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책감을 느끼다
엄마로 인해 속상하고 상처받은 기억이 있긴 했지만 나는 굉장히 쾌활한 성격이었다. 금방 잊어버렸고 활발했기 때문에 친구들과도 곧잘 어울렸다. 친구들과 어울려 다른 마을의 친구네 집으로 무더기로 몰려가 친구의 어머니께 밥을 얻어먹기도 하고 부모님의 허락을 얻어서 친구의 집에서 자고 오기도 했다. 아버지가 자식을 차별하지 않고 개방적이었기에 자식들의 자율성을 인정해 준 덕분이 아닌가 한다.
집에서 5km 거리의 학교를 버스비를 아끼려고 걸어 다닌 적이 많았는데 늦가을에 접어들자 점점 손이 시렸다. 친구들은 학교 앞 문방구에서 파는 손가락장갑을 사서 끼고 다녔기에 괜찮았는데 유난히 추위를 많이 타고 특히 손발이 많이 찬 나는 손 시린 게 고역이었다. 한겨울이 되지 않았는데도 책가방을 들고 걸어서 집에 도착할 때면 내 손은 발갛게 얼어있었다.
장갑이 필요했는데 초등학교 때 끼던 낡은 벙어리장갑을 끼고 다니기에는 친구들에게 창피했다. 게다가 벙어리장갑은 네 손가락이 모아져 있어 움직임에 제한이 있었다. 친구들이 끼고 다니는 손가락장갑은 알록달록 무늬를 넣어 예뻤다. 친구가 낀 장갑을 손에 한 번 껴본 후로는 그 장갑이 갖고 싶어 여러 번 엄마를 졸랐다. 늘 돌아오는 대답은 '돈이 없다.'였기에 나는 기분이 좋지 않았다. 왜냐하면 나는 우리 집 형편을 알고 있었기에 여간해서 뭘 사달라고 한 적이 없었다. 옷도 서울 먼 친척 집에서 보내온 옷 중에서 골라 입어서 새 옷을 입은 기억이 별로 없다. 남이 준 옷가지만으로도 충분히 들뜨고 만족할 때가 많았다.
그날도 곱은 손을 호호 불며 걸어서 집에 왔다. 내 가방을 받아 들은 아버지가 내 손을 잡더니 손이 얼음장 같다며 내 손을 주물러주셨다. 그 찬스를 놓칠세라 나는 아버지께 장갑을 사달라고 했고 얼마냐고 묻는 아버지께 언제 들었는지 엄마가 부엌에서 나와 돈이 어디 있어서 장갑을 사느냐고 하셨다. 친구들 대부분이 가지고 있는 장갑 하나 못 사주나 싶어 적잖이 섭섭하고 토라졌던 나는
"장갑 하나 못 사주는 주제에."
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나오고 말았다. 말을 해놓고 아차 했는데 이미 엎어진 물이었다. 아버지는 내 말에 화를 내지 않고 장갑을 사라고 하셨고 엄마는 부모에게 그게 무슨 버릇없는 말이냐며 다그치셨다.
아버지가 여러 말 말고 애 손 시린데 사주라고 하시자 엄마는 어쩔 수 없이 내게 장갑 살 돈을 주셨다. 다음날 나는 학교 앞 문방구에 가서 넓은 줄무늬가 있는 따뜻하고 예쁜 손가락장갑을 샀다. 1,500원짜리 거금으로 장갑을 사서 끼자 나는 갖고 싶은 걸 얻게 된 기쁨에 뿌듯함마저 들었다. 친구들 대부분이 장갑이 있는데 나만 없어서 적잖이 기가 죽은 상황이었기에 나는 친구들에게 장갑 낀 손을 보여주며 동질감을 느꼈다.
학교를 마치고 가방을 든 손이 더 이상 시리지 않아 좋았고 알록달록한 장갑 낀 내 손이 특별해 보였기에 나는 즐거운 마음으로 친구들과 재잘재잘 수다를 떨며 하교했다. 집에 도착해서도 장갑을 껴 손이 시리지 않다며 아버지께 신이 나서 이야기했다. 아버지는 손이 시리지 않으니 다행이라고 하셨고 나는 내가 불쑥 내뱉은 말에 효험이 있어 장갑을 얻게 된 것 같아 내심 들떴었다.
그런데 다음날 학교에서 장갑을 잃어버렸다. 누가 가져갔는지 감쪽같이 없어진 장갑을 선생님이 주운 사람 있는지 학생들에게 물었지만 아무도 모른다고 했다. 아무리 찾아도 장갑이 보이지 않자 나는 허탈함을 안고 쭈볏쭈볏 집으로 들어섰다. 손이 몹시 시렸지만 이젠 손 시리다는 말도 할 수 없는 상황이었다. 게다가 엄마의 곱씹는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는 나는 엄마의 문책이 무엇보다 두려웠다.
내가 맨손으로 마루로 오르자 엄마가 먼저 알아보고 장갑 어떻게 했느냐고 다그치셨다. 하는 수 없이 잃어버렸다고 대답함과 동시에 엄마의 질타가 연속해서 쏟아졌다. 게다가 나도 모르게 나온 그 말을 얼마나 반복해서 하는지 나는 죄책감에 휩싸여 꿀 먹은 벙어리가 되었다. 어떤 질타도 다 받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장갑 산 지 며칠이나 되었다고 잃어버렸냐, 장갑도 못 사주는 주제에 그런 말을 해놓고 왜 잃어버렸느냐며 반복해서 다그치셨다. 그러면서 이젠 못 사준다는 엄포와 함께.
당연히 나는 다시 장갑을 사주지 않을 것이라는 것을 알았고 다시 사달라고 했다가는 무슨 말을 들을지 답이 나와 있었기에 손 시리다는 말도 하지 못하고 다녀야 했다. 그 후로도 엄마는 잊을만하면 내가 한 말을 반복하며 내게 죄책감이 들도록 했다. 나도 마음속으로는 그 말이 잘못인 줄 알았지만 죄송하다고 사과는 하지 못했다. 쑥스러움도 한몫했고 그런 말이 하기 싫게 장갑 잃어버린 것에 대해 두고두고 잔소리를 했기 때문이다.
엄마의 반복되는 윽박지름에 아버지가 그만하라고 하셨고 실수로 한 말이지 않느냐고 물으시며 다음부터는 그런 말 안 할 거지라고 내게 물으셔서 나는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잘못 말했다고 했다. 아버지는 엄마에게 애가 장갑 잃어버리고 싶어서 잃어버렸겠느냐, 자식이 실수로 한 말을 왜 그렇게 반복하느냐며 앞으로는 하지 말라고 하셔서 나는 그 죄책감에서 조금 벗어날 수 있었다. 부모가 자식으로부터 경제적 능력이 없음을 꼬집는 말에 부모님도 상처받고 속상했을 것이다.
손가락장갑 사건이야 엄연히 내가 말 실수하고 잃어버린 것도 잘못이지만 수십 년이 흐른 지금도 장갑만 보면 그때의 장면이 생각 나 죄책감과 상처가 동시에 떠오르고는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