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지의 세계에 대한 두려움은 날려 버렷!
이상한 편견이 있었다.
먼저, 남자아이들은 국어라는 과목을 안 좋아할 것이라는 편견.
그다음, 남자아이들은 편지로 마음을 전달하는 것을 싫어할 것이라는 편견.
마지막으로, 남자아이들은 어떤 말을 해도 상처를 받지 않을 것이라는, 정말 말도 안 되는 편견.
여자중학교를 졸업해서일까. 아니면 그냥 원래 성향이 그런 것일까.
아주 어릴 적부터 나는 동성 친구들과 어울리는 것이 훨씬 편했다. 초등학교 저학년까지야 남자아이들, 여자 아이들 할 것 없이 놀았지만 나이가 점점 들면서는 여자 아이들과 함께 있는 것이 마음이 편했다. 물론 그들만의 갈등, 다툼, 시기, 질투, 따돌림, 돌려 괴롭히기, 은연중에 사람 비참하게 만들기 같은 것들은 너무나 피곤했지만, 태생이 타인의 감정을 기민하게 파악하는 것을 타고난 나로서는 너무나 힘든 관계도 많았지만, 그래도 여자 아이들과 있으면 본능적인 편안함을 느꼈다.
반대로 남자아이들과 있으면 어딘지 모르게 어색했다. 어떤 말을 해야 할지 몰라 오랫동안 침묵을 하거나, 오히려 더 과장된 말과 행동을 해서 잘 어울려보려고 억지로 노력했다. 아니면 아무 이유 없이 그들을 싫어했다. 특히 고등학교 때 그런 비뚤어진 마음이 가득한 상태로 남자아이들을 대했다. 돌이켜 보면, 나의 날 선 말투와 표정에 상처를 많이 받았을 것 같아 미안하다.
'임용고시 합격' 후에 가장 먼저 기도했던 것이 바로 '남중, 남고에 발령받지 않는 것'이었다. '여중, 여고'에 발령받으면야 최고로 좋겠지만 그게 아니라면 제발 남녀공학에라도 저를 발령 내주세요,를 수십 번 되뇌었다. 남중, 남고에서 국어 교사인, 갓 발령받은 초임교사인, 게다가 아주 어린 시절부터 남자아이들과 어울리는 방법을 제대로 배우지 못한 내가 설 자리는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무엇보다 그들이 무섭고 두려웠다. 사실 그 마음이 훨씬 컸다.
간절한 기도는 '남녀공학 중학교'로 되돌아왔다. 또, 첫 담임이 여학생 반 담임이었으니 그 또한 다행이었다. (당시 나의 첫 학교는 남녀공학임에도 분반을 하여 남자반, 여자반으로 나누어 학급을 운영했다.) 여학생들은 역시나 예상대로 나와 합이 잘 맞았으며 국어를 대체적으로 좋아해 주었다. 33명의 아이들 중 5명 정도를 제외하고 나머지 아이들은 열심히 따라와 주었다. 글쓰기, 그림 그리기, 발표하기 등의 다양한 활동에 적극적으로 반응해 주는 아이들에게 힘입어 이 수업을 남학생 반에서 그대로 진행하면,
그렇게 힘들 수가 없었다.
그 당시 내가 만났던, 내가 가르쳤던 남자반 아이들은 대체적으로 국어보다는 체육을 좋아했으며, 글쓰기보다는 농구공을 손가락으로 돌리는 것을 더 좋아했다. 연필은 대부분 부러져 있었고, 필기구가 아무것도 없거나 심지어 교과서까지 분실한 아이들도 많았다.
선생님과 상담하자, 고 교무실로 불러 무슨 문제가 있느냐, 고 물으면
아무 문제없는데요?
고민 없는데요?
하며 퉁명스럽게 이야기하는 모습에 상처도 많이 받았다.
그런 아이들에게 글을 읽히고, 글을 쓰게 하고, 발표를 하게 하는 것이 겁이 났다. 한 번은 욕심을 내어 그림을 그리라고 한 적이 있다. 수업 중에 낄낄 거려 가 보니 우스꽝스러운 졸라맨으로 그리고 서로 놀려대는 모습에 실망도 많이 했다. 어쨌거나 나에게 진심인 국어를 어쩐지 우습게만 여기는 것 같은 아이들을 보면서 역시, 남자애들은 국어를 싫어해,라는 말도 안 되는 결론을 내곤 했다.
편견에 가득 쌓인 결론은 수업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부끄럽게도 난, 남자아이들과의 수업에서는 기대치를 내려놓고 설렁설렁 수업한 적이 종종 있다. 거칠게 반항할 것 같기도 하고, 원래 국어 싫어하니까,라는 핑계가 나의 단단한, 심리적 방어기제였던 것 같다.
그런 나를 일깨워준 남학생들이 있다.
나를 가둔 그 어리석고도 바보 같은 편견을 뛰어넘어 '인간'적으로 감동을 주며 내 생각을 바꾸어 준 남학생들. 이제 성인이 되어 아마 군대에 갔을 녀석 하나, 지금 고등학교 2학년이 되어 열심히 미래를 위해 준비할 녀석 하나, 그리고 곧 중2가 되어 학교에서 자주 볼 녀석 하나.
이번 화는
나를 변화시킨 남학생 세 명에 관한 이야기다.
어쩌면 아이들을 바라보는 관점 자체를 새롭게 만들어준 세 녀석과 나 사이의 이야기를 하나씩 공개해 볼까 한다.
그 첫 번째 시작은
아주 까마득한 2015년.
그러니까
2000년에 태어나 2015년에 중학교 3학년이었던 윤수와의 이야기다.
* 윤수와의 이야기는 내일(2월 3일) 공개됩니다. 기대해 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