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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진 Oct 17. 2021

“감추어진 기억”

윤정이네 집

처음 기억


“윤정씨가 기억하는 가장 오래된 기억은 뭘까요?”


상담사의 질문에 윤정이는 눈물을 왈칵 쏟아냈다. 상담사는 무척이나 부드러운 말투로 물었지만, 윤정이가 기억하는 삶의 첫 기억은 새벽녘에 예고 없이 울리는 초인종 소리와 같이 두려웠다.


열 살의 윤정이는 네 살 터울의 동생과 함께 시내버스를 탔다. 엄마와 늘 함께 오르던 버스를 동생과 둘만 타기 시작한 지 세 번째 만에 ‘그날’의 사건이 발생했다.


아파트 현관에서 버스 정류장까지 자매는 나란히 걸었다. 동생은 손에 쥔 연필로 손바닥과 허공에 무언가를 쓰고 지우기를 반복하며 걸어갔다. 동생은 언니나 엄마의 손을 잡고 걷는 것을 좋아하지 않았다. 엄마가 손을 슬며시 잡으면, 두어 번 빼다가 못이기는 척 손을 내어주지만, 윤정이의 손은 티 나게 거부했다.


정류장에서 목적지까지는 버스로 삼십 분 정도 걸렸다. 소도시 외곽의 아파트 앞에서 버스에 오른 윤정이와 동생은 더 먼 외곽으로 향하기 위해 나란히 의자에 앉았다. 윤정이는 버스에 오른 지 십 분 만에 버스 창에 머리를 기대고 깜빡 잠에 빠져들었다.

얼마나 지난 것일까. 꿈속에서 동생을 품에 안은 채 요술 공주 밍키 놀이를 하던 윤정이는 잠에서 깼다. 깨고 보니 주위가 허전했다. 옆자리가 비어있었고, 동생은 버스 안 어디에도 없었다. 윤정이는 버스의 위치를 파악하기 위해 창문 밖을 살폈지만 보이는 것은 시골길뿐이어서 쉽게 어딘지 확인이 되지 않았다. 비틀거리며 운전기사 아저씨를 향해 걸어가서 물었다. 허름하게 포장된 도로 위를 달리던 버스는 흔들림이 심했다. 윤정이는 곧 목적지를 세 정거장이나 지나왔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너무 무서워졌다.


버스에서 내린 윤정이는 울기 시작했다. 무엇부터 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동생을 찾아야 했지만, 자폐아인 동생이 어디에서 내려 어디로 향할지 상상조차 안 될 뿐만 아니라 지금은 자기도 길을 잃은 상황이었다. 엄마에게 연락할 방법도 없었다. 길을 건너 반대편 버스 정류장으로 왔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버스는 오지 않았다. 윤정이는 계속 울었다.


그날


상담사가 건넨 질문에 눈물부터 쏟은 윤정이는 가까스로 동생을 잃은 기억이 생의 첫 기억이라고 답했다. 열 살 이전의 기억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예정일보다 한 달 가까이 빨리 태어난 동생은 병원에 갈 시간이 없어 집에서 태어났다. 윤정이는 어렴풋이 자기가 덮던 이불에 돌돌 말린 채 잠이 든 동생의 첫날을 기억한다. 그때 살던 집은 작은 기와집으로 방이 딱 두 개뿐이었는데 작은 방에 엄마와 동생이 나란히 누워있던 모습이 흐릿하게 남아 있다. 또 처음 본 낯선 할머니 한 분이 집에 있었던 것도 기억한다. 그 할머니가 동생을 받아주었다고 한다.


동생은 네 살이 지나갈 무렵까지 말을 거의 하지 않았다. 이유를 몰라 전전긍긍하던 엄마의 애타는 모습도 윤정이는 기억한다. 집의 가장 구석에서 또는 엄마의 침대 위에서 벗어나지 않기 위해 발버둥 치던 동생의 모습은 비교적 또렷하게 남아 있다. 그런 동생의 모습은 커서도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남아 있는 기억이 적지 않음에도, 윤정이가 ‘첫 기억’으로 동생을 잃어버린 날을 떠올린 것은 그날 이후로 너무나도 많은 것이 달라졌다고 느끼기 때문이다.


그날 윤정이와 동생이 향한 곳은 동생의 치료를 위한 사회복지 기관이었다. 원래는 엄마와 동생 그리고 윤정이까지 세 사람이 언제나 동행했었는데, 엄마가 공장일을 시작하면서 윤정이가 동생을 기관에 데려가는 역할을 맡게 된 것이다. 동생이 치료를 받는 동안 윤정이는 그 기관이 들어선 건물 1층에 있던 중국어 교습소에서 중국어를 배우며 동생을 기다렸다. 돌아오는 길은 비교적 수월했다. 치료가 끝나면 사회복지 기관의 선생님이 윤정이와 동생을 봉고차로 집까지 데려다주었기 때문이다.


