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부하고 기도하고 운동하고, 장난도 치다
입대 - 제대 - 공장 노동자 - 인도 여행 코스를 끝내고 3학년으로 복학했다. 앞산 밑에 있던 신학교가 대구 시내 한복판으로 옮겨가 있었다. 1912년 성 유스티노 신학교가 있던 바로 그 자리였다. 교수동과 학부동 사이에 옛날 유스티노 신학교 건물이 얌전하게 자리 잡고 있었다. 고색창연한 것이 무척 멋있었다.
시내 한복판이라 외출 날 대백 가기는 좋았다. 걸어 20분만 하면 되었다. 아쉬운 것은 앞산이 멀어졌다는 것이다. 자연히 예전처럼 등산을 자주 가지 못했다. 달라진 것이 또 있었다. 강의실에 ‘여학생’들이 있었다. 수녀님들이었다. 신학 공부를 위해 수녀님들에 한해 입학이 허락되어 같이 공부했다.
수녀님이지만 여자라 학교는 예전과 달리 대학 같은 분위기가 났다. 수녀님들의 꾀꼬리 같은 목소리가 학교 내에 들리는 것도 좋았다. 3학년 반에는 예닐곱 명의 수녀님들이 있었다. 수녀회는 모두 달랐다. 올리베따노 수녀회 수녀님들이 가장 많았던 것 같다.
나는 수녀님들과 잘 어울려 지냈다. 다른 신학생들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신학생들이 영적 교감을 위해 수녀님들과 친하게 지냈다면 나는 장난을 치느라 수녀님들과 물리적으로 가깝게 지냈다. 수녀님들 입장에서는 괴로웠을지도 모르겠다.
신학교는 모든 면에서 3년 전과 비슷했다. 한 가지 달라진 것이 있긴 했다. 공부하고, 기도하고, 운동하던 신학교에서 ‘장난도 좀 치고’가 덧보태 졌다. 1, 2학년 때는 아직 어렸고, 공부하기 바빴다. 그러다 보니 약간의 긴장을 한 채 신학교 생활을 했다. 장난을 치기는 했지만 신학생의 품위에 어긋나지 않을 정도로 쳤다. 복학하고는 달라졌다. 다들 군대도 갔다 왔고, 이런저런 사회생활도 경험했다. 전반적으로 상당히 능글맞아졌다. 신학교 생활에 여유를 갖기 시작한 것이다. 장난? 아주 세게 쳤다.
앞에서 신학교에서도 재미난 일들이 많이 벌어진다며 몇 가지 질문을 던진 적이 있다. 그때 했던 질문에 답을 해 볼까 한다.
서바이벌 게임
여름 방학을 마치고 돌아오니 기숙사에 총이 몇 자루 굴러다녔다. 한창 유행하던 비비탄 총이었다. 기관총 흉내를 낸 것부터 권총까지 몇 자루 되었다. 쉬는 시간이면 여기저기서 사격 연습이 벌어졌다. 사격 대회도 열렸다. 라면상자에 동그라미로 표적을 만들어 컵라면 내기, 많이 했다.
사격 연습을 자꾸 하다 보니 실전을 통해 실력을 확인해 보고 싶었던 신학생들이 있었나 보다. 어느 날 운동을 끝내고 기숙사로 올라와 보니 한 친구가 낮은 포복 자세로 기숙사 복도를 기어가고 있었다. 제대한 지 얼마 안 돼 그런지 자세는 현역급이었다. 그 신학생이 기어들어 간 곳은 연학실이었다. 잠시 뒤 우당탕탕 하는 소리와 함께 총소리가 요란하게 들렸다.
벌컥! 한 친구가 연학실에서 뛰어나왔다. 안경알에 금이 가 있었다. 고통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연신 몸 여기저기를 문질렀다. 두 친구는 운동 시간에 실내에서 서바이벌 게임을 하기로 합의를 본 모양이었다.
비비탄, 맞으면 엄청 아팠다. 그런 총을 마트 장난감 코너에서 팔아도 될까, 걱정스러울 정도였다. 맨살에 맞으면 처음에는 빨갛다가 나중에는 콩알처럼 부풀어 올랐다. 안경알에 맞으면 당연히 깨졌다. 금 간 안경을 쓰고 다니는 신학생들이 야금야금 늘어갔다.
