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대학에서 신문방송학을 전공했는데 지금 생각해 보니, 글과 말로 나의 주장을 설득력 있게 전개하는 훈련을 전문적으로 받았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거의 모든 전공 시험에 논술 시험이 있었는데, 그것 역시 출제자를 설득하는 과정이었다. 또한 교수님들에게 수업 내용에 대해 이해가 가지 않는 부분이나 납득이 되지 않는 부분을 질문하면 교수님들이 "날 긴장시키는 학생, 날 공부시키는 학생"이라며 칭찬해주시기도 하셨다. 다시 말해, 질문이 장려되는 분위기에서 공부를 했었다. 또한 대학생 때 영어토론 동아리 활동을 약 6개월 정도 한 적 있다. 영어 토론 방식은 매우 역동적이고 공격적이었다. 예를 들어, 발언권을 받은 사람이 말을 하고 있는 와중에도, 상대편이 책상을 주먹으로 두드리며 그 의견에 반대하는 표현을 적극적으로 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렇게 대학 시절 내내 배우며 터득했던 설득 커뮤니케이션은 내 리더십 초반에 악영향을 미쳤다. 한국대학생인재협회 리더 초반 시절, 약 3~4년 차까지도 회의 중에 상대방의 마음을 배려하지 못하고 토론하듯 시시비비를 따져 일부 팀원들의 자존심을 건들기도 했다. 그들 중 어떤 이는 내 뒷담을 하기도 했다. 또 기억나는 일은, 당시 나보다 나이가 많은 남학생이 회의 중에 노골적으로 나를 이겨보고 싶다는 말을 하기도 했다.
당시 나의 어리석음을 반성한다. 회의 중에 주장을 펼칠 때 타인의 마음을 배려하고 최대한 따뜻하게 소통했어야 했는데, 나는 그렇지 못했다. 오히려 사람들의 도전 욕을 불러일으켰다. 똑똑함을 과시하며 무리를 제패하는 것은 리더에게 독이라는 것을, 그런 리더에겐 사람이 따르지 않는다는 것을 처절하게 깨달은 시간이었다.
이러한 경험 끝에, 현재의 나는 기본적으로 회의 분위기를 처음부터 끝까지 유쾌하게 진행하려고 노력한다. 회의하기 전에 소소한 일상도 나누며 재미있는 이야기도 나눈다. 회의에 나온 의견에 대해 리액션하며 격려를 아끼지 않는다. 그런 분위기에서는 어떤 의견이나 피드백도 부드럽게 느껴지기 때문이다.
또한 함께 회의하는 대상자들에 따라서 의견과 피드백을 주는 방식을 달리 한다. 오랜 시간 함께 하며 신뢰와 애정이 충분히 형성된 팀원들과 회의할 때는 편안하고 솔직하게 이야기하는 편이다. (하지만 함께한 지 오래되었어도 예민하거나 방어적인 기질을 갖고 있는 팀원들에게는 괜한 오해를 사지 않기 위해 발언을 조심하는 편이다.) 나와 다소 거리감이 있는 팀원들과 회의하거나 피드백하는 경우, 부정적인 의견을 비춰야 할 때 최대한 부드럽고 완곡하게 표현하려고 노력한다.
나는 이제 회의의 목적이 완전히 바뀌었다. 함께 회의함으로써 문제가 해결되고, 비전이 보였으면 한다. 회의를 통해 소망을 가지게 되고, 의욕이 생기게 해주고 싶다. 좋은 기운을 나눠주고 싶다. 최소한, 나와 함께 회의하고 나서, 상황을 이전보다 더 부정적으로 본다거나 조직에 대한 애정이 사라져 버리는 재앙은 막을 것이다.
똑똑한 리더가 문제 해결에만 집중한다면, 따뜻한 리더는 문제를 함께 해결할 수 있는 관계를 먼저 형성한다. 따뜻함은 상대방을 이해하려는 노력에서 비롯된다. 사람마다 가진 배경, 성격, 그리고 감정을 존중하고, 그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데서 시작된다. 리더로서 내가 이 부분을 간과했을 때, 사람들은 나를 경쟁 상대로만 바라보았다. 그러나 내가 먼저 마음을 열고 상대를 품으려 했을 때, 사람들은 나를 신뢰하고 따르기 시작했다.
똑똑함과 따뜻함은 상호 배타적인 개념은 아니다. 그러나 리더로서 어떤 것을 우선시해야 하는지는 분명하다. 똑똑함은 목표를 달성할 수 있게 하지만, 따뜻함은 그 목표를 함께 이루어갈 사람들을 만들어준다. 나는 이제 똑똑한 리더가 아닌 따뜻한 리더로 기억되고 싶다. 똑똑함이 빛을 낸다면, 따뜻함은 온기를 전한다. 사람들은 빛을 보기 위해 잠시 멈추지만, 온기 속에서 평생을 머물고 싶어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