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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 글 쓰는 거가 너무 좋으네?

시트콤 [오피스 서바이벌] 3탄

by 이빛소금

새벽 3시, 기름기와 키보드 사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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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 3시. 치킨은 차갑게 식었고, 아정은 그걸 데울 기운도 없었다.

정신은 흐릿하고, 뼈만 남은 치킨이 아정의 인생 같았다.

그리고 통장 잔고는 4,270원.


"와… 진짜 기름기마저 나를 비웃는 느낌이다.ㅋㅋ"


아정은 닭다리 하나 집어 들고, 노트북을 켰다.

네이버 블로그 로그인.


제목: [일상] 약 먹고 조퇴한 하루

"오늘 완전 망했다. 조울증 약에 탁센 먹고 갔다가 머리 깨질 것 같아서 조퇴했다. 양석진 대리님한테 아침에 그렇게 투지를 불태운다고 해놓고... 결국조퇴함. 진짜 바보 같아"


타닥타닥타닥타다닥탁탁탁 타다 다다닥.

쓰다가 문득 멈췄다.


"... 어라? 나 글 쓰는 거가 너무 좋으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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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년 전 오늘, 블로그 속 추억소환


네이버 블로그가 알림을 띄웠다.

"7년 전 오늘의 소식이 있어요!"

헐. 바로 클릭.


제목: [취준생 일기] 이불 밖으로 나오지 않는 방법


"오늘 스피치 강사 발표가 있었는데... 나는 이불속에 있었다. 무섭고 두려워서.

은영 언니가 치킨 들고 구출하러 올 때까지."


"... 헐. 내가 이런 글도 썼네?"


아정은 멈추지 않고 예전 글을 스크롤했다.


갑작스러운 깨달음

다시 키보드를 탁탁 탁탁.

"방금 7년 전 일기를 봤는데, 발표 한 번 하는 게 무섭고 두려워 이불속에 24시간 숨어있었다. 은영 언니가 치킨+떡볶이+맥주 들고 구출하러 오기 전까지. 지금은 회의실에서 참이슬 팀장 눈치를 보며 입술을 씹는다. 그때는 이불이 나를 덮었고, 지금은 타인의 말이 나를 덮는다.


"오케이, 진화는 했는데… 방향이 좀."


단지 ‘피할 힘’이 조금씩 생겼을 뿐이다. 7년 만에 이불속 거주민에서 조퇴족으로 승급한 거다. 나름 발전 같기도? ㅋㅋㅋ


하지만 변하지 않은 게 하나 있다. 바로 글을 쓴다는 것.

힘들 때마다, 타닥타닥. 그때도, 지금도.

"어쩌면 이게 내 방식인가 봐. 이불속 대신 글 속에 숨는 거."


"은영 언니...치킨 정말 고마웠어. 지금도 치킨 먹으면 그때 생각이 난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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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상치 못한 메시지

포스팅을 마치고 식은 닭다리 마지막 한 점 베어 물었다.

핸드폰이 울렸다.


보낸 사람: 은영이 언니.


"아정이, 너 지금 혹시 내 생각하고 있었어?

귀가 간지러워서 ㅋㅋ"

"... 헐. 텔레파시?"

"언니 덕분에 살았어요 ㅋㅋ 지금도 치킨 먹으면서 그때 생각하고 있었는데!"

"뭐야 ㅋㅋㅋ

또 치킨 먹어? 너 이 정도면 치킨 중독이다?"

"언니가 치킨으로 나를 구원해 줘서

치킨 = 구원 공식이 생겼어요 ㅋㅋㅋ"

"귀엽긴ㅋㅋ 내일도 치킨 먹어

카톡으로 먹고싶은 치킨 찜해놔 언니가 보내줄게~!"


아정은 방긋 웃었다. 은영이 언니 짱!


"그래, 7년 전에는 이불속에 숨었지만

지금은 치킨과 함께 키보드 앞에 앉아있네."



작지만 큰 울림


문득 블로그 조회수를 확인했다.

조회수: 23 공감♥: 2개 댓글: 1개


익명님: 저도 비슷한 경험 있어요ㅠㅠ 위로가 되네요


"어라? 누군가 봤네?"


23명이라니.

평소보다 4배는 많았다.


"오오 왠열? ㅋㅋㅋ"


아정은 웃으면서도 한편으로는 조금 신경 쓰였다. 혹시 회사 사람이 볼까 봐.

"아니야, 23명이면 뭐... 전국에 아정이가 몇 명인데."

그리고 노트북을 덮으며 중얼거렸다.

"그래도 누군가는 읽어줬구나. 고맙습니다, 익명님."


새벽 4시.
아정은 이불을 끌어당기며,

“내일은 또 어떤 하루가 될까. 양석진 대리님, 저 내일은 진짜 무탈하게 지나가겠지요?”

그렇게 잠이 들었다.


꿈속에선 7년 전, 은영 언니가 맥주를 짠 하자면서 나를 보며 환한 미소로 웃고 있었다.




때로는 과거의 나를 돌아보는 것만으로도 현재의 나를 안아줄 수 있습니다. 단 한 사람이라도, 내 이야기를 읽어주고 공감받았다라는 건 정말 큰 위로예요.



다음화에서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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