샤워장 소동
신학교가 앞산 밑에 있을 때는 구관 1층에 샤워장이 있었다. 샤워장에는 칸막이가 된 샤워부스가 30개쯤 있었다. 1주일에 두 번 따뜻한 물이 나왔다. 1학년부터 3학년까지 함께 사용했다. 선배들과 후배들이 함께 사용하다 보니 모두들 점잖게 사용했다.
새로 옮긴 신학교에는 학년 기숙사마다 샤워장이 딸려 있었다. 역시 칸막이가 된 샤워부스가 20개 정도 되었다. 같은 학년끼리만 사용하다 보니 샤워장에서 늘 이런저런 소동이 벌어졌다. 머리를 감고 있는데 계속해서 샴푸를 뿌려대는 것이 가장 흔한 장난이었다.
따뜻한 물은 여전히 1주일에 두 번 나왔다. 깔끔 뜨는 친구들 중에는 가끔 찬물에 샤워하기도 했다. 나는 전혀 그런 과가 아니었는데 어느 날 찬물에 샤워를 했다. 모르긴 해도 방귀를 뀌려다 똥을 쌌거나 했을 것이다. 그렇지 않으면 따뜻한 물이 나오는 날에도 샤워를 잘 안 하던 내가 찬물에 샤워를 했을 리 없다. 벌벌 떨면서 샤워를 하고 있는데 누군가 샤워장 안으로 들어오더니 물었다.
“따신 물 나와여--?”
목소리를 들어보니 순진하기로 소문난 안동교구 범생이 신학생이었다. 장난기가 발동했다.
“응, 잘 나온다.”
“오늘 따신 물 나오는 날 아니잖아여--?”
안동교구 신학생들 중에서 상주, 문경 이런 곳에서 온 ‘촌놈’들은 말 끝에 ‘여’자를 길게 내뺐다.
“그러게. 보일러가 온수가 잘 나오는 쪽으로 고장 났나 봐. 잘 나온다. 아이쿠 뜨거바라!”
안동교구 범생이는 후다닥 샤워장을 나가는 것 같았다. 준비를 해 와서 샤워를 할 모양이었다. 잠시 뒤 다시 돌아온 범생이가 샤워부스 안으로 들어가는 소리가 들렸다. 물 트는 소리가 났다.
“이크, 차바라. 따신 물 안 나오자나여--.”
“좀 기다리 바라. 나올끼다.”
범생이는 물을 틀어 놓고 기다리는 모양이었다. 제법 기다렸는데도 따뜻한 물이 안 나오자 다시 물었다.
“여긴 안 나와여--”
“맞나? 여긴 잘 나온다. 좀 더 기다리바라.”
그래도 따뜻한 물이 안 나오자 범생이가 또 투덜거리며 말했다.
“따신 물 나오는 거 맞아여---?”
“이상하네, 요는 잘 나오는데. 오늘 따신 물 나오는 날이 아니라 요만 나오나?”
“그런 게 어딨어여--?”
“그러게 말이다. 내 옆 칸으로 오바라. 여긴 잘 나온다. 옆 칸은 가까워 나올지 아나?”
“그럴까...”
범생이가 주섬주섬 옷가지를 챙겨 바로 옆 칸으로 오는 소리가 들렸다. 다시 물소리가 났다.
“이크, 차바라.’
기다려도 계속 찬물만 나오자 범생이가 또 구시렁거렸다.
“왜 안 나오지? 이상하네. 거긴 진짜 나와여--?”
“그래, 잘 나온다. 손 조바라.”
내 말에 범생이가 커튼 사이로 손바닥을 쑥 들이밀었다. 나는 녀석의 손바닥에 오줌을 시원하게 싸 줬다.
“어! 진짜네, 거긴 따신 물 나오네. 근데 여긴 왜 안 나오지?”
“쫌 만 더 기다리 바라.”
잠시 뒤 나는 옷을 챙겨 입고 샤워장을 나갔다. 안동교구 범생이는 여전히 따듯한 물을 기다리고 있었다. 발가벗고 벌벌 떨면서. 어째 감기나 걸리지 않았나 몰라.
