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첫, 장학생 (1)
유난히 말이 없고 조용한 아이.
수업을 할 때에도 두각을 드러내는 법이 없는 아이.
하얀 얼굴과 다르게 도드라진 뿔테가 더 돋보이던 아이.
그래서 선생님들께는 언제나 "그런 아이가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드는 아이.
그 아이,
수정이가 나는,
눈에 참 많이 밟혔다.
지금은 아이들 앞에서 유려한 말솜씨로 그들을 휘어잡는 나지만, 학창 시절의 나는 그렇질 못했다.
누군가에게 나를 드러내는 것도 누군가가 나를 알아보는 것도 두려워 늘 움츠리고 살았다. 남들 앞에서 발표를 하는 것은 그야말로 죽을 것 같은 두려움과 맞먹는 것이어서 아무리 주변에서 '네가 한 번 발표해보라'라고 해도 선뜻 나서질 않았다. 그런 건 타고난 재능이 있는 아이들만 하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저, 조용하게 그림처럼, 아니 배경처럼 있다가 가고 싶은 아이. 쉬는 시간엔 책을 읽고 점심시간엔 친한 친구들과 함께 도시락을 먹으며 마음의 안정을 느끼는 아이. 그런 아이였다. 나는.
그래서인지 나는, 교사가 된 이후로
그 옛날의 내 모습이 아른 거리는 아이들에게 유난히 신경이 많이 쓰였다. 밝고 활발하고 언제나 사람들 앞에서 주목받는 아이들보다도 어쩐지 소극적이고 위축되어 있으며 자신의 목소리를 잘 내지 않는 아이들. 그런 아이들에게 시선이 갔다. 그네들의 이야기를 듣고 싶어서, 혹시나 마음속에 차마 누구에게도 풀어내지 못한 응어리 같은 것들이 있지는 않을까 싶어서 편지를 써서 주기도 하고 쉬는 시간에 혹은 점심시간에 찾아가 슬며시 말을 걸어보곤 했다. 친구가 될 수는 없는 나이 차이였지만 적어도 친구 같은 선생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각에서였다.
공부를 압도적으로 잘하는 것도 아니고 성격이 엄청 쾌활한 것도 아닌 수정에게 유난히 마음이 갔던 것은,
그 아이가 어찌하지 못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아이를 마음껏 흔들어 버릴 수 있는
그 아이의 상황이 마음에 걸렸기 때문이다.
2012년. 내가 근무하던 지역의 교육청에선 아직 무상급식이 보편화되지 않았다. 그래서 담임교사는 반 별로 가정 형편에 따라 급식비를 지원받을 수 있는 아이들을 추려 급식 담당 선생님께 신청을 해야 했다. 이게 말은 쉬운데 실제로 '가정 형편'을 입증한다는 게 참 난감한 일이었다. 특히 소득 수준 %에 따라서 지원을 받을 수 있는지 없는지 나뉘는데 애매하게 소득이 높아 지원이 어려운 아이들은 담임교사가 따로 추천서를 써 주어야만 신청이 가능했다.
수정이는 바로 그 애매한 지점에 있던 아이였다. 가정 형편이 여유롭지는 않은데 소득 수준이 아예 낮은 것은 아니라서 기본적인 서류로는 지원을 받을 수 없는. 그래서 담임인 내가 직접 아이의 사정을 확인하여 추천서를 써 주어야 하는.
글을 쓰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다만, 아직 삼십 대도 되지 않은, 선생이 된 지 이제 겨우 두 달 밖에 되지 않은 내가 두 아이를 10년 넘게 키우며 살림과 육아와 일을 병행하고 있을 수정이의 어머니와 통화하는 것이 너무나 어려웠다. 가정 형편을 전화로 물어본다는 게 얼마나 무례할 수 있는 일인지. 한 번도 뵌 적 없는 어머니에게 무작정
"수정이 급식비 지원을 해주려고 하니, 얼마나 가정 형편이 어려운 지 말 좀 해주세요."
라고 어떻게 말하겠는가. 지금에야 연차가 쌓여서 매끄럽게 말을 할 수 있지만 그 당시의 나는 그 말 한마디를 떼는 게 너무나 어려웠다. 통화 연결음이 울리는 순간, 두르르르르-두르르르르- 하고 한 번, 두 번, 소리가 귓가에 울리는 순간마다 생각했다.
'제발, 어머니. 받지 마세요. 아니 아니. 받아 주세요. 받지 마세요... 받아 주세요...'
어머니는 수정이와 다르게 쾌활하신 분이었다. 바짝 긴장해서 한 마디 한 마디 어눌하게 말하던 나를 편하게 대해 주시고, 가정 형편에 대해서 굉장히 자세하게 설명해 주셨다. 당시 교무수첩에 빼곡하게 적힌 수정이의 상황은 생각보다 심각했다. 갑작스러운 사업 실패로 인해 불안한 상황. 게다가 수정이 밑으로는 연년생 남동생이 있어 어머니, 아버지가 정말 밤낮으로 일을 해야지만 중학교 2학년, 그리고 중학교 1학년 아이들을 키워낼 수 있는 상황.
감사합니다,라는 말로 전화를 끊고 급하게 적어 내려 간 메모를 보고 한참을 생각했다.
그 말없이 조용한 아이에게, 말하지 않으면 절대 알지 못할 사연이 있었구나.
