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엽편소설 : 나뭇잎 넓이 정도에 완결된 이야기를 담아내는, 단편소설보다도 짧은 소설을 가리키는 용어이다.>
모두가 알다시피 국회의원의 연봉이 처음부터 5천만 원으로 제한되었던 건 아니다. 그 사건이 계기가 되었고, 연봉뿐만 아니라 후보자들의 자산에 대한 제한 조건도 추가되었다. 다주택자, 자산이 50억 원이 넘는 자는 선거에 출마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 또한 임기를 마친 후에도 50억 원이 넘는 자산은 국고에 기부하도록 법률로 제정하였다. 얼핏 이해가 안 되는 조건 같기도 하지만, 기실 돈에 관련된 조건만 추가되었을 뿐이다.
그 사건의 결과로 특별 법안이 통과되자 미디어에서는 연일 우려의 목소리를 높였다. 훌륭한 인재들이 단지 부자라는 이유만으로 국회의원에 출마하지 않을 것이며, 능력 미달의 사람들이 국회를 장악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또한 이는 국력 약화로 이어져 종국에는 보라돌이들에게 이 나라가 넘어갈 것이라고 지랄법석을 떨었다. 그러나 일기예보다 낮은 적중률을 보이는 전문가라고 자칭하는 자들의 예상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국회의원에 당선됨으로써 얻게 될 금전적 이익이 사라지자, 진짜 정치를 하려는 순수한 열정을 가진 -부자가 아닌- 사람들이 속속 국회로 입성했다. 그중에는 놀랍게도 수백억 원의 자산을 기부하고, 오로지 더 나은 세상을 구현하기 위해 국회의원이 되려는 바보들도 더러 있었다.
반면 자산을 수백억, 수천억으로 늘리기 위해 국회의원이 되려던 자들은 입맛을 다시며 정계에서 완전히 사라졌다. 지상천국이 열리진 않았지만, 많은 사회 문제가 해결되며 더 나은 세상으로 진보하는 것이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세상을 바꾼 그 사건은 오래전, 쌍문동에서 생선가게를 하던 채순분여사의 방귀에서 시작되었다.
채순분여사의 자부심이자 삶의 이유는 서울대학교를 나온 두 아들이었다. 작가가 되고 싶었던 장남은 국문과를 졸업했지만, 어머니의 몸에 각인된 생선 냄새를 지우기 위해 돈 냄새를 따라 대기업에 입사했다. 외향적인 성격의 둘째는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하고, 변호사가 되었지만, 돈도 안 되는 노동 현장에서 죽을 때리고 있었다. 채순분여사의 두 아들은 각기 다른 이유로 집을 하숙집처럼 드나들었다. 두 아들은 엄마의 자랑이었지만 얼굴을 자주 보기 힘들었고, 특히 장남은 행복해 보이지 않았다.
장남은 일상이 되어버린 야근과 부장에게 받는 비인간적인 대우로 나날이 시들어 가고 있었다. 원형탈모를 가리기 위해 흑채를 뿌린 채, 연차를 이용해 정신과 치료를 받고 온 날 어머니에게 회사를 관두겠다고 말하려던 참이었다. 하지만 채순분 여사의 말에 장남은 입을 닫을 수밖에 없었다.
“나는 힘들어도 하나도 안 힘들다. 그저 네가 그 큰 회사에 다닌다고 생각하면 밥을 굶어도 배가 부르다. 그 지랄 맞은 과일가게 할망구가 나한테는 찍소리도 못하는 것이 다 네 덕분이다. 고맙다. 아들아. 그런데 얼굴이 왜 반쪽이냐? 한약이라도 해 주랴?”
