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브런치북 X의 사유 28화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김재완 May 27. 2024

제사를 안 지내도 되는 논리적인 이유

제사와 차례 때문에 고통받나요? 아니면 음식을 준비하며 모든 가족 구성원의 유대가 깊어지나요?

후자라면 제사를 지내도 되지만, 전자라면 이 글을 읽고 제사를 그만 지내도 됩니다. 

경찰청 통계에 따르면, 명절 기간 동안 가정폭력 신고 건수는 평상시 대비 40%가량 높고, 부부간 갈등에 따른 명절 후 이혼율은 평균 대비 10% 이상 높다고 합니다. 죽은 자를 위해 산 자의 수고를 감내하는 것은 이해가 되나, 산 자의 행복을 포기하면서까지 차례와 제사를 지내야 할까요?

국가기록원에 따르면 제사의 기원은 샤머니즘을 바탕으로 한 자연숭배와 연관이 깊다고 합니다. 제사는 중국의 주자학에서 전래되었으나, 우리 민족의 삶에 뿌리를 내린 것은 오래되지 않았습니다. 조선시대도 왕실이나 일부 양반들만 지냈으며, 조선 중기 이후에나 일반 백성들도 제사를 지내기 시작했다고 합니다. 따라서 제사는 우리만의 고유한 풍습도 아니며, 천 년 이상의 유구한 전통을 가진 의식도 아닙니다.


그런데도 우리가 제사를 지내는 이유는 무엇일까요?

제사를 지내지 않으면 조상의 보살핌을 받지 못해서 자신은 물론 후대에도 나쁜 영향을 미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가진 사람들이 많습니다. 그러나 조상 덕을 본 사람들은 명절에 해외여행 가고, 조상 덕을 못 본 사람들은 전을 부치며 서로 싸우는 경우는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요? 명절에 전을 부치는 사람들과 인천공항에서 외국으로 짐을 부치는 사람들 중 조상 덕을 본 사람들은 어느 쪽일까요? 그리고 자신의 제사를 안 지낸다고 후손에게 해코지를 하는 조상은 훌륭한 조상인가요?


집안의 체통과 가문의 명예를 지키기 위해서 성대한 제사를 지내기도 합니다. 21세에 한국사회에서 훌륭한 조상을 둔 집안은 어디일까요?

우리나라에서 독립운동가를 가장 많이 배출한 고장은 경북 안동입니다. 제사 때마다 음식을 수 십 가지는 준비할 것 같은 유림의 고장입니다. 그러나 안동의 독립운동을 이끈 이들은 놀랍게도 혁신유림이라고 불리는 분들이었습니다. 드라마 미스터 선샤인의 김태리 배우 가문의 실제 모델은 안동의 혁신유림 이상룡 선생입니다. 이상룡 선생은 1962년 건국훈장 독립장을 추서 받았고, 대한민국 임시정부의 초대국무령을 지내셨습니다. 현재 추정가지 자산 수백억 원을 미련 없이 처분하여 나라의 독립을 위해 사용하셨습니다. 선생께서 전 재산을 처분하고, 노비문서까지 불태우고 독립운동을 위해 간도로 떠날 때 많은 반대가 있었다고 합니다.

“선비 된 자로서 공부는 어쩌자고 이러나? 조상님을 모시는 신주는 또 어쩔 셈인가?”

선생님은 당시 혁신적이지 못했던 유림들에게 이렇게 말하고 고향을 떠났다고 합니다.

“공자와 맹자는 시렁 위에 얹어두고 나라를 되찾은 뒤에 읽어도 늦지 않소이다.”

선생이 조상의 신주까지 땅에 묻고 길을 나서자, 자유의 몸이 된 노비들도 선생의 뒤를 따랐다고 합니다. 

이 집안의 제사와 차례는 어떤지 살펴보시죠. 

이상룡 선생의 후손들은 추석에는 차례를 지내지 않고, 설날에도 4종의 과일과 떡국을 포함하여 음식의 가짓수가 10가지를 넘지 못하게 합니다. 또한 시댁식구는 물론이고 남자들도 음식마련을 함께 한다고 합니다. 기제사는 일 년에 단 한 차례, 8월 15일 광복절 낮 12시에 4대의 제사를 한꺼번에 지낸다고 합니다. 신분제가 철폐된 오늘날 집안의 전통과 명예는 스스로 만드는 것입니다. 참고로 유림의 대부라고 할 수 있는 퇴계 이황선생의 후손들도 추석 차례는 지내지 않는다고 합니다. 21세기 한국 사회에서 이 집안보다 음식을 많이 차리고 제사를 자주 지내야 할 정도로 더 높은 덕망을 가진 집안이 몇 이나 될까요?


제사가 허례허식의 대명사가 된 것은 신분제가 철폐되고, 양반이 지내던 제사 의식을 따라 하면서 커진 경향이 있습니다. 

'옆집 돌쇠네 보다 더 많이 차려야 한다. 우리도 이제 양반이다.'

먹을 것이 풍족하지 않고 온 백성이 가난하던 시절에도 우리 조상들은 산 자가 힘을 얻기 위한 원동력으로 명절을 즐겼습니다. 

'오늘 하루쯤은 배부르게 먹어보자. 조상님도 오늘 하루쯤은 봐주실 거다. 그래야 힘을 내서 또 열심히 농사짓지.' 

명절 차례는 농경사회 풍습에서 기인한 축제의 한 형태였습니다. 고속도로 휴게소에 음식이 버려질 정도로 먹을 것이 넘쳐나는 영양과잉의 시대이며, 차례가 아니어도 즐길 것이 많은 풍족한 시대입니다. 


제사는 기독교도 불교도 천주교도 아닌 유교의 의식입니다. 제사에 대한 유교 측 의견은 어떨까요? 

<주자가례 어디에도 홍동백서나 조율이시 같은 말은 없습니다. 차례 때문에 가족 간 불화가 생긴다면 차라리 안 지내는 게 낫습니다.>

위의 말은 교회의 목사님이나 성당의 신부님이 아니라 성균관대학교에서 유교철학을 전공하고 동양철학 박사 학위를 받은 정통 유학자인 최영갑 성균관 유도회총본부 회장이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직접 한 말입니다. 성균관유도회는 독립운동가인 심산 김창숙 선생이 1945년 전국유림대회를 거쳐 창립한 이래 현재까지 계승되어 온 단체입니다. 그는 인터뷰에서 “유교를 제대로 공부하지도 않고 고집만 부린 기성세대가 문제”라고 역설합니다. 세상에는 나쁜 개도 없고, 나쁜 종교도 없습니다. 다만 몰지각한 주인과 감히 종교를 이용해 자신의 잇속을 채우려는 사악한 인간들이 있을 뿐입니다. 유교의 선지자들도, 유교를 진심으로 아끼는 분들도 제사 때문에 후손들이 고통받는 것을 결코 원하지 않는 것을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전통을 무조건 혁파하자는 주장이 아닙니다. 세상의 흐름에 따라 어쩔 수 없이 변화고 소멸되는 것들이 있습니다. 종묘제례는 조선시대 역대 왕들의 신의를 모신 종묘에서 행하는 제향의식입니다. 1975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으며, 2001년에는 유네스코의 세계무형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가정의 제사는 결국 이와 같은 형태로 이어질 것입니다. 남의눈을 의식하는 형식보다 중요한 건 부모님과 먼저 떠난 가족을 잊지 않는 나의 마음 아닐까요?

 







이전 27화 뉴진스보다 행복한 밴드 KBZ를 아시나요?
brunch book
$magazine.title

현재 글은 이 브런치북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