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해 여름 우리는

나의 첫 장학생 (2)

by 안녕

"쌤이 너 장학금 한 번 신청해 보려고 하거든? 어때?"


안경 너머의 눈빛이 흔들렸다.


'장학금? 어떻게? 내가 할 수 있을까?'


하는 온갖가지 생각이 머릿속을 뒤 흔드는 듯했다. 나는 결심이 섰는데, 녀석은 아직인 것 같았다. 이유를 설명해 주어야 했다.


"이게 대기업에서 하는 학생 장학금 지원 제도인데 가정 형편이 조금 어려운 친구들 중에서 학업에 관심이 많은 친구들을 대상으로 추천해서 장학생을 뽑는 것인가 봐. 쌤이 봤을 때는 수정이가 딱인데, 어때?"


'가정 형편이 어려운'이라는 말보다는 '학업에 관심이 많은'이라는 말에 조금 더 힘을 주어 말했다. 한창 감수성이 예민할 시기에 나의 말 한마디에 작은 상처라도 받지 않기를 원했다. 마침 장학 재단에서 요구하는 장학 지원 시스템은 선생님과 학생이 멘토-멘티처럼 관계를 맺으며 지도를 해주는 것이었다. 멘토 선생님의 통장으로 돈이 들어오면, 그 돈으로 학생의 교재비, 학원비 등에 사용할 수 있도록 지원하고, 선생님과 학생이 수시로 상담을 하며 아이의 성장을 관찰하는 것이 핵심이었다. 만약, 그 해 처음 만난 아이였다면, 그래서 파악이 아직은 덜 된 아이였다면 조금 힘들었겠지만 이 경우는 그렇지 않았다. 이미 충분히, 그 아이의 상황을, 성향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장학생으로 지원해주고 싶었던 아이는, 바로.


맞다. 수정이. 나의 초임 교사 시절, 어려운 형편에도 열심히 학교 생활하던 아이.

나의 아주 어린 시절이 떠오르게 했던 아이.




아이가 결심을 하자마자 일은 일사천리로 진행되었다.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어 각종 서류를 요청했다. (어머니는 너무 고마워하시며 수정이 편에 필요한 서류는 다 보내드리겠다며, 언제든 연락을 달라고 하시며 무척 협조적이셨다.) 수정이는, 자기소개서를 쓰는데 조금 어려움을 느끼긴 했지만 나의 지도를 잘 따라와 주었다. 생전 처음 해보는 글쓰기가 두려웠을 텐데 그래도 끝까지 마무리해주었다.


교사 추천서는 솔직히 말하면, 전혀 어렵지 않았다. 목적이 분명한 글이었다. 추천하고자 하는 아이의 상황을 구체적이면서도 담백하게 표현하고 앞으로 멘토링 과정에서 어떻게 지원을 할 것인지를 솔직하게 썼다. 2년 연속을 담임을 하게 됐다는 점은 특히 강조했다. 멘토-멘티 활동에서 단단히 형성된 래포는 막강한 무기라고 생각했다.


필요한 모든 것을 준비하고, 저장 버튼을 눌러 서류를 제출했다. 장학재단 사이트에서 '접수 완료'라는 글을 보자마자 괜히 뭉클했다. 곁에 있던 수정이는 크게 내색하진 않았지만 마음에 무언가 울림이 있었으리라. 다만, 그것을 입 밖으로 내지 못하는 것뿐이리라.


이제 기다리기만 하면 됐다.

대략 한 달 정도 걸리는 그 기간을. 될까, 안 될까, 될까, 안 될까,를 점치며.




합격자 발표일은 어떻게 지나갔는지 모르겠다. 발표 시간이 다 되어 접속한 홈페이지에서, 덜덜덜 떨리는 손으로 접수번호를 입력하니, 하얀 화면에 수정이의 이름이 떴다. 00 장학재단의 장학생으로 선정되셨습니다,라는 그 짧고도 굵은 한 문장은 나를, 의자에서 벌떡 일어나게 만들었다.


"합격했어요! 어머니! 수정이 장학생 됐어요!"


누구보다 흥분해서 전화를 드리니, 어머니는 연신 감사하다는 인사를 보내오셨다. 선생님, 감사해요, 정말 감사해요....


수줍어할 수정이에겐 슬쩍 가서 말을 건넸다. 너, 이제 장학생이야,라고 말 한 그 순간 수정이의 표정은 솔직히 기억이 나지 않는다, 하지만 그때 그 분위기, 공기는 아직도 마음에 남아있다. 나는 누구보다도 기뻤다. 이제, 적어도 수정이는 '돈' 때문에 공부를 못하는 일은 없을 테니까. 엄마, 아빠 걱정할까 봐 다니고 싶은 학원의 이름을 목구멍 뒤로 삼키는 일은, 분명 없을 테니 말이다.




그래서일까. 수정이는 장학생이 된 이후에 더 많이 밝아졌다. 웃는 일이 잦았고, 자신감이 붙은 듯했다. 물론 나서서 무언가를 이끌어가는 면은 없었지만 분위기가 많이 바뀌었다. 그런 녀석을 볼 때면 괜스레 흐뭇했다. 담임 선생님이면서 멘토였던 나는 수정이와 방과 후에 만나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곤 했다. 사실, 말 수가 적은 수정이는 대부분 내 질문에 대답을 하는 방식이었지만 그것도 나쁘진 않았다.


