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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은비령 Sep 22. 2024

슬픔과 우울의 차이.

슬픈 감정과 마주하기. 

(이 글은 이혼 후 우울했던 마음을 극복했던 과정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마음 챙김에 관심이 많아진 후로, 감정 공부와 마음 공부를 틈만 나면 하게 되었다. 

이전에 한 독서 모임에서 '슬픔을 공부하는 슬픔'이라는 책을 함께 읽었던 기억이 있다. 

마음에도 공부와 처방이 필요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기 전까지는, 이 책을 고르는 과정부터 의문이 들었었다. 


'살면서 슬픔을 맞이하는 일은 가능하면 적었으면 좋겠는데,
타인의 슬픔을 굳이 공부까지 해가면서 배워야 할까.
세상에는 가급적 모른 채 살면 좋은 일들이 있지는 않을까.'하고 말이다.




그런데 이 책을 고르고 나서, 책 속 내용을 들춰보기도 전에 모임의 사람들이 조금씩 마음을 열고 각자의 '슬픈 기억'들에 대해 터놓기 시작했다.


마치 이런 순간을 기다리기도 했다는 듯이,
너도 나도 슬픈 일들이 얼마나 많았던지.
각자의 슬픈 이야기들을 대놓고 들어주는 장이 펼쳐지니,
모두들 오히려 기쁜 표정으로 
'슬픔을 말할 수 있는 자유'에 후련해 하는 감정을 느낄 수가 있었다. 
어쩌면 우리는 암묵적으로 '기쁘고 밝고 씩씩한' 모습만 보이도록
강요받은 채 살고 있는지 모른다.



이혼 후, 나는 슬펐던 걸까? 아니면 우울했던 걸까? 

정답은 둘다의 감정을 모두 갖고 있었다. 어디 그 둘뿐이랴.


막막함. 답답함. 억울함. 화남. 분노. 짜증. 무기력. 우울. 불안... 
그 모든 다양한 감정들이 슬픔을 씨앗으로, 우울을 영양제 삼아 자라나고 있었다.



이 모든 사태의 근본적 원인이 슬픔이라면, 우선 원인부터 제거해야했다.

슬프지 않으면 된다! 아니다. 마음껏 슬퍼해야한다. 지겹도록 슬퍼하다가, 어느 날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앉은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다시 걸으면 된다. 그리고 슬퍼했던 자리를 가끔 들춰다 보면서, 그날의 슬픔을 잊지 않고 추모하면 된다. 



<당신이 옳다(정혜신 저)>라는 책을 보면 다음과 같은 구절이 나온다. 


우울은 극복의 대상이 아니라 순하게 수용해야 할 삶의 중요한 감정이다. 어차피 한 번은 직면하고 받아들여야 할 삶의 중요한 숙제를 계속 뒤로 미루다보면 이자까지 붙은 혹독한 댓가를 치르게 된다. 


그렇다. 힘든 일을 겪은 뒤에 우울한 것은 감정이 건강하다는 증거다.

고난에도 아무 것도 느끼지 않는 사람이 오히려 더 비정상 아닐까. 아니면 정말로 단단한 내면을 가진 초인적인 사람이리라.


우울함이 흘러넘쳐 구토하듯 쓴 글들이, 나의 슬픔과 직면하게 해주었다. 

극복하고자 하는 자아와 극복하지 못하는 자아를 만나게 해주었다.

그리고 비로소 깨닫게 해주었다. 극복하지 못하는 자아를 있는 그대로 인정해주지 않으면 결코 이 상황을 극복해나갈 수 없다는 역설을 말이다.


사실 고난을 극복해가는 과정은 번호키를 누르면 찰칵 열리는 자동문처럼 순식간에 이뤄지지는 않는다.

아주 길고도 지루한 싸움이다. 그래서 나로 말할 것 같으면, 우울을 극복하는 데 거의 십 년이 걸렸다. 글을 쓰고, 나의 부끄러운 감정들을 인정하고, 바깥으로 끄집어내 공론화하면서, 그리고 나의 슬픔과 유사한 슬픔을 지닌 독자분들의 공감을 받고, 소통하면서.. 


그렇게 내 슬픔은 점점 작아져갔다. 그리고 줄어든 슬픔의 크기만큼 우울함도 사라져갔다. 그리고 차분함과 정리된 마음 속에서 명상으로 마음을 정화시키듯,
'아무렇지 않은 담담한 마음'이 자리잡아갔다.
이제 왠만한 시련에는 눈 하나 깜짝하지 않을 만큼 단단해져가고 있었던 것이다.


지금 많이 슬프고 우울하시다면, 그리고 내 슬픔을 기꺼이 한 없이 묵묵하게 들어줄 대상이 없어 고민이시라면. 부디, 글로써 우울을 털어내시길 바란다. 
글 뿐만 아니다. 우울함은 호흡으로도 치료되고, 산책으로도 치유된다. 



나는 새벽 5시~6시 정도면 눈이 떠지는 아침형 인간인데, 그때마다 답답한 마음과 무거운 몸을 이끌고 꾸역꾸역 나가서 아무 생각 없이 걸으며, 새벽 공기를 내 안으로 흡입했다. 


차갑고 시원한 아침 공기를 천천히 호흡하면서,
나쁜 기운은 몰아내고 새롭고 신선한 것들로 내 폐를 채워간다.
매일 아침마다 새롭게 뜨는 찬란한 햇빛을 온몸으로 받으며,
해처럼 밝은 기운으로 살아갈 용기를 얻는다.


내 이름 한자에는 '해 뜨는 모양'이라는 멋진 뜻이 포함되어 있다. 아마도 떠오르는 햇살처럼, 그 어떤 어두운 감정과 상황들도 다시 밝게 채워가라는 의미였나보다. 

마음이 나약했던 나조차도 극복해 냈으니, 지금 어떤 상황에 처해계시든 굴하지 않고, 슬픔과 우울을 이겨내시길 바란다.


슬픔과 우울.
그 둘이야말로 우리가 넓은 마음으로 보살펴야 할
나의 새끼 손가락 같은 존재들이다.
버릴 수도 없고, 버려지지도 않아서 괴롭겠지만,
언젠가 그 두 녀석이 우리를 다시 살게 할 힘이 될 것이다.


영화 <인사이드 아웃>에는 이런 대사가 나온다.
We need sadness too. Sadness makes joy brighter.
"우리에겐 슬픔도 필요해. 슬픔이 있어야 기쁨이 더 밝게 빛나."



지독한 슬픔이 끝나지 않았다면, 원없이 슬퍼하다가, 슬픔에 지쳐 울음을 터뜨리다가,

그 울음마저 그치고 나면 언제그랬냐는듯, 후련하게 우울까지 털어내시길 진심으로 기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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