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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라니 May 22. 2023

만난다는 것은 곧 눈뜸을 의미한다

라니에세이 6 #만남

Intro

풀리지 않는 일에 휩싸여 혼자서 헤매고 있었다. 너무 오래 헤매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문을 열고 나갔다. 사람들을 만났다. 그들과 대화하던 중 내 안 깊숙한 곳에 자리하고 있던 또 다른 나를 만나게 되었다. 만남은 또 다른 만남을 이어주었고, 나아가야 할 길을 밝혀주었다. ‘사람은 만남을 통해 성장한다’는 말을 몇 일 동안 품고 있었다.




1.

삶은 만남의 연속이다. 산다는 것은 매 순간순간이 만남의 행위이자 마주침의 선상에 놓여있다. 만남은 또 다른 만남을 이어주며 삶의 형태를 바꾸기도 한다. 


가족, 친구, 회사 동료, 카페 사장님, 길고양이들을 만난다. 생명을 가진 존재들뿐만이 아니다. 하늘과 꽃, 책, 찻잔, 사상과 철학, 진리와의 조우도 만남의 영역에 포함된다. 어떤 대상을 만났는가. 무엇을 나누었는가. 그때의 감정은 어떠했는가. 대상과 내용에 따라서삶의 결이 달라진다. 그때그때 자신이 지닌 색깔은 더 짙어지거나 옅어지기도 한다. 


2.

가장 선명하고 뚜렷한 결을 그려내는 만남이란 사람과의 관계에서 이뤄진다. 단 한 시간, 아주 잠깐의 만남이었을 수도 있고, 그 시간이 한 계절, 1년 동안 이어졌을 수도 있다. 삶을 송두리째 흔들어 놓을 만큼 오랜 시간을 들인 깊은 인연도 있다. 사람과의 관계야말로 무상함, 그 자체라고들 말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함께한 시간 속에서 느끼고, 배우고, 성찰한 것들은 내면의 가장 깊은 곳에 반드시 새겨져 있다. 


그들을 통해서 무엇을 느꼈는가. 좋은 사람과의 만남에 대해서 긴 설명이 필요있겠는가. 격려와 지지, 유대감과 정서적 안정감, 가르침과 영감 등. 꼭 특별한 것을 얻지는 않았더라도 함께하는 시간이 즐겁고 편안했다면 그것으로도 충분하다. 삶 속에서 경험하는 일들을 그들과 함께 나누면서 공유와 공감이 주는 의미를 쌓는다. 마음을 누일 수 있는 의지처를 얻고, 오롯하게 더 단단해진 자신을 발견하기도 한다. 


한편, 유쾌하지 않았던 사람과의 만남은 어떤가. 떠올렸을 뿐인데도 ‘훅’, 짜증스러움이나 슬픔이 몰려오는가. 그러나 시간이 좀 더 흐르면 알게 된다. 결과적으로 그들이 나에게 불편함'만’ 남긴 것은 아니었음을. 


반면교사反面敎師라고 하듯이, 유쾌하지 않았던 그들을 보며 ‘나는 더 나은 사람이 되리라’고 다짐했을 수도 있다. 그래서 정말 더 나은 사람으로 살아가고 있을지도 모른다. 너와 내가 만난 것. 세상의 모든 만남에는 반드시 이유와 의미가 있단다. 나를 불편하게 했던 그와의 관계에서도 분명 만남의 이유와 의미가 존재했다. 힘들었던 그 순간에는 비록 알 수 없었겠지만. 


어떤 만남이든, 만남은 그 자체가 소중하다. 만남은 상대방이 지닌 색깔에 서서히 물들어가는 시간이자, 상대방의 그 색깔에 자신이 지닌 색을 비추어 보는 시간이다. 그렇기에만남은 우리가 가진 가능성에 빛을 발하는 순간이 되어준다. 


3.

그중에서도 진정한 만남이란 자신과의 만남일 것이다. 자신과 마주한다는 것은 그 어떤 대상과의 만남과 비교되지 않을 정도로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다. 진솔하게 대면하는 마음자리에는 울퉁불퉁, 얼룩덜룩한 경험과 감정이 덧칠되어 있기 때문이다. 지나간 기억의 아팠던 순간이거나, 이해할 수 없었던 누군가의 일부를 자신의 깊숙한 곳에서 발견하게 된다. 


기억에서 멀어졌던 것들, 외면했던 누군가의 모습이 마음 한 가운데로 등장하게 되면 매우 당혹스럽다. 이어서 죄책감, 화, 슬픔 등과 같은 감정이 순식간에 밀려온다. 자신이 안쓰러울 수도, 밉고 못나게 느껴질 수도 있다. 


불에 데인 듯 따갑고 뜨겁다. 화끈거림이 쉽게 사라지지 않는다. 그때의 처방전은 딱 하나다. ‘그랬구나. 그 마음 때문이었구나.’ 자기 자신과 그 기억과 기억 속의 사람들을 보듬어주는 것. 할 수 있는 건 그뿐이다. 

다행스러운 건 그 시간을 한바탕 치르고 나면 시선이 조금 달라진다는 점이다. 납득 되지 않았던 일들이 조금은 이해가 된다. 나도 모르는 사이 덮어두었던 것들을 수용하게 된다. 자신을 대하는 시선 또한 조금 더 따뜻하고, 너그러워진다. 


4.

‘만난다는 것은 곧 눈뜸을 의미한다’는 법정스님의 말씀을 기억한다. 타인에 대한 눈뜸이자 삶에 대한 눈뜸이고, 자기 자신에 대한 눈뜸일 것이다. 눈을 뜬 만큼 달리 보이고, 달리 보이는 그만큼 수용하게 된다. 삶의 여정 속에서 진정한 만남, 진정한 눈뜸에 닿을 수 있는 기회를 얼마나 가질 수 있을까.


좋은 사람, 좋은 경험과의 만남도, 그렇지 않은 사람, 그렇지 않은 기억과의 만남도. 환한 봄날을 맞이하듯 기꺼이 환대할 수 있기를. 앞으로 만나게 될 또 다른 인연과 내 안의 용기 있는 자신을 기다려 본다.



Bookmark   나를 살린 문장


만남 _ 법정스님 

사람은 엄마에게서 태어난 것만으로 인간이 되는 것은 아니다.
거기에는 동물적 나이만 있을 뿐

인간으로서의 정신 연령은 부재다.

반드시 어떤 만남에 의해서만 인간이 성장하고 또 형성된다.

그것이 사람이든 책이든 혹은 사상이든

만남에 의해 거듭거듭 형성해 나간다.

만난다는 것은 곧 눈뜸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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