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스위머스
최종 결정권자. 요즘 들어서 이 최종 결정권자라는 것이 너무나 무섭다. 대체 우리 세상은 어쩌다 이런 구조로 만들어졌을까? 최종 결정권자가 전쟁을 하자고 하면 수만 명의 사람들이 죽음의 고통에 빠져야 하고 회사 문을 닫자고 하면 수천 명의 사람들이 직장을 잃어야 하고 또 계엄을 하자고 하면 수많은 국민이 두려움 속에 밤잠을 설쳐야 하냔 말이다. 최종 결정권자가 어떤 일들을 저지를 수 있는지, 그 결정이 얼마나 끔찍할 수 있는지를 우리는 끔찍한 역사를 통해 경험해 왔다. 그럼에도 달라진 것 없이 세상은 똑같은 방식으로 굴러간다. 작디작은 나는 그저 최종결정권자의 아래의 아래의 아래의 아래의 아래의 누군가의 결정과 지시에 따라 살아갈 뿐이다. 옳지 않은 것 같다는 나의 판단 따위는 아무런 소용도 없고, 그러니 그냥 어쩌겠냐 라는 심정으로 산다. 그렇다고 내가 최종 결정권자가 되어 막중한 책임을 지고 싶지도 않고 다른 해결책을 가진 것도 아니다. 그냥 그렇다는 거다. 문제라면 인간이란 동물로 태어났고 인간들끼리 함께 살아야 한다는 원초적인 문제로까지 가고야 만다. 갈 길을 잃었다는 말이기도 하다.
가끔은 현실에서 벗어나기 위해 영화를 본다. 영화 같은 삶을 꿈꾸기 위해 또 혹은 영화 같은 삶이 아님에 감사하기 위해. 스위머스는 영화 같은 삶을 꿈꾸기 위해 본 영화였다. 그럴 줄 알았다. 속 시원하게 물살을 가르며 달리는 수영 선수들의 모습을 보며 기분전환을 하고 싶었다. 그런데 웬걸. 기대와는 많이 달랐다. 영화 같은 삶이 아님에 감사하게 만드는 영화였다. 이렇게까지 힘들고, 감정적으로 피곤하고 싶지는 않았는데 이게 또 재미있다. 거참.
영화는 시리아 내전을 배경으로 한다. 벌써 어둡고 심상찮다. 그것도 모자라 격화된 내전으로 민간인들의 터전까지 위험이 엄습한다. 심지어 주인공의 친구가 폭격으로 죽었다는 소식까지 들려온다. 수영이 문제가 아니라 당장 살기 위해 시리아를 벗어나야 하는 상황이다. 그럼에도 아버지는 두 딸을 피난 보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어디든 위험하다고 생각했고 그럴 바에는 딸들을 곁에 두고, 직접 지키고 싶은 마음이다. 하지만 전쟁의 폭풍 속에 개인이 할 수 있는 일은 많지 않다. 결국 경기가 벌어지는 수영장에까지 폭탄이 떨어지는 일이 벌어지고 아버지는 더 이상 버틸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한다.
그리고 두 딸은 사촌과 함께 독일로 피난을 가기로 한다. 바다를 건너 그리스로 그곳에서 다시 독일로 넘어가야 하는 길고 험한 여정이 시작된 거다. 이쯤 되어서야 분위기를 파악했다. 내가 기대했던 수영경기를 보기는 힘들겠구나. 하지만 오히려 더 흥미로웠다.
침몰해 가는 보트에서 뛰어내려 헤엄쳐 바다를 건너는 그래서 국경을 넘어 그리스로 넘어가는 여정은 손에 땀을 쥐게 한다. 더구나 이게 실화라니 더욱 놀랍다.
애초에 왜 전쟁이란 것이 벌어져서 무고한 시민들이 이런 피해를 겪어야 하는지 답답하기만 하다. 하지만 세상에는 이런 불합리한 일들이 일상일 만큼 많고도 많으니 이해하려는 일은 허무하고 무용한 일이다. 그냥 언제든 일은 벌어지고, 살고 싶다면 알아서 도망쳐야 한다.
한때는 불합리하고 이상한 세상을 욕하며 바로 되기를 간절히 바란 적도 있었다. 하지만 이제는 안다. 결코 그런 세상은 찾아오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나 역시도 이상한 세상의 이상한 일부일 뿐이라는 것을.
그러니 그냥 나 하나라도 잘 살자는 마음이다. 더불어 세상까지 좋은 방향이길 바라기는 한다. 하지만 역시나 하루가 멀다 하고 들려오는 세상의 소식은 점점 더 어둡기만 하다. 어쩌면 영화와 같은 현실이 당장 내일이라도 닥칠지 모른다는 위기감을 느낀다. 서글프게도 그 세상 속에서도 또 악착같이, 누구보다 열심히 살 것 같아 벌써부터 피곤하다.
그렇다고 무작정 열심히만 산다고 꼭 성공하는 것도 아니다. 세상은 이렇게까지 악착같이 살아야 하는 곳이었냔 말이 절로 나올 만큼 가혹하다. 그뿐인가. 왜 우리 삶은, 항상 바라는 것을 쉽게 이루지 못한다. 간절히 바라는 것에는 언제나 역경과 고난이 따르고 마는 걸까? 그냥 바라는 것이 그대로 얻어지면 안 되냔 말이다. 신을 믿지 않지만 신을 원망하지 않을 수 없다. “거 우리 되도록 만나지 맙시다.”
그리고 무엇보다 목숨을 걸고 바다를 건너야 하는 일은 그저 영화 속 현실로 그치길 바라고 또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