또, 당시 멘토링 일지를 만들어서 그날그날 수정이가 공부했던 내용을 확인하기도 했다. 장학재단의 장학생으로서 자신감을 갖되 스스로 해야 할 일에 대한 책임감을 느끼며 성실하게 행동하길 바랐기 때문이었다. 지금 생각해 보면 분량도 많고 기록을 하는 게 쉽지 않았을 텐데 툴툴거리지 않고 곧잘 따라와 주었다. 학원비, 교재비가 필요하다고 하면 바로 수정이 통장으로 돈을 넣어 주었다. 그러면 수정이는 문제집을 사서 풀고, 또 풀었다.


성적이 기하급수적으로 오르지 않아 속상해했던 것이 기억이 난다. 나 역시 노력한 만큼 결과가 따라주지 않아 마음이 쓰리기도 했다. 하지만 무언가를 얻기 위해 노력한 과정은 언제나 남아있다고 믿으며 수정이를 응원했다.




여름 방학을 앞두고 수정이와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해보고 싶었다. 가능하면 학교, 그러니까 수정이가 살고 있는 동네를 벗어난 곳에서 새로운 체험을 해보고 싶었다. 마침, 당시 지역 교육청 내 국어 교사 모임에서 '윤동주 문학관'을 탐방하는 사제동행 문학 기행 코스 신청자를 받는다는 문서를 발견했다. 윤동주 시인을 기리는 문학관이 서울에 있는 데다, 사제동행이라 선생님 한 명에 제자 한 명씩 짝을 지어 체험하는 활동이라니! 신청하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한 가지 걸리는 것은 토요일 아침 일찍 모여야 한다는 것인데 그 쯤은 그 당시 나에겐 껌이었다. (당시 난 일에 미친 워커홀릭.)


문학 기행 코스는 무척 알찼다.


광화문까지 지하철을 타고 가서, 또 버스를 갈아타고 도착한 문학관은 무척이나 운치 있었다.

높은 언덕에 자리 잡은 문학관의 곳곳을 아이와 함께, 그리고 다른 선생님과 다니면서 학교에선 느끼지 못한 새로운 감정들을 느꼈다. 특히 문학관에서 가장 좋았던 '시인의 언덕'에서는 윤동주 시비를 등지로 바라본 서울의 정경이 오래도록 마음에 남았다.


어쩌면 선생님이란 존재는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아이와 함께 성장하는 존재가 아닐까. 하는 오글거리는 생각도 하면서.


늦은 오후, 모든 행사가 끝나고 선생님들과 함께 대학로에 있던 던킨 도너츠에 갔던 것이 생각이 난다. 낯을 많이 가리는 나와 수정이는 그 자리가 어쩐지 조금은 불편해 일찍 일어났던 것 같다. 대학로에서 지하철을 함께 타고 이동하면서 어떤 이야기를 했는지는 기억이 나질 않는다. 아마 나는 수정이에게 오늘 하루가 어떠했느냐고 물었을 것이고, 수정이는 내게 수줍어하며 무언가 말을 했을 것이다. 그러면 나는 그 대답을 듣고 말없이 웃었을 것이고.


덜커덩 덜커덩, 지하철이 움직이는 소리가 우리 주변을 가득 메우기 시작했다. 수십 개의 역을 지나칠 때마다 주변 사람들은 내렸다가 탔다가를 반복했다. 어느새 등줄기에 훅훅 쏟아지던 땀방울이 식어버릴 정도의 시간이 흐르자 수정이는 내게 공손하게 인사를 하며 아스라이 사라졌다.


나는 다시 지하철을 타고 내 작고 작은 자취방을 향해 가며 생각했다.


선생님 되길 잘했다고.

어쩌면 내가 선생님으로서 할 수 있는 일이

생각보다 많겠다고.




그 해 여름 우리의 추억은 성큼 다가온 가을에 잊히고, 겨울이 지나 졸업할 때가 되었다. 딱 10년 전인 2014년. 수정이는 어엿한 고1이 되어 졸업장을 받고 학교를 떠났다. 으레 그렇듯 졸업하면 꼭 찾아뵐게요,라고 말하던 아이들이 한 해, 두 해가 지나며 발걸음이 뜸해지는 것처럼 수정이는 졸업과 동시에 어쩐지 연락이 잘 닿지 않았다. 먼저 연락을 할까 싶다가도 그때 그때 담임하던 아이들을 돌보느라 늘 여유가 없어 지나치고 말았다. 그렇게 10년이 흘렀다.


지금도 수정이를 생각하면 마음 한편이 아련하다.

잘 지내고 있을까.

지금은 무슨 일을 하고 있을까.

이제 스물 일곱 즈음되었을 녀석은 어떤 얼굴로, 세상을 살아가고 있을까.

아직도 수줍은 얼굴로 조용조용하게 웃고 있으려나.


세상살이에 지쳐 힘들 때 문득 나를 기억하고 있을까.


2013년. 그 더웠던 여름, 우리 함께 종로구 누상동을 거닐며 시시콜콜하게 나누었던 이야기를.

그러니까. 나는 아직도 잊지 못하는,


그 해 여름을.

그 해 우리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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