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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작 Dec 15. 2020

상처를 안고 아직 꿈을 꾸네

인터뷰 서른넷

2017년 6월 17일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하며 발길 닿는 대로, 꽂히는 대로 살고 싶어요.”


서른넷님은 마흔 중반의 선생님입니다. 특별한 아이들을 가르친데요. 일반 아이들과 다를 게 하나 없는데 소통하기가 조금 힘들다고 했습니다. 오히려 너무 순수하고 선생님 이야기를 잘 따라줘서 사랑스럽다고 했어요. 편견 없는 선생님의 따듯한 시선에 감동받았습니다.


서른넷님에게 공통의 질문 6가지를 드렸습니다. 좋아하는 숫자를 물으니 숫자 8이라고 했어요. 위아래가 동글동글하게 생긴 게, 재미있어 좋데요. 따로 떨어져 굴러갈 수도 있어 다양한 상상이 가능하다고 해요. 상상이 되시나요?

순간 짧은 애니메이션을 본 것 같았어요. 누군가 숫자 8을 쓰자 위아래 동글동글한 원이 생기더니 위에 있던 동글한 녀석이 흔들흔들 몸을 비틀어댑니다. 그러자 아래 있던 동글이는 균형을 맞추기 위해 흔들리고, 그렇게 둥글둥글 서로 엇박자로 흔들리던 녀석들이 작은 돌부리에 걸려 결국은 각각 떨어져 바닥에 굴러가는 모습이 연상됩니다. 서로 엎치락뒤치락 경쟁하듯 굴러가다 비탈길을 만나 힘겹게 오르다가 그대로 미끄러집니다. 거꾸로 굴러가던 동글이들이 다시 뭉쳐 숫자 8이 되는 모습이 그려져요. 분명 남다른 상상력이 있었기에 소통이 어려운 아이들을 가르칠 수 있었으리라 봅니다.

좋아하는 색깔은 노랑이래요. 보기만 해도 귀엽데요. 특히 봄에 피는 개나리도 떠오르고, 난초 꽃도 떠올라 좋데요. 노란색을 보면 꽃을 떠올리는 로맨틱한 선생님이라니. 이런 분이 선생님이라면 매 순간 상상의 세계로 데려갈 것 같습니다.

좋아하는 음식은 빵, 떡이라고 해요. 맛있어서 좋데요.

좋아하는 동물을 고슴도치라고 했어요. 조금 놀랐습니다. 고슴도치를 좋아한다는 분은 처음이었거든요. 그랬더니 실은 고슴도치를 키우신다고 했어요. 그제야 조금 이해가 갔습니다. 처음엔 조금 무서웠데요. 가시도 있고. 그런데 지금은 정말 귀엽데요. 가시 아래 작은 눈, 코, 입이 너무 앙증맞아서 좋데요. 특히 몸을 긁거나, 물을 마실 때 너무 귀엽다고 해요. 하지만 기본적으로 예민한 아이들이라서 목욕할 땐 무척 조심해야 한데요. 물이 닿으면 털을 바짝 세우고 신경질을 부린다는 거죠. 그럴 땐 진정이 될 때까지 조금 기다렸다가 해야 한다고 합니다. 잠깐 이야기를 나눈 것뿐인데, 제가 고슴도치를 목욕시킨 것처럼 긴장감이 돌더라고요.

좋아하는 식물은 선인장이래요. 오래 살아서 좋데요. 꽃은 금방 폈다 지지만 선인장은 꾸준하데요. 날카로운 그 가시가 오히려 우아한 느낌이라고 했어요. 외로워 보이기도 하지만 그건 그들 나름의 삶의 전략이니 인정해 줄 수밖에 없다고 하네요. 날카로운 가시가 우아한 느낌이라니. 서른넷님은 단점을 장점으로 만드는 훌륭한 재주가 있습니다. 그리고 그 단점이 오히려 삶의 방식이니 인정한다는 말씀에서 바다와 같은 포용력을 느꼈습니다. 그런 가치관이 있기에 특별한 가르침이 가능한 것 같습니다.

10년 후엔 어떤 모습일까요?라고 물었더니 딱 세 마디로 정의하셨습니다. 자. 유. 인. 자유롭게 하고 싶은 일 하고, 여행도 발길 닿는 대로 가고, 계획 없이 마음이 꽂히는 대로 살고 싶다고 했어요. 그 순간 모든 게 이해되더라고요. 특별한 아이들을 케어하다 보니 정작 자신은 케어 받지 못했던 건 아닐까. 그래서 지금 당장은 그만둘 순 없지만 언젠가는 자신을 케어하는 삶을 살고 싶은지도 모르겠다고 이해했어요. 서른넷님과의 인터뷰가 묵직하게 와 닿습니다.


서른넷님의 모습이 그려지시나요? 가장 먼저 떠오르는 건 상상력이 남다른 분이었다는 것. 숫자 8로 짧은 애니메이션을 쓸 이야기꾼은 많지 않죠. 두 번째로 흥미로웠던 건 서른넷님이 가시 돋친 것을 좋아한다는 거예요. 고슴도치도 가시가 있고, 선인장도 가시가 있죠. 가시 이야기를 두 번이나 한다는 건 가시가 서른넷님에게 큰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아마도 고슴도치의 가시나 선인장의 가시는 서른넷님이 케어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 같았어요. 가시 때문에 쉽게 다가갈 수 없지만 가까이 다가가면 사랑할 수밖에 없는 귀여움을 가진 아이들. 아이들의 진짜 모습을 알기에 그 일을 할 수 있었겠죠. 정말 존경스러웠어요. 그러다 문뜩 아이들의 진짜 모습을 알아본 건 서른넷님 안에도 아이들과 같은 진짜 모습이 있기에 가능하다는 걸 깨달았습니다. 실제로 내 안에 그런 모습이 없으면 절대 볼 수 없거든요. 하여 날카로운 가시를 자랑처럼 안고 있는 우아한 선인장을 키워드로 글초상화를 써드렸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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