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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경리 Jan 07. 2023

0. 나의 100일간의 명상 일기 프롤로그

방 청소는 하면서 마음 청소는 왜 하지 않았을까

방 청소는 하면서 마음 청소는 왜 하지 않았을까, 이토록 먼지가 쌓여 둔탁하고 힘든 걸 왜 몰랐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파드마 아사나(연꽃 자세)로 명상하는 자화상

수년 전에 직장을 다니며 망가진 몸을 살리기 위해 요가를 시작한 것처럼, 시들어가는 마음을 살리기 위해 명상을 시작했습니다. 다음은 그 효과에 대해 일기에서 발췌한 것입니다.


"명상을 한다고 해서 화가 나지 않거나 몸이 아프지 않은 것은 결코 아니다. 사람이기 때문에 화도 나고 아프다. 그런데 전에 비해 그 횟수와 강도가 현저히 줄어들었다.

전에는 한주의 모든 수업을 마치고 마지막 일정 후 주린 배를 안고 혼자 식사를 할 때면 왠지 모르게 화가 치밀었다. (중략) 김밥이 초라하다는 것이 아니고 수업 후에 식당 한 켠에서 그걸 먹는 나의 모습이 그랬다. 일반적인 식사 시간보다는 조금 늦은 시간이어서 과하게 먹기엔 부담스럽고 연이은 수업으로 입맛도 별로 없는 상태에서 그나마 택한 메뉴를 그야말로 '어쩔 수 없다는 듯이' 질겅질겅 먹었다. 천장 환풍기에서 나오는 찬바람이 너무 싫었고 딱히 다른 대안 메뉴가 없다는 것이 불만이었으며 하여간 모든 게 신경을 건드리는 느낌이었다.

그런데 요즘은 다르다. 오늘도 바로 그런 날이었는데, 똑같은 스케줄을 소화했는데도 불구하고 김밥을 먹으면서 그냥 끼니를 때운 게 아닌 제대로 된 식사를 했다. 김밥이 맛있었고, 찬바람은 여전했지만 맛있게 먹느라 별로 신경 쓰이지 않았고 따뜻한 물을 한 모금씩 곁들여 천천히 씹으며 '아, 이번주도 끝났구나' 하며 해방감과 여유를 만끽했다. 맛있게 먹으리라- 감사하리라-하고 다짐한 것도 아닌데 그냥 그렇게 되었다. (중략) 한 방울씩 떨어지는 물이 바위를 깨듯이 이런 작지만 삶의 질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주요한 변화가 조금씩 일어나고 있다." -명상 54일째 일기 중

"... 명상은 확실히 느리지만 명확하게 여기저기 흩어진 불안한 마음을 바로 세울 수 있도록 도움을 주었다. 마치 요가가 느리지만 분명하게 척주 기립근을 세우는데 도움을 준 것처럼." -명상 71일째 일기 중


그러나 이걸 숙제로 여기고 싶진 않았습니다. 그래서 몇 시에 얼마나 할 것인지는 완전히 자유에 맡긴 채 명상을 해보기로 했습니다. 바쁘면 하루 5분이라도, 여의치 않으면 일과 중에 시내의 카페에서, 또는 얼굴에 팩을 붙이고 침대에 앉아 눈을 감았습니다.

'이 좋은 걸 나만 할 수 없다'는 마음으로 '요가의 언어' 연재를 시작했듯이, 이 좋은 명상, 나만 할 수 없습니다. 명상이라고 하면 뭔가 어렵게 느껴져서 해볼 엄두가 나지 않는다는 친구들과 요가 회원분들의 이야기 때문에 더더욱 이 글을 연재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하루 단 5분, 호흡을 보는 것으로 시작합니다. 허리를 펴고 바른 자세로 앉아서 눈을 감고 코 끝에 숨을 보는 겁니다. 아마 처음부터 잘 되진 않을 거예요. 이건 마치 태어나서 수영을 처음 배울 때 물을 먹거나 팔다리가 제대로 움직여지지 않는 것처럼 지극히 당연한 일입니다. 다른 모든 것과 마찬가지로 호흡 명상도 반복과 연습이 필요합니다. 그러다 보면 호흡은 미세해지고 앉은 자리는 가벼우면서도 안정적인 상태가 됩니다. 머릿속은 폰 용량 정리를 마친 것처럼 가뿐해지고 감각이 받아들이는 정보는 뿌연 창을 닦은 듯 한결 명료해집니다. 방 청소는 하면서 마음 청소는 왜 하지 않았을까, 이토록 먼지가 쌓여 둔탁하고 힘든 걸 왜 몰랐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단군신화에서 곰이 동굴에서 쑥과 마늘을 먹고 사람이 되었다는 그 100일 동안 명상을 합니다. 100일이 지나면 무엇이 되어 있을지 궁금합니다.

나의 100일간의 명상 일기, 시작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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