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 고등어 한 손
마트에서 장을 본다. 장 볼 때마다 항상 느끼는 것이지만 딱히 살 만한 것이 없다.그건 나 혼자만의 고민이 아니라 대한민국 주부들의 공통점일 것이다. 정육 코너를 기웃거리다 수산 코너로 발길을 옮긴다. 임연수 구이를 할까. 가자미를 바삭하게 구울까 하다가 이번에도 역시 고등어를 한 손 골랐다. 일단 양이 많아 조리하기가 쉽고 가격이 크게 부담되지 않아서이다. 눈빛이 살아있어야 싱싱하다는데 살집이 탱글탱글해 보이기에 별 고민 없이 집어 들었다.
고등어 한 손이 두 식구가 먹기에는 많은 양이지만 구워 먹고 조려 먹기로 마음먹었다. 집에 와서 한 마리를 구우려니 너무 크다. 다시 반으로 자르고 나니 네 토막이나 된다. 프라이팬을 달구고 기름을 적당히 두른 후 약한 불에서 서서히 굽는다. 잠시 후 노릇노릇하게 구워진 고등어에 기름이 좌르르 흐른다. 고등어는 안쪽의 살코기보다 껍질이 맛있다. 아무래도 등푸른생선이다 보니 껍질 쪽에 기름기가 있어서 더 고소한가 보다. 상추쌈에 쌈장을 곁들여 첫 끼는 뚝딱 먹었다. 다음 날 아침 또 한 토막을 구워 먹고 나니 이제 슬슬 질리기 시작한다. 처음에 살 때는 버리지 않고 아낌없이 다 먹을 생각이었지만 먹다 보면 알뜰하게 다 먹기가 쉽지만은 않다. 그만큼 먹을 것이 흔한 탓이기도 하다.
한때는 위가 좋지 않아 고등어를 먹지 못했던 시절도 있었다. 조금만 먹으면 신물이 넘어오고 트림과 함께 고등어의 역한 비린내가 목을 타고 넘어와 힘들다 보니 자연스럽게 먹지 않게 된 것이다. 그건 다 자랐을 때의 일이고 먹을 것이 늘 부족하고 배고픔에 시달리던 유년 시절에는 이것저것 가릴 경황이 없었다. 먹을 게 없다 보니 배를 채울 수 있는 것이라면 무엇이든 입으로 들어갔고 식탐이 강했던 나는 급체를 해 새벽에 토하기가 일쑤였다. 고등어를 먹고 토하거나 체하지는 않았지만 어쩌면 고등어는 내게 가슴 아픈 생선이다.
학교에서 돌아온 나는 방으로 들어가려다 말고 멈칫했다. 부뚜막에 고등어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있었다. 마치 나를 반겨주듯, 적어도 내게는 그렇게 여겨졌다. 나는 이미 죽어 소금에 절여졌음에도 눈을 뜨고 있는 고등어가 살아있는 듯 느껴져 한참을 쳐다보았다. 밖으로 나가 놀까 하다가 오랜 시간을 고등어 앞에서 서성거렸다. 고등어는 얌전하게 두 마리가 포개진 채로 푸른 등을 과시하듯 위풍당당하게 누워있었다. 모내기를 한다더니 장을 봐온 모양이었다.
마침 재 너머 큰엄마가 오셔서 두 분이 말씀 중이셨다. 엄마는 방으로 들어가려는 내게 밖에 나가서 놀다가 오라고 하셨다. 바깥에서의 놀이에 크게 흥미가 없던 나는 고등어 앞에 다시 섰다. 고양이도 아닌데 자꾸만 고등어에게로 눈길이 갔다. 아마 배가 몹시 고팠던 모양이었다. 처음에는 손가락으로 살짝 찍어서 맛을 봤다. 짭짤하고 고소한 맛이 내 혀를 자극했다. 손가락으로 찍어서 여러 번 맛을 보다가 이번에는 살짝 뜯어서 입에 넣어보았다. 제법 간간한 것이 입안에 침이 확 고였다. 방에서는 여전히 말씀 중이셨고 조금씩 뜯어먹다 보니 나는 어느새 그 짠 고등어 두 마리를 다 먹어버렸다.
잠시 후 부엌으로 난 쪽문이 열렸다.
“에구, 얘 어쩔꼬? 그 짠 걸 다 먹어버렸네!”