주교님의 털
어느 날 밤이다. 여느 때처럼 모두들 연학실에서 공부를 하고 있었다. 절대 침묵 가운데 숨소리와 책장 넘기는 소리만 났다. 그때 연학실 앞문이 스르르 열렸다. 밤에는 공부하는 데 방해가 된다 해서 앞문은 잘 사용하지 않았다. 드나들 일이 있으면 뒷문으로 살짝 드나들었다. 앞문이 스르르 열렸으니 모두들 고개를 들어 째려볼 준비를 했다.
‘어떤 예의 없는 놈이’
나도 눈을 치켜뜨고 꼬나보고 있었다. 헉! 주교님이었다. 이 늦은 시간에 주교님이 웬일로! 얼른 고개를 숙이고 공부하는 척했다. 잠시 뒤 눈을 치켜뜨고 슬쩍 훔쳐봤다. 정말 주교님이었다. 검은 수단에 주교를 상징하는 빨간 허리띠를 두르고 있었다. 머리에는 빨간 빵떡모자도 쓰고 있었다.
주교님은 한 학생에게 다가가더니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를 했다. 그 학생은 두 손을 얌전히 모으고 주교님의 기도를 정성스럽게 받았다. 주교님은 신학생의 어깨를 툭툭 두드려 주고는 내가 있는 뒤쪽으로 천천히 걸어왔다. 가슴이 두근두근했다. 내게도 머리에 손을 얹고 기도 해 주시려나. 우아, 너무 가슴이 떨려 질끈 눈을 감았다.
아무런 변화가 느껴지지 않았다. 눈을 떴다. 이런, 그냥 지나쳐 가셨다. 눈도장 찍을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는데 너무 아쉬웠다. 주교님은 연학실 뒤쪽에 잠시 서 있는 듯했다. 공부하고 있는 신학생들의 뒤통수를 대견한 눈으로 바라보고 있는 모양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고개를 돌려 보고 싶었다. 주교님과 눈이 마주칠까 차마 그럴 수 없었다. 그렇게 되기라도 하면 다른 신학생들은 아무런 동요 없이 열심히 공부하는데 나는 얍삽한 기회주의자가 되고 말 것이었다. 그럴 수는 없었다.
잠시 뒤, 뒷문 열리는 소리가 났다. 아, 그렇게 주교님은 떠나고 말았다. 연학실 안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다시 절대 침묵 속으로 빠졌다. 그제야 궁금한 생각이 들었다.
‘근데 어느 교구 주교님이지?’
우리가 자주 만나는 주교님은 대구 교구 주교님이었다. 바로 옆에 대구 교구청이 있었으니까. 신학교 이사장이기도 해서 학교에 큰 행사가 있을 때면 가끔 오셨다.
아무리 생각해도 대구 주교님은 아니었다. 대구 주교님은 키가 9척 장신에 덩치도 좋으셨다. 방금 본 주교님은 키가 작았다. 마산 교구 주교님이 오셨나? 마산 주교님이 이 밤에? 마산에서? 왜? 날 보러? 아닌 것 같았다. 안동교구 주교님인가? 안동 주교님은 머리가 백발이었다. 방금 본 주교님은 머리가 까맸다. 상당히 젊은 주교님이었다. 누구지? 전국에 주교님이 몇 분 되지 않을 때라 대부분 얼굴을 알고 있었다. 딱히 떠오르는 주교님이 없었다.
한참 ‘짱구’를 굴리고 있는데 다시 앞문이 스르르 열렸다. 얼른 고개를 숙이고 공부하는 척했다. 눈을 치켜뜨고 살짝 보니 주교님이었다. 아직 볼 일이 남아 있는 모양이었다. 용기를 내어 주교님 얼굴 쪽으로 시선을 옮겼다. 눈까지는 못 옮기고 입 주변까지만 옮겼다. 입 모양이 독특했다. 어라? 우리나라 주교님 중에 저런 오리주둥이 입을 한 분이 있었나? 아무리 생각해도 떠오르지 않았다. 동기 신학생 중에는 오리주둥이 입을 한 녀석이 있었다.
