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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최유진 Oct 29. 2022

“강화 프리미엄"

준수네 집

모든 결정에는 이유가 있다.


"너네 엄마 살리는 셈 치고, 그냥 그렇게..."


준수는 아무 말 없이 아들이 운전하는 차 조수석에 몸을 묻고 10분 넘도록 앞만 응시했다. 어렵게 입을 뗐지만 막상 꺼낸 말을 어떻게 마쳐야 할지 난감해 잠시 뜸을 들여 아들의 반응을 살폈다. 아들은 미동 없이 운전대를 잡은 채 신호가 녹색으로 바뀌길 기다리는 듯했다. 준수는 아들이 지금 이 이야기를 귀 담아 들을 준비가 되었는지 확신할 수 없었다.


"요즘 같이 너도 나도 집 팔려는 시기에 강화에 더 좋은 집이 왜 없겠니. 그런데 하루라도 빨리 강화에 살고 싶은 네 엄마 성화에 그냥 거기로 결정한 거지. 그래도 서른 곳은 넘게 보고 결정했어. 부동산만도 일곱 군데 넘게 갔고."


강화의 새 집을 그다지 마음에 들어 하지 않는 것 같은 아들 앞이어서 그런 건지, 아니면 지금 아들이 집중하지 않고 있다는 생각 때문에 그런 건지, 의도한 것은 아닌데 설명은 갈수록 장황해지고 목소리는 점차 커지고 있음을 준수 스스로도 느끼고 있었다. 그런데 쉽게 제어되지 않았다.


준수가 처음 입을 뗀 이후로도 30분을 더 달려 외딴 가구점에 다다랐다. 이사는 이미 했는데 가구가 전혀 준비되지 않았다. 강화로 이사하기 위해 서울의 작은 빌라를 처분한 준수와 아내는 이십 년 넘게 바꾸지 않고 사용한 침대와 소파, 식탁을 모두 버리고 이사하기로 했다. 돈은 둘째치고 가구를 보러 다닐 힘이 별로 없어 가구를 버리지 않고 이사하려 했지만, 가구만큼은 아들이 함께 보러 가준다는 말에 새로 구입하기로 했다. 강화의 안방에는 서울 집의 침대가 들어갈 자리가 없었다. 다른 공간은 넉넉한데, 이상하게 이 집의 전 주인은 안방만은 작게 만들었다. 침대를 놓기 위해서는 붙박이 장을 떼야할 지경이어서 어차피 침대는 구입해야 했다.


가구점에 도착하자 아들은 사장에게 가벼운 인사를 건네고 빠르게 한 바퀴를 먼저 둘러보았다. 아들의 표정을 읽기 쉽지 않았다. 강화에서 가장 많은 집에 가구를 댔다는 부동산의 소개에 아들과 시간을 맞춰 일부러 찾았으니 아들의 반응이 중요했다.


"좀 어때?" 준수가 물었다. 가구점의 사장이 거리를 두고 떨어지자 아들은 "아주 예쁘진 않은데 가성비가 나쁘지 않네."라며 비교적 밝은 투로 답을 했다. 그래도 나쁘지 않다는 말에 자신감을 얻은 준수는 구겨진 메모에 적어 온 가구 목록을 보며 살 것을 빠르게 결정해갔다.


모두 다 결정하는데 채 삼십 분도 걸리지 않았다. 메모에 적힌 모든 가구를 정한 후 사장에게 계산해 달라고 했다. 총액에서 대충 30%는 깎은 가격을 먼저 제시해 볼 요량이어서 가구별로 금액을 깍지 않고 우선 총액을 확인하고자 한 것이다. 그런데 메모를 다시 들여다보니 소파 옆에 별표가 그려져 있었다.


"참, 전화해달라고 했지." 준수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준수의 아내는 소파만큼은 바라는 게 있다면서 가구점의 소파를 둘러보고 아들을 통해 전화해달라고 했었다. 아내는 아들에게 소파에 대한 평을 부탁한 모양이었다. 아들은 나쁘지 않은 평을 휴대폰에 대고 하고 있었다. 전화를 끊은 아들이 아내의 부탁을 전하기 시작했다. "엄마가 소파는 딱 두 가지 요청하시네. 색은 베이지 그리고 높아야 한다네."