엄마가 화들짝 놀라서 뛰어나오셨다.
“큰일 났네, 그걸 생으로 먹었으니 배탈이나 안 나는지 원. 쯧쯧……”
큰엄마의 말씀이셨다. 엄마는 내가 진짜 고등어를 다 먹은 것인지 아니면 고양이가 들어와 먹고 간 것인지 물으셨다. 내가 먹었다는 것을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이셨다. 냉장 시설이 없던 시절이니 굵은 소금을 듬뿍 뿌려 절인 고등어이니 얼마나 짰을까. 하지만 내 기억에는 맛있게 뜯어먹은 기억의 자투리만 남을 뿐이다. 엄마의 물음에 난 그저 고개만 주억거렸다. 배도 고프고 맛있어서 먹었는데 못 먹을 걸 먹어서 야단났다는 놀란 표정에 혼자 어리둥절하기만 했다.
모심는 날을 잡으면 엄마는 며칠 전에 미리 장을 봐 놓는다. 그날은 가마솥에 구수한 쌀 향이 퍼지고 윤기가 좌르르 흐르는 하얀 쌀밥과 함께 갓 담은 배추김치, 미나리물김치, 고등어조림이라도 오르는 날이다. 먹을 게 귀했던 그 시절에 우리는 가마솥의 하얀 쌀밥을 그저 경탄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하지만 침만 꿀꺽 삼켜야 했다. 엄마는 일꾼들에게 먹일 점심밥을 머리에 이고, 젖먹이는 등에 업은 채로 밥을 해 나른다.
점심시간이 끝나면 빈 그릇들을 정리해서 집으로 이고 온다. 그때부터 우리들의 잔치가 시작된다. 먹다 남긴 밥상이 얼마나 푸짐할까만 한참 먹을 것이 귀하기도 했거니와 보릿고개가 거의 절정인 시기였다. 한창 뛰어노느라 활동량이 많은데다 밥 외에는 달리 먹을 게 없다 보니 아이들의 관심은 오직 먹는 데 있었다. 우리 세 자매는 일꾼들 먹고 남아서 챙겨온 밥과 반찬을 참으로 게걸스럽게 먹어댔다. 늦은 점심으로 허기가 진 배는 그칠 줄을 몰랐다. 비쩍 마른 몸뚱이에 배가 빵빵하게 부풀어도 숟가락질이 멈출 줄 몰랐다.
그랬으니 부뚜막의 고등어는 고양이 앞의 생선이나 마찬가지였다. 그 고등어 사건은 몇십 년을 두고두고 이야깃거리가 되었다. 고등어를 생으로 한 손이나 뜯어먹은 기이하고 엉뚱한 아이로 말이다. 아무리 못 살아도 생고등어를 뜯어먹은 아이는 내가 유일하다고 한다. 고등어 뜯어 먹은 것은 잘못이 아니었지만 난 도둑질하다가 들킨 사람 같았다. 해서는 안 될 일을 하다가 들킨 아이처럼 얼음이 되었다. 어처구니가 없는 상황에 어른들은 꾸중을 내리지도 않았다. 어른들의 걱정과는 달리 모내기에 일꾼들 먹을 고등어를 먹어 치웠다고 꾸중 들을까 혼자 전전긍긍한 것이다.
그 일은 아버지에게 전해졌고 아버진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고등어를 생으로 뜯어 먹었겠냐고 하셨다. 배탈만 안 나면 다행이라며 오히려 내 몸을 걱정하셨다. 엄마는 생으로 먹은 고등어 때문에 기생충이 생기거나 아주 큰 탈이 나는 건 아닌지 염려하셨다. 난 내 몸에 이상을 알리는 신호보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을 저지르고 들킨 아이처럼, 마치 죄인이라도 된 듯이 주눅이 들었었다. 그 짜디짠 것을 먹었지만 내 몸은 멀쩡했다.
아직도 엄마는 가끔 내게 고등어 한 손 먹어 치운 이야기를 하신다. 신기한 듯 우스운 듯 에피소드처럼 말씀하시지만 듣는 나는 쑥스럽고 열없기만 하다. 아마도 호기심 반 배고픔 반으로 먹었으리라. 그때의 고등어와 부엌에서 내가 서 있는 장면은 지금도 지켜보듯 생생하다. 고등어는 내게 단순히 식재료의 차원을 넘어서 조금은 아픈 생선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