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두 '스위트 홈'은 아니었지만...
집이라는 보평성과 특수성. 누군가에게 집은 지옥일 수도 있고 족쇄일 수도 있다. 또 누군가에게는 안식처일수도. 또 누군가에게는 끝내 갈 수 없는 상상 속의 그리움일 수 있다. 물론 부동산으로서의 집도 있을 수 있다.
내가 가본 집들을 전부 다 말할 수 없고, 다 안다고는 할 수 없지만 모두 ‘스위트홈’은 아니었다. 어린 시절에는 몰랐지만, 나이를 먹을수록 누군가의 집을 가면, 그 사람의 속내를 보는 듯 했고, 삶의 고단한 편린들이 묻어있음을 느낄 수 있었다. 그곳에서 우리 가족, 우리 집을 보기도 했다. 간혹 부러운 집도 있었다. 하지만 내가 정작 부러워한 것이 그 집이었는지, 그 이상의 무엇이었는지는 모르겠다. 어느 때부터인가, 나는 누군가의 집을 가는 게 슬그머니 불편해졌다. 때로는 열등감을 느끼기도 했고 때로는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며 돌아오기도 했으니까.
내가 어린 시절에는 이런 적도 종종 있었다. 밖에서 술 한 잔을 드시고 온 아빠가 기분 좋게 일행들을 데리고 우리 집으로 2차로 오는 경우. 우리 형제들은 졸린 눈을 비비며 거실로 나가서 난데없는 자기소개를 하거나, 어른들의 안주 심부름을 하기도 했다. (70~80년대 생이라면 공감할 포인트) 용돈을 받는 경우는 있었지만 극히 드물었다. 지금 이런 시도를 했다가는 민폐라고 비난을 받을 각오를 해야 한다. 집으로 사람이 찾아오는 일들이 점차 줄어들고 있다.
부모님이 부부교사였던 나는 어린 시절, 집에 혼자 있기 일쑤였다. 친구네 집에 참 많이 놀러 다녔다. 그때는 참 스스럼없었지만 대학교에 진학하면서부터는 친구 집에 가는 일이 드물어졌고, 어지간하면 밖에서 만나거나, 공공의 장소에서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누군가를 떠올릴 때, 그 배경으로 집까지 함께 떠오르는 사람들이 있다. 한두 번 밖에 가지 않았지만 강하게 인상에 남는 경우도 있고, 여러 번 갔지만 기억에 없는 곳도 있다. 결국 집을 이야기 한다는 것은 그 속에 살았던 사람들과 그 사람과 함께 보냈던 시간을 공유하고 기억하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쨌거나 오늘도 우리는 집으로 돌아간다. 고단한 하루를 마치고. 빠듯한 하루를 끝내고 지친 몸을 끌고 돌아가는 곳.
지금 이 시간에도 누군가는 ‘집’을 위해 쉼 없이 일하고, 집 때문에 울고 웃는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나 역시 그런 사람 중의 하나다. 가끔 한번 씩 떠오르는 친구들과 지인들, 그리고 그들이 살았던 집. 나는 내 기억 속 집들을 순례하는 마음으로 이 글들을 써보았다. 어떤 기억은 뒤죽박죽이고, 가물가물하기도 했다. 내 기억속에 있는 30초 스팟을 되돌려감기를 하며 10분짜리 미니 다큐를 만드는 심정. 남들은 영혼을 끌어모아 집을 산다는데 나는 영혼을 끌어모아 기억의 편린들을 적어내려보았다. 왜 이런 비생산적인(?) 일을 하는가. 누가 시키지도 않았는데... 집을 기억한다는 것은 곧 누군가를 기억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적어도 나에게는 그렇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