준수가 고른 소파는 커피 색인 데다가 높이도 낮아서 다시 선택해야 했다. 사장에게 아내의 두 가지 요청 사항을 전달하자 요즘 소파는 대체로 낮을 뿐 아니라 베이지 색 유행이 지났다면서 난감해했다. 소파 몇 개를 찍어 단톡방에 올려 아내에게 확인시켰다. 반응이 미지근했다. 결국 준수와 준수의 아들은 사장에게 미안하다 말하고 빈 손으로 가구점을 나섰다.


강화 프리미엄


"너네 엄마는 강화에선 곱창도 맛있다더라." 빈 손으로 가구점을 나선 준수는 아들의 차 안에서 눈치를 살피며 입을 열었다. 말하면서도 준수는 이게 지금 상황에 맞는 말인가 싶긴 했다. 물론 가구점까지 아들 차에 실려 가면서 아내 이야기를 하긴 했어도, 전체적인 흐름 상 가구를 전혀 사지 않고 나온 지금은 가구 이야기를 하는 게 조금 더 말이 되는 상황이었다.


모든 가구를 버리고 이사하는 것이기에 사야 할 가구의 목록만 열 점이 넘었다. 예상했던 가격보다 밑돌았고 아들도 대체로 만족했으니 소파만 다른 가구점을 알아보면 되는 거였는데, 아내가 마음에 들어 하는 소파가 없다는 이유로 뒤도 돌아보지 않고 가구점을 나온 터였다. 딱 하나 싫다는데, 모든 것이 싫어졌다.


세상에 무서울 것이 하나도 없던 시절이 바로 어제 같은데 이상하게 나이가 들면 들수록 무언가를 결정하는 것이 쉽지 않았다. 이런 상황에서는 아들의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표현은 큰 참고가 된다. 아니, 준수는 그 결정에 거의 따랐다. 그리고 이제는 자동차 운전면허 갱신도 쉽게 해주지 않는 나이가 되다 보니 잘 모르는 새로운 길을 찾아 나서는 운전이 쉽지 않았다. 가구를 사는 데 아들 도움이 있었으면 하는 이유였다. 그래서 다시 약속을 잡아야 했는데, 원주에 사는 아들을 다시 강화까지 부르기는 좀 그래서 그 말은 못 꺼내고 아내 이야기부터 꺼낸 것이다.


"너네 엄마가 언제 곱창 먹는 거 봤냐? 여기는 곱창도 맛있다고 하고, 곱창뿐이니. 평생 징그럽다고 보지도 않던 장어는 또 어떻고. 강화 장어는 예쁘다면서 그렇게 찾는다."


실제로 아내는 틈만 나면 강화에 가고 싶어 했다. 서울에서 아내는 한 없이 쪼그라들었다. 하루에 밥 한 공기는 고사하고 끼니마다 서너 숟가락도 잘 뜨지 못했다. 살이 점점 빠져 지금은 온몸으로 완연한 병색을 증명 중이다. 병원에서는 자세한 검진을 받아 보자며 거듭 재촉했지만, 결과를 마주할 자신이 없었는지 아내는 예약 날마다 이런저런 핑계를 대고 의사와의 만남을 거부했다. 아들의 말이라면 그래도 듣는 아내이기에 아들을 시켜 검진을 강하게 요구해도 그때뿐, 실제 예약 날이 되면 그나마 괜찮다던 다리가 아프다는 이유로 드러눕기 일쑤였다. 핑계인지는 알지만 그래도 아프다는 아내를 억지로 차에 태우기는 어려웠다.


