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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만 사랑한 딸

1. 엄마 냄새가 무척 좋아

by 글마루 Mar 15. 2025

  오십여 년 전 나는 방 두 칸짜리 초가집에서 태어났다. 말 그대로 지붕이 낮은 오막살이 초가집. 내가 태어났을 때 엄마의 말을 빌리자면 큰엄마의 "또 딸 낳을 줄 알았어."라는 말이 아직도 뇌리에 남아 있다. 당시 아들을 최고로 여기는 시대상황에서는 있을 법한 일이지만 내가 선택해서 태어나지 않았기에 나는 꽤 억울한 입장이다. 어릴 때 그 말을 듣고는 정확히 인지하진 못해도 그 말이 좋은 뜻은 아니라는 걸 알았다.

  윗 동서에게 저주나 마찬가지인 말을 들어서일까. 내가 아무리 기억력이 좋아도 갓난아기 때는 기억하지 못하지만 어린 시절 나는 엄마에게 포근히 안긴 기억이나 사랑받은 기억이 없다. 둘째는 아들이었으면 바랐는데 딸이 태어나서 섭섭했다는 말을 들은 적은 없지만 나는 엄마에게 반가운 출생은 아니었던 것 같다.

  <똥칠거지>라는 작품에서 밝혔듯이 어린 나는 늘 엄마의 사랑에 목말랐고 사랑을 갈구했다. 사랑받지 못하는 어린아이는 서러움이 똘똘 뭉쳐 눈덩이처럼 커졌다. 그래서인지 엄마를 편하고 만만하게 대하기보다 늘 눈치를 봤던 것 같다. 그러면서도 나는 엄마가 세상에서 가장 좋았다. 엄마라는 자체로 엄마 몸에서 나는 냄새조차도 좋아서 늘 엄마의 꽁무니에 붙어 있었다.

  위에 맏딸인 언니에겐 먹는 것조차 차별받았다. 엄마가 보기엔 신체가 튼튼하고 성격이 털털한 맏딸이 든든했던지 장에 갈 때도 언니만 데려가고 나만 남겨졌다. 나도 엄마 따라가고 싶다고 하면 어딜 따라오냐고 윽박지르며 눈을 흘기던 기억이 어렴풋하다. 내 주장이 강하고, 고집 세고, 까다로운 성향이 엄마에겐 못마땅했는지도 모른다. 나는 매우 차분하고 얌전한 아이였는데 내가 잘못한 것이 아니라도 보고 뭘 했느냐는 둥, 무언가를 물어보면 귀찮다는 듯 짜증을 냈기에 그 때문에 엄마는 아버지에게 핀잔을 듣기도 했다.

  지금껏 단 한 번도 엄마에게 내 마음을 다 열어 감정을 표현해 보지 못했다. 이유는 받아주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 때문에. 어릴 때도 여러 번 퇴짜를 맞은 나는 더 이상 상처받기 싫은 방어기제가 작동했는지 울지 않고 강해지려고 했다. 지금도 여전히 확인하고 싶은 엄마의 속마음. 나는 자타공인 착한 딸이었는데 왜 엄마의 사랑을 받지 못했던 걸까. 자식을 키워낸 나도 여전히 의문점으로 남은 엄마의 마음. 그런 혼란스러운 감정으로 만약 엄마가 나를 사랑하지 않았다면 인연을 끊을까도 수없이 고민했었다.

  맏딸이나 아들이 좋아하는 음식을 챙기면서 지금껏 내가 어떤 음식을 좋아하는지 알지도 못하고 정성 어린 마음으로 먹으라고 권한 기억이 없다. 내가 내 자식을 기르며 의문점을 발견한 후로 나는 사춘기 때도 겪지 않았던 마음의 방황으로 외롭고 슬프고 괴로운 시간을 보냈었다. 내게만 유독 야멸찬 엄마를 증오해도 내 마음만 더 괴로울 뿐이고 나는 영원히 풀지 못하는 수학문제를 가지고 쩔쩔매는 어린아이로 남아 있었다.

  하지만 그토록 섭섭하다가도 막상 먹을 게 생긴다든지 힘들거나 좋은 일이 생기면 먼저 엄마가 떠오른다. 엄마는 내게 맛있는 것 주려고 노력하지 않아도 나는 여전히 엄마를 일 순위로 챙기는 편이다. 지난주 식사할 때 한라봉이 담긴 봉지를 남동생이 건네주는데 나를 생각해서 엄마가 줄리 없다고 생각해 오래돼서 먹기 싫어서 내게 주는 거냐는 말을 던졌다. 엄마는 팔짝 뛰셨지만 진실을 떠나 용기 있게 하고 싶은 말을 했고 예전 같으면 내게 고래고래 소리 지르며 호통을 칠 텐데 그러지 않았다.

  엄마가 화낼까 봐 두려워서 하고 싶은 말도 참고만 있다가 내지르고 나니 사이다를 마신 것처럼 톡 쏘는 시원함이 있다. '효'라는 늪에 갇혀 부당함도 표현하지 못했는데 진정한 나 자신을 찾은 것 같아 내면에 당당함이라는 기둥이 세워졌다. 평생 한으로 남을지 모를 엄마와의 이야기를 시작해 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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