진 한 장 찍는 것조차 망설였던 소심했던 자아를 말없이 토닥이며 안아주고 싶었다.


그래, 이 험난한 세상에 내 핏줄 하나 남겼으니, 그 얼마나 다행스러운 일인가!
가족의 수가 많은 것도 분명 행운이지만,
단 몇 명이라도 자신을 진정으로 사랑하고 믿고 지지해 줄 가족이 있다는 건
살아가면서 어떤 순간에도 다시 나를 살게 하는 힘이 될 것이 분명하다.



"Family isn't about whose blood you have. It's who you care about. (Trey Parker) "  

가족이란 네가 누구 핏줄이냐가 아니야. 네가 누구를 사랑하느냐는 거야. (트레이 파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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