뜬눈으로 밤을 지새운 장남은 어제의 연차로 밀린 업무를 위해 평소보다 일찍 집을 나섰다. 경기도에서 서울로 향하는 지하철은 시간을 막론하고 언제나 붐볐다. 역삼역 도착을 알리는 안내방송이 울리자 갑자기 심장이 뛰기 시작했다. 출입구 앞으로 움직이려 했으나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고, 급기야 정상적인 호흡이 불가능해졌다. 지하철 문이 열리며 쏟아져 나오는 사람들에게 밀려 그는 쓰러졌다. 비명을 지르는 사람, 쓰러진 그를 넘고 역사를 빠져 나가려는 사람들이 뒤엉키며 지옥철은 정차 후에도 위용을 과시했다. 그 와중에도 쓰러진 그를 한쪽으로 옮기고, 119에 전화를 하고, 심폐소생술을 하는 사람들이 있었다. 잠시 정신을 차린 그는 휴대폰의 패턴을 열어 통화버튼을 눌렀고, 자신의 머리를 받치고 있던 청년에게 전화기를 건넸다. 전화를 받은 사람은 채순분여사도 그의 친구도 아닌 부장이었다. 부장이 전화를 받았지만 그는 끝내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서울대를 졸업하고 대기업에 다니던 그의 사망소식은 뉴스의 한 토막을 장식했지만, 다음 날 더 자극적이고, 더욱 울분이 터지는 뉴스에 의해 침식되었다. 두 아들을 낳고도 삼일 만에 가계 문을 열었고, 교통사고로 늑골이 부러졌어도 퇴원 한 다음 날 가계로 나갔던, 채순분여사는 마음이 무너져 한 달째 방구석에서 TV만 보고 있었다. 넋을 놓은 어머니를 대신해 형의 사망처리를 하던 동생은 형이 극심한 스트레스로 정신과 치료까지 받은 사실을 알게 되었다. 동생은 대기업을 상대로 형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묻기로 했다. 하지만 아직 세상이 바뀌기 전이었다. 다수가 의지하는 법과 정의 위에 소수가 소유한 돈이 꽈리를 틀고 있던 암울한 시절이었다.
사망사건이 발생한 중대재해가 분명했지만, 정신적인 피해에 대한 보상을 받기는 좀처럼 어려웠다. 동생은 형과 어머니와 가까운 시일에 생길 또 다른 피해자를 위해 지역 언론사와 접촉하기 시작했다.
대기업의 전략실은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고, 그룹 내의 미묘한 움직임도 신경이 쓰이기 시작했다. 전략실에서는 동생의 지인들을 압박하고, 채순분 여사의 가계건물을 매입 후, 그녀 가계의 임대계약을 해지했다. 그들은 여기에서 그치지 않고, 동생의 과거를 이 잡듯 뒤진 후, 소송을 걸기 시작했다.
“시발! 존나 깨끗하네. 머라도 찾아봐. 하다못해 학교 다닐 때 표장창도 다시 보고, 명예훼손이건 머건 다 걸어. 일상생활이 불가능하도록 말이야. 그 할멈 시장 통에서 점 백짜리 고스톱이라도 쳤는지 뒤져보란 말이야.”
대기업에 다니던 장남은 그곳으로 출근하는 길에 객사를 했고, 차남은 밀려드는 소송으로 여름날 아이스크림처럼 녹기 시작했다.
한편 채순분여사는 먹은 것도 없는데 속이 안 좋아 연신 트럼을 하며 방구석에서 뉴스만 보고 있었다. 오늘의 속보는 한 국회의원의 아들이 무슨 일을 하는지도 모르는 회사에서 퇴직금으로 30억 원을 수령했다는 것이다. 아버지 국회의원은 아들이 재직 중 극심한 스트레스로 인한 정신적 피해에 대한 합당한(?) 보상금이라며 기자회견 도중 눈물을 보였다. 기자회견을 마치고 사무실로 돌아온 국회의원은 이 땅에서 민주주의가 무너지고 있다고 한숨을 쉬었다. 그러다 문득 억울한 생각이 들었는지, 기업이 직원에게 퇴직금을 30억을 지급하던, 100억 원을 지급하던 먼 상관이냐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며 난리를 쳤다. 그때 한 보좌관이 당신이 씨불이는 건 타락한 자본주의고, 네가 버린 건 사람 사는 세상이라고 일갈하며 목에 걸린 출입카드를 내려놓고 방을 나섰다.