그때 오리주둥이 주교님이 성큼 걸어오시더니 내 앞에 와서 섰다. 주교님은 내 머리에 손을 얹었다. 순식간에 머리가 뜨거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역시 주교님의 ‘영빨’은 달랐다. 주교님은 부드러운 목소리로 “형제님, 우리 같이 기도합시다.”하더니 잠시 침묵했다.
나는 앉아 있고 주교님은 서 있었다. 눈이 마주칠 위험은 없었다. 살짝 눈을 떴다. 바로 눈앞에 주교님 배가 보였다. 약간 비만이었다. 가만 생각해보니 그렇게 가까운 거리에서 주교님의 배를 본 것은 처음이었다. 주교를 상징하는 빨간 허리띠가 인상적이었다. 보풀이 날리는 것이 엄청 오래된 것 같았다. 여기저기 올이 풀려 말려 올라간 곳도 많았다. 멀리서 볼 때와는 전혀 다른 디테일이었다. ‘아흥, 도대체 얼마나 오래된 것일까?’ 정말 소박한 주교님이었다. 이런 낡은 허리띠를 두르고 다니시다니. 대한민국에 이런 주교님이 있다는 사실이 너무 감동적이었다.
웅얼거리며 혼잣말로 기도를 하던 주교님이 머리에 입이라도 맞춰 줄 모양인지 허리를 숙였다. 내 심장 뛰는 소리가 주교님 귀에 들리지나 않을까 걱정스러웠다. 역사적인 순간을 놓치지 않기 위해 더욱 눈을 부릅떴다. 주교님의 빨간 허리띠가 눈에 더 들어왔다.
그때였다. 주교님의 빨간 허리띠에서 뭔가 이물질이 포착되었다. 고개를 앞으로 살짝 빼 눈을 가까이 들이댔다. 머리카락이었다. ‘웬 머리카락이지?’ 좀 더 자세히 관찰할 필요가 있었다. 주교님의 입이 점점 나의 정수리 쪽으로 다가오는지 허리가 더 굽어지고 있었다.
자세히 보니 머리카락이 아니었다. 짧고 꼬불꼬불했다. 색도 아주 진했다. 엄마야, 놀라 소리를 지를 뻔했다. 신체 중요 부위의 그 털 같았다. ‘아니 저 털이 왜 저기에?’ 그 털과, 그 털이 자라는 신체 부위와, 주교님이 도저히 매치가 되지 않았다. 나도 모르게 불경스러운 생각까지 스치고 지나갔다. ‘설마 여자의 것은 아니겠지?’ 머릿속은 완전히 뒤죽박죽 엉망진창 난장판이 되고 말았다.
그때였다. 주교님이 끈적끈적한 목소리로 ‘형제님’하면서 정수리에 입을 갖다 댔다. 소름이 확 끼쳤다. 정수리에 닿은 주교님의 입보다 털의 정체가 더 신경 쓰였다. 이제 주교님이고 나발이고 털의 정체부터 밝혀내야겠다는 생각뿐이었다.
눈을 동그랗게 뜨고 허리띠를 관찰했다. 아무래도 주교님의 허리띠가 이상했다. 보면 볼수록 이상했다. 아무리 봐도 빨간 목욕 타월 같았다. ‘주교님이 왜 목욕 타월을 두르시고 이 밤에...’ 하는 순간 책상 위에 뭔가 툭 떨어졌다. 빨간 농구공을 동그랗게 자른 것이었다. 고개를 들어 허공을 봤다. 별명이 도날드였던 오리주둥이 녀석이 얄궂게 웃으며 나를 쳐다보고 있었다. 끼약!
수단을 입고 빨간 목욕 타월을 허리에 두르고, 농구공을 잘라 만든 빵떡모자를 쓰니 영락없는 주교였다. 그 차림으로 오리주둥이 그 녀석이 연학실에 들어와 장난을 친 것이다. 몇몇 신학생들이 그 장난에 장단을 맞춰 진지하게 반응했는데 나는 정신이 어디 팔려있었는지 진짜 주교님이 온 줄 알고 혼자 소설을 썼던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