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3년 민정이네 집
민정이는 초등학교 2학년 때, 서울에서 전학을 온 친구였다. 금테 안경에 파마머리를 했고, 레이스가 있는 흰 블라우스와 빨간 체크무늬 치마를 입고 학교에 왔다. 민정이는 깍쟁이였다. 새침한 표정으로 잘 웃지도 않았다. 민정이가 머리를 움직일 때마다 금테 안경이 반짝반짝 빛났다.
민정이와 짝꿍이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민정이는 방과 후 자기 집에서 놀지 않겠냐고 물었다.
나는 좋다고 했다.
민정이네 집은 학교에서 멀지 않았지만, 골목 사이사이를 굽이굽이 들어가야 했다. 나는 처음 가보는 길이라서 얼떨떨했다. 당시는 80년대였고, 내가 살던 곳은 지방 소도시였다. 마을 골목길은 시멘트 담으로 이어져 있었는데 담벼락에는 ‘○○용달’ ‘△△가스’ 같은 글귀들이 파란 물감으로 찍혀있었다.
민정이네 집은 여러 사람들이 함께 모여 사는 곳이었다. ㅁ자 형태의 가옥이었다. 마당이 가운데 있었고, 방이 여러 개 나란히 있는 건물들이 마당을 둘러싸고 있었다. 민정이네 집도 그중 하나였다. 근처에 여자고등학교가 있었는데, 오후 5시면 그 집에서 자취를 하는 여고생 언니들이 저녁밥을 안치려고 쌀을 씻거나 교복 칼라나 양말을 빨기 위해 마당 한 구석에 있는 수돗가로 나왔다.
(이렇게 써놓고 보니 마치 60년대 같다. 그때는 그 여고생 언니들이 얼마나 커 보였는지 모른다.)
“엄마 나 왔어”
민정이는 의기양양하게 소리치며 작은 문을 열었다. 고백건대, 집에 돌아오자마자 ‘엄마, 나 왔어’라고 말하는 민정이가 나에겐 ‘충격’이었다. 우리 부모님은 맞벌이 부부였던 까닭에 내가 방과 후 집에 가면, 집에 아무도 없었다. 간혹 먼 친척뻘 되는 할머니들이 베이비시터(?)로 와 계시기는 했지만 대부분 귀가 어두웠다. 텅 빈 집에 가서 언니나 남동생과 시간을 때우거나 또는 피아노 학원으로 곧장 가서 시간을 때우곤 했다. 엄마가 집에서 기다리는 민정이네가 좀 특별해 보였다. 부러웠던 것은 아니었다. 다만 그땐 좀 이상했을 뿐이었다.
민정이가 작은 문을 열자 하늘색, 흰색, 파란색 타일이 깔려있는 작은 공간이 나왔고, 그 왼쪽 옆으로는 작은 나무문이 있었다. (예전 한옥주택에서 부엌에서 안방으로 밥상을 들여가기 위해 내었던 그 정도 크기다.)
그 나무문을 열면 비로소 방이 나왔다. 생각보다는 큰 방이었다.(그때는 내가 어렸기 때문에 큰 방처럼 느껴졌는지 모른다). 지금 생각해보니 블루톤 타일로 깔려있던 그 작은 공간이 부엌이었던 것 같다.
“어서 와라. 잘 왔어. 재미있게 놀아라.”
민정이 엄마는 희고 하얀 피부였다. 서울 사람 같다고 생각했다. 민정이 엄마는 아기를 안고 있었다. 민정이 남동생이었고, 아주 어렸던 걸로 기억한다. 민정이는 다시 한번 의기양양하게 우리에게 동생 자랑을 했다. 우리는 아기가 너무 신기해서 뚫어져라 보았다.
민정이는 우리에게 짐짓 ‘너무 가까이서 보면 안 돼. 아기가 싫어해.’라며 제법 누나 노릇을 했다.
지금 생각해보니 민정이 엄마는 아이를 낳은 지 얼마 되지 않았던 것 같다. 몸도 부어있었고 피곤해 보였다. 민정이는 성냥에 불을 붙인 뒤, 빨간 풍로의 석유통을 슬쩍 들어 올리고 불씨를 붙였다.
석유냄새가 강하게 나면서 곤로는 점화되었다.
민정이는 화력을 키운 뒤, 곤로 위에 검은 프라이팬을 올려서 능숙하게 달걀프라이를 만들어 주었다.