그러면서도 그 아이는 늘 깨끗한 교복을 입고 차분하게 제 할 일을 하며 쉬는 시간엔 친구들과 그렇게 웃으며 시간을 보냈구나. 내가 본모습은 그저 그 아이의 일부분일 뿐이구나. 녀석은 나름대로 무척 애쓰고 있구나.
그 옛날. 고등학교 2학년 때의 나처럼.
고등학교 2학년. 고1의 미숙함은 지워지고 고3의 성숙함은 아직 미치지 못한, 애매하면서도 가장 반짝반짝 빛이 날 그 열여덟의 시절이 나에겐 가장 지옥 같은 순간이었다.
97년도에 찾아온 IMF는 서서히 우리 집을 잠식해 나갔다. 자영업을 하던 아빠의 가게는 조금씩, 그러나 아주 확실하게 어려워져 갔다. 세 살 터울의 언니는 대학을 휴학하고 일을 시작했고, 아빠는 20년 넘게 운영하던 가게 문을 닫고 사장이 아닌 직원이 되었고 한평생 집에서 살림만 하던 우리 엄마는 내가 고2가 되던 해 겨울부터 일을 나가기 시작했다.
33평의 아파트에 살던 나는 하루아침에 산 등성이에 있는 방 두 칸짜리 반지하 집에서 6개월, 그러다가 다시 옥탑방으로 옮겨 살게 됐다. 사는 집이 달라지면서부터는 드라마에서 볼 법한 클리셰 같은 일들이 연이어 생겨났다. 반지하에 살 때, 낮에 집에서 혼자 잠을 자던 언니 곁으로 하수구에서 올라온 생쥐가 소변을 보고 지나간 적도 있었고, 옥탑에 살 때는 빚쟁이가 찾아와 한참을 문을 두드리며 "안에 있는 거 다 아니까 얼른 나오라."라고 소리친 적도 있었다. 그러나 그 무엇보다도 힘들었던 것은 새벽녘에 들리는 부부싸움 소리였다.
반지하에 살 때의 일이다. 새벽 두 시쯤 되면 매일 같이 앞집인지 뒷집인지 옆집인지 모를 곳에서 싸움 소리가 들려왔다. 네가 잘났네, 내가 잘났네, 그러니까 그건 네가 잘못한 거지, 하는 류의 싸움 소리는 감수성이 예민한 나의 마음을 후벼놓기에 충분했다. 돈이 없으면 마음이 피폐해진다는 것, 여유 없는 마음에선 볼멘소리가 훨씬 쉽게, 자주 튀어나오고 그 말은 상대를 깊이 찔러 피를 꼭 내고야 만다는 것을 그때에 많이 배웠다.
마음속에 한 겹, 두 겹 어두움이 드리울 때마다 일부러 더 밝게 웃고 과장되게 행동했다. 아무렇지 않은 척, 행복한 척, 그리고 너희들보다 내가 더 단단한 사람이라는 척을 많이 했다. 갑자기 어려워진 형편을 티 내기도 싫었고 들키기도 싫었다. 가뜩이나 좁은 동네에서 그 가게 집 딸이 나라는 것을 다 아는 상황에서, 저기 저 멀리 평수 넓은 아파트에 살던 애가 나라는 것을 다 아는 상황에서 이제는 내가 방 두 개 딸리 옥탑에 산다는 것을 아이들이 알게 되는 것이,
정말 끔찍하게도 싫었다.
아침 7시가 되면 집을 나섰다. 아무도 학교에 가지 않는 시간에 학교로 발걸음을 옮기면서 엄마가 걱정할까 봐 꼭 덧붙였다. 공부해야지, 이제 고3이잖아.
그 시절을 어떻게 버텼는지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마도 그때의 나는 내 인생의 가장 어두운 시절을 보낸 것 같다.
가장 욕을 많이 한 시기이며, 가장 사람들을 싫어한 시기이며, 가장 친한 친구에게 매일 같이 난 어디론가 떠날 거야,라고 말하며 현실에서 반쯤은 떨어져 있던 시기였다.
매일 같이 죽음을 꿈꿨고
매일 같이 독서실에서 울었고
매일 같이 오지 않을 스무 살을 그리워했다.
그리고 집에 가면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학교에서는 부러 밝은 척하며 보냈다.
그래서일까. 수정이의 사연이 너무나 마음에 남았다. 나보다 더 어린 나이. 어쩌면 나보다 더 힘들 수 있는 상황에 있는 수정이에게 도움이 되고 싶었다. 오랜 기억 속의 내 모습을 많이 떠올리게 한, 그 아이를 위해 담임교사로서 무언가를 해보고 싶었다. 교무수첩을 덮고 컴퓨터를 켰다.
폭풍처럼 휘몰아치는 아주 어린 시절 내 이야기는 잠시 덮어두고 내가 기억하는, 내가 들은 내용을 담백하게 적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내가 그 아이에게 힘이 되어줄 수 있는 것이 있다면 최선을 다해주고 싶었다.
며칠 후,
급식비 지원자 명단에서
2학년 4반, 수정이의 이름을 볼 수 있었다.
'우리 수정이를 신경 써 주셔서 감사하다.'는 어머니의 메시지를 보고
가만히 생각했다.
그건 어쩌면 열여덟의 나를 위한 일이었을지도 모르겠다.
* 10년이 넘은 기억이라 일부 사실과 다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