사직을 한 것은 보좌관이요, 뉴스를 보고 스트레스를 받는 것은 서민들뿐, 국회의원과 그의 아들은 뉴스에서 사라졌을 뿐, 잘 먹고 잘 살게 되었다.
채순분여사는 우리 아들도 정신적 머시기 때문에 죽었는데 라고 중얼거리며, 아들의 영정사진을 가슴에 안은 채, 실로 오랜만에 집을 나섰다. 거리에는 사람이 넘쳐났지만 채순분여사는 지독한 외로움을 느꼈고, 그 보다 더한 무력감을 느꼈다. 집으로 발길을 돌리려던 그녀는 환하게 웃고 있는 장남의 얼굴을 보고 다시 몸을 돌려 국회의사당을 향해 걷기 시작했다. 그 순간 먹은 것도 없는데 몇 달째 답답하던 속에서 우렁찬 방귀가 나왔다. 호기롭게 방귀를 뀌었지만, 그녀 자신도 이 짓을 20년 넘게 할 거라곤 상상도 못했을 것이다.
그녀는 일주일에 사흘은 길바닥에서 생선을 팔았고, 나머지 날은 장남의 사진을 들고 국회 앞에서 1위시위를 했다. 흰 소복을 입고 산발을 한 채순분여사는 자신이 아들을 위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라고 생각하면 -몸은 힘들어도- 마음만은 안식을 얻을 수 있었다. 길고 지난했다는 말로 담아내기 힘든 시간이 느리게 흘러갔다.
세월이 흘러 둘째 아들도 어머니의 의지에 손을 들고, 채순분 여사의 허리는 직각으로 꺾여갔지만, 그녀의 의지는 여전히 꼿꼿했다. 그사이에도 세상에는 불합리와 불공정이 켜켜이 퇴적되어갔다.
그러던 어느 날, -영화를 전공하지 않았지만- 영화를 찍고 있는 20대 다큐멘터리 감독이 할머니 앞에 나타났다. 그녀는 할머니를 향해 카메라렌즈 대신, 자신의 귀를 열었다. 할머니는 생선을 파는 좌판에서 국회로 오가는 길에 손녀 같은 그녀에게 한 많은 세월을 담담하게 토해냈다. 할머니가 쏟아낸 이야기를 렌즈에 주워 담은 다큐멘터리는 한 번의 올림픽이 지난 후, 알고리즘의 선택을 받아 세상에 뿌려지기 시작했다. 각종 커뮤니티에서 그 다큐가 소개되며,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였다.
언젠가부터 채순분여사의 곁에 수많은 어머니들이 자식들의 영정사진을 들고 자리했다. 그 이후 이야기는 지면관계상 중략하겠다. 이것은 대하소설이 아닌 엽편소설이니까. 촛불이 켜졌고, 촛불이 모여 횃불처럼 타오르기도 했다. 그러다 먹고 사는 일에 지쳐 사그라지기도 했으며, 꺼진 줄 알았던 불꽃에 누군가 다시 숨을 불어넣기를 반복됐다.
마침내 국회의원의 자산을 제한하는 법안이 통과되었고, 일 년 후 채순분 여사는 다음과 같은 유언을 남기고 눈을 감았다.
“나는 죽는 것이 무섭거나 하나도 슬프지 않습니다. 떳떳한 애미가 되어 기쁜 마음으로 아들을 보러 갑니다.”
얼핏 보면 역사는 진보와 퇴보를 거듭하며 특정세력에 심판을 내리지도 않고 일관성도 없어 보인다. 그러나 조금만 유심히 보면 섞은 물을 정화하는 강력한 의지와 힘을 확인 할 수 있다. 그리고 그 흐름은 그 어떤 독재자도 부호도 막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