그날 윤정이와 동생은 여러 사람의 도움으로 무사히 엄마와 다시 만날 수 있었다. 두 자매를 본 엄마는 동생만 안아 줄 뿐, 윤정이에게는 날이 선 검과 같은 책망을 쏟아냈다. 버스 안에서 동생의 손을 잡지 않은 것, 동생을 창문 쪽으로 앉히지 않은 것, 잠이 든 것, 어른에게 빠르게 도움을 구하지 않은 것 등등 그날 윤정이의 모든 행동이 엄마의 말에 찢겼다.


자기 잘못을 이해하기에 윤정이는 너무 어렸다.


감추어진 기억


윤정이네 집은 경남 진주 외곽에 있는 작은 아파트이다.


윤정이는 최대한 이곳에서 멀어지고 싶었다. 대학을 대전에서 졸업한 후, 어떻게든 서울에서 직장을 얻기 위해 노력했다. 거리가 멀어질수록 동생에 대한 책임감으로부터 해방될 것만 같았다. 마침내 서울에서 직장을 구했을 때는 자폐 스펙트럼인 동생의 존재가 사라진 것처럼 자유로움을 느꼈다. 작은 집 생활에는 이미 이골이 날 만큼 나 있어 샤워실조차 공동으로 사용하는 서울의 고시원 생활일지라도 견딜 만했다.


마치 더 멀리 가면 더 자유로울 것만 같다는 듯이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한 윤정이는 진짜 중국에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첫 직장을 그만둔 윤정이는 그동안 모은 돈을 모두 들고 중국으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그렇게 거리를 멀리하고, 멀리하고, 멀리했다.


일년간의 짧은 중국 생활을 마치고 귀국한 윤정이는 진주로 가고 싶지 않아 우선 친구 집에 신세를 질 수밖에 없었다. 새로운 직장을 얻어 수입이 생길 때까지 친구와 함께 머물기로 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윤정이를 상담사 앞에 앉힌 것이다.


상담사가 윤정이에게 다른 질문을 던졌다.


“동생은 어떤 사람인가요?”


윤정이는 동생을 ‘자폐’ 이외의 단어로 규정해본 적이 없다. 동생에 대한 기억을 끄집어내기 위해 한참을 머릿속에서 헤맸다. “음... 내 동생...” 마침내 윤정이가 입을 열었다.


“제가 고2 땐가, 고3 땐가 동생을 시설 앞에서 기다리고 있었는데, 치료 끝나고 동생이 다른 자폐 아이들과 함께 나왔어요. 그때 같이 나온 어떤 아이가 갑자기 저에게 달려들었죠. 위협은 아니었을 거에요. 제가 반가웠을 수도 있고... 그래도 전 무서웠어요. 순간. 그런데 그때 동생이 그 아이를 몸으로 밀쳤어요. 그리고......”


윤정이는 말을 이어갈 수 없었다. 다시 흐르기 시작한 눈물 때문만은 아니었다. 동생이 온 마음을 다해 선물해준 빛과 같은 기억을 강박적으로 가슴에 묻어 둔 자신이 너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동생은 그 아이가 윤정이에게 달려들자 몸으로 밀쳐내고 자기 몸 뒤로 언니를 숨겼다.


윤정이의 뒷이야기를 기다리던 상담사가 먼저 입을 열었다.


“윤정씨 동생은 윤정씨를 사랑하는 사람이군요.”


상담실에서 나온 윤정이는 집으로 향했다.


집이란 무엇일까?
윤정(가명)씨가 진주로 돌아와 보니 동생은 복지기관의 소개로 취약 계층을 위한 공동 주택에서 일하고 있었습니다. 집에서 출퇴근하며 장애인을 위한 프로그램 운영 전반에 큰 도움을 주고 있답니다. 지금 윤정씨는 동생을 누구보다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을 뿐 아니라, 윤정씨도 취약 계층을 돕는 기관에서 일하고 있습니다.

인터뷰를 마치기 직전 윤정씨는 친구에게 엄청난 빚을 진 것 같다고 덧붙였습니다. 사실 윤정씨의 친구는 장애인 가족의 심리와 치료에 대해 고민하고 연구하는 연구자랍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시고, 각색을 허락해주신 윤정씨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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