그런데 신기하게도 강화에만 오면 입맛이 도는지 너끈히 1인 분을 싹 비우고, 씩씩하게 이곳저곳 빠른 걸음으로 걸어 다녔다. 이사할 집을 보기 위해 부동산을 찾을 때에도, 준수에게 제발 한 곳만 더 들르자고 매번 성화일 정도였다. 그럭저럭 아내가 괜찮다는 집을 발견하자 주저 없이 계약부터 했다. 준수는 강화로 오면 아내가 적어도 5년은 더 살 수 있을 것이라 확신했다. 서울의 아내는 오늘 죽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몸이지만, 강화의 아내는 그렇게 자기와 5년은 더 살 수 있을 것이라고.


아내의 강화 프리미엄은 아내를 살리고 있었다. 아내, 경이의 시간은 준수의 시간보다 빠르게 흐르고 있었기에 준수에게는 시간이 없었고, 사실 더 좋은 집도 별 의미가 없었다.


그 집엔 그녀가 있다.


아내는 강화를 방문할 때마다 이름 모를 풀이며 꽃을 뿌리까지 뽑아와 물에 담가 놓고, 식사도 잊은 채 하루 종일 그것만 바라보았다. 집안에서 특별히 보기 좋은 곳에 가져다 놓거나 하는 것도 아니었다. 먼저는 강화에서 '갓버섯'이라며 버섯 하나를 따와 서울 집 싱크대에 두고 몇 날 며칠을 바라만 봤다. 설거지하기 번거로우니 좀 옮기라는 준수의 잔소리에도 갓버섯은 꿈쩍 하지 않았다. 오히려 버섯 사진을 가족 단톡방에 올리고서는 강화에서 따왔다며 신나 했다.

아내는 국민학교와 중학교를 모두 강화에서 다녔다. 인천 번화가 출신이기는 한데, 장인어른이 강화에 한약방을 열면서 막내인 아내를 포함 일곱 남매는 아버지를 따라 강화로 건너왔다. 당시 아내는 네 살이었고, 강화로 이사 온 해 장모님은 물 사고로 세상을 먼저 떠나셨다. 또 셋째 오빠도 원인을 찾지 못한 고열로 먼저 먼 여행길에 올랐다.


강화에서의 아내는 사랑을 독차지한 막내였다. 비록 어머니 없이 학창 시절을 보냈어도 열네 살이나 더 많은 제일 큰 언니와 열두 살 많은 둘째 언니가 깊고 깊은 사랑으로 아내를 돌본 모양이다. 준수는 명절이 될 때면, 아들과 딸을 자신의 형제와 조카들 대신 처가 식구들에게만 데려가고 싶었다. 늘 날이 선 말을 주저 없이 교환하는 자신의 가족들 사이에선 아들과 딸의 표정이 언제나 위태로웠지만, 처가에서는 한 없이 행복해했다.


지금 아내의 첫 째 언니는 백세에서 네 살이 모자라고, 둘째 언니는 여섯 살이 모자란다. 두 언니에게 준수의 아내 경이는 여전히 예뻐할 구석이 넘쳐나는 막내일 뿐이다. 그런데 서울에서는 아내가 아프다. 강화로 오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딱 오 년.


준수는 아내가 딱 오 년만 더 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다. 강화의 집. 그 집의 문을 열면 거기엔 준수가 평생 사랑한 아내, 그녀가 있다.


집이란 무엇일까?
이 글에 잠깐 등장했지만, 저와 인터뷰를 진행한 사람은 준수씨(가명)의 아들, 시우씨(가명)입니다.  

최근 시우씨의 아버지가 강화로 이사를 결정하신 이유는, 점점 몸이 쇠약해지는 아내가 언니, 오빠와의 따뜻한 기억이 넘치는 강화에서라면 건강을 되찾을 수 있지 않을까라는 소망에서였습니다.

시우씨는 부모님을 이렇게 묘사하고 있었습니다. 평생 소녀 같이 고왔던 엄마, 그리고 그런 엄마를 무뚝뚝하지만, 아무 말 없이 '츤데레'처럼 지켰던 아빠....

만약 시우씨의 어머니가 건강을 되찾으신다면, 그건 아마도 강화 때문이라기보다 아버지의 사랑 때문일 것입니다.

인터뷰에 응해주시고, 각색을 허락해주신 시우씨에게 감사의 말을 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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