마당에서 골목에서 뛰어놀긴 했지만 내 머릿속은 그 갓난아이에게 가 있었다. 민정이 엄마 곁에 함께 누워 그 아이와 있고 싶었다. 하지만 나의 바람과 달리, 민정이는 우리를 방에 들이지 않았다. 단칸방이었던 까닭에 아이의 수면에 방해되리라 생각했기 때문이었을 것이다. 오후 늦게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민정이 엄마에게 인사를 드렸다. 민정이 엄마는‘우리 민정이랑 사이좋게 지내고. 내일 또 와라’라고 했다.
다음날 민정이네 집에 또 갔다. ‘내일 또 오라’는 어른의 말씀을 거역할 수 없었다. 민정이네 집에 가서 남동생과 눈도 맞췄다. 새까만 검은콩처럼 빛나던 눈이었다. 그리고 민정이가 단칸방 부엌에서 부쳐주는 달걀프라이를 먹고 또 놀았다. 내가 집으로 돌아갈 때 민정이 엄마는 또 ‘내일 또 놀러 오렴’이라고 했다. 나는 다음날 또 민정이네 집에 놀러 갔다. 민정이 엄마는 약간 놀라신 듯한 얼굴이었지만 서울에서 온 딸이 학교생활에 잘 적응하며, 단짝 친구도 생겼음이 흐뭇하셨는지 반가운 미소를 지으면서 달걀프라이 부쳐 먹고 놀라고 하셨다.
“엄마, 엄마가 내일 또 오라고 해서, 얘 또 왔대.”
민정이는 어이없다는 표정이었지만 민정이 엄마는 “잘 왔어. 재미있게 놀다 가라.”라고 하셨다.
돌아갈 때 인사드렸더니, ‘내일 또 오렴’이라고 하시고는 잠깐 머뭇거리셨다가 이내 환한 웃음을 지었다. ‘내일 또 오렴’은 민정이 어머니의 말 습관이었다.
다음날 학교가 파한 후, 민정이네 집에 가겠다고 하니 민정이는 ‘너 또 우리 집 가게?’라며 대놓고 싫은 기색을 보였다.
"너희 엄마가 내일 또 오라고 했잖아. 그러니까 가야지."
내 말에 민정이는 어이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아무리 초등학교 2학년 철부지라지만 내 말이 억지라는 걸 왜 몰랐을까. 나는 핑계를 찾고 싶었던 건지도 모른다. ‘다음에 또 오너라’가 아니라 ‘내일 또 오너라’라는 그 말에서.
민정이의 갓난아이 동생, 타일이 깔린 그 옹색하고 좁은 부엌에 웅크리고 앉아 먹었던 뜨거운 달걀 프라이, 문을 열 때마다 끼익 소리가 나던 밝은 황토색의 나무문, 그리고 작은 방안에 가득했던 훈김과 아기 젖내. 그 집의 무엇이 좋았다고는 말할 수 없지만 나는 그 집이 재미있었다. 물론 정작 방에도 못 들어가고, 마당에서 놀거나, 쌀 씻는 여고생 언니들을 구경하는 일뿐이었다 할지라도.
실컷 놀고 집에 돌아갈 때가 되었다. 민정이 엄마에게 인사를 드리려 가니, 민정이 엄마는 환하게 웃으며 이야기했다.
“잘 가렴.”
마치 영예롭게 은퇴하는 여배우와 같은 미소였다.
행여나 또 그 말 습관이 튀어나올까 봐 신중하게 생각해서 고른 듯, 또박또박, 온화하고 우아한 말투였다.
나는 인사를 꾸벅하고 나왔다. 슬쩍 보니, 아가는 어느새 많이 살이 올라 새근새근 자고 있었다.
그 후로는 민정이 집을 가지 못했다. 민정이가 다시 서울로 전학을 갔기 때문이다. 가끔 궁금해진다. 민정이는 그 집을 기억하고 있을까. 너무 짧은 기간 살았던 집이라 가물가물할지도 모른다.
어쩌면 기억하고 싶지 않을 지도.
민정이네 집은 내가 기억하는 첫 번째 친구 집이었다. ‘내일 또 오렴’이라고 말해주는 친절하고 젊은 엄마가 있는 집. 그리고 흰 백설기 같은 볼살이 날마다 오르던 아기가 있던 집. 그 집은 아직도 내 가슴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