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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홍작 Dec 17. 2020

거북이 날다

인터뷰 서른여섯

2017년 6월 28일


“저는 굉장히 느려요. 그래서 한 번에 되는 게 아니라 뭐든 삼세번은 해야 해요.
대학도 세 번 만에 들어왔어요.”


서른여섯님은 삽 십 대 초반의 유학 준비생입니다. 지금은 마포 도서관에서 알바를 하고 있데요. 정치학을 전공했는데 개인적인 호기심으로 북한 문제에 관심이 많다고 했어요. 사람들을 위한 정치학을 하는 게 최종 목표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을 위한 정치학이라는 말이 생소해 물었더니 정치라는 게 원래 사람들을 위한 것인데, 지금은 사람들을 배제하고 정치를 위해 정치를 하는 행위가 많다고 해요. 그래서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 진짜 사람들을 위한 정치를 공부하고 알리고 싶데요. 당시 혼란스러운 국내 정치가 떠올라 서른여섯님의 꿈을 열렬히 응원했던 기억이 납니다.

내년에 미국으로 유학을 가는데 영어 울렁증이 있다고 해요. 이런. 유학 준비는 하지 않았지만 저 역시 외국인만 보면 울렁증이 생겨 도망치고 했던 기억이 납니다. 그래도 대단한 분이세요. 자신의 약점을 알면서도 자신의 꿈을 향해 끝없이 도전한다는 게 쉽지 않거든요. 자기중심이 꽉 잡힌 분인 거 같았습니다.


서른여섯님에게 공통의 질문 6가지를 드렸습니다. 좋아하는 숫자를 물으니 숫자 3이래요. 왜 좋아하냐고 물었더니 삼세번이라는 말을 좋아한데요. 삼세번이요? 너무나 뜻밖의 말에 당황해 다시 물었습니다. 그랬더니. 더도 덜도 말고 꼭 세 번이란 뜻의 삼세번이란 말이 자신에게 해당되는 거 같아 좋데요.

"저는 굉장히 느려요. 실은 대학도 세 번 만에 들어갔어요. 처음엔 힘들어 그만두어야 하나, 계속해야 하나 갈등도 많았는데. 어느 순간 아픔도 익숙해지고 결국은 잘 될 거 같더라고요." 결국 원하는 대학에 들어갔다고 해요. 비단 대학뿐만 아니라 자신의 삶에 있어서 중요한 선택의 순간에 꼭 삼세번만에 되는 걸 보고 숫자 3을 좋아하게 되었데요.

굉장히 흥미로웠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세 번까지 시도해 보고 안 되면 그만두는데. 서른여섯님은 어차피 세 번째는 반드시 되니까 천천히 도전해 보자며 시도하는 거예요. 전자의 경우 왜 나는 실패만 하지? 생각하기 쉬운데, 후자의 경우 실패를 통해 성공하자,라고 생각하니 전혀 다른 결과가 나오는 것 같습니다. 출발점이 다르니 도착점이 다른 거죠. 서른여섯님의 진짜 모습을 찾았습니다.  

좋아하는 색깔을 물으니 파란색이 좋데요. 파란색 하면 물이 떠오른데요. 바닷물이나 강물. 밝고 시원하고 깨끗한 느낌이라 좋데요. 인터뷰를 통해 알게 된 사실은 파란색을 보고 물을 떠올리는 분들의 특징은 조금은 느리고 유순한 분들이고, 파란색을 보고 하늘을 떠올리는 분들의 특징은 자유로움을 추구하고 독립적인 성향이 큰 분들이었습니다. 서른여섯님 역시 본인 스스로 느린 사람이라고 했듯이 말투도 느리고, 생각도 여유롭게 하는 분이라 물에 더 가까운 느낌이었습니다. 신기하죠. 자신이 좋아하는 걸 닮아가는 것.

좋아하는 음식은 닭고기래요. 닭고기로 요리한 음식은 다 좋다고 했어요. 어머니 뱃속에 있을 때부터 잘 먹었다고 해요.

좋아하는 동물은 호랑이래요. 범띠이기도 하고. 호랑이를 보면 멋있데요. 강한 포스가 느껴진데요. 무게감이 있어 잘 흔들리지 않을 것 같아서 좋데요. 그런데 그 뒷모습으로 무척 고독해 보인다고 해요. 대상에 자신의 감정을 이입하는 걸 우리는 고등학교 문학 시간에 배웠습니다. 감정이입이라고. 아마도 서른여섯님은 호랑이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있는지도 모르겠어요. 강하지만 고독한 호랑이는 실은 서른여섯님 본인의 모습일 수도 있어요.

좋아하는 식물은 나무래요. 나무들 중에서도 소나무가 좋다고. 사시사철 푸르러서 좋아한데요. 변하지 않는 것을 좋아하는 건 쉽지 않습니다. 우리의 감정도 호르몬도 생각도 매 순간 바뀌기 때문이죠. 그런 변화에 저항하고 항상성을 지키기 위해서는 굉장히 강한 뚝심이 필요합니다. 그것을 어떤 이는 절개라고 표현하죠. 어쨌건 변하지 않는 것을 좋아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굉장히 곧고 강한 분들이에요. 비록 자신은 그렇지 않다고 느껴도 곧고 강하기를 바라는 마음이 클 것입니다.

10년 후엔 어떤 모습일까요?라고 물었더니. 학생들을 가르치는 학자가 되어 있을 거라고 합니다. 분명 학생들을 사랑하고 사람들을 위한 정치를 가르치는 학자겠죠? 서른여섯님의 모습이 기대됩니다.


서른여섯님의 모습이 그려지시나요? 우직하게 자신의 일을 하는 사람을 이길 수는 없습니다. 실패를 해도 희망을 놓지 않고 끝까지 가는 바보 같은 사람. 세상을 바꾸는 건 바로 이런 우직한 바보들이 아닐까 싶습니다. 저는 "느리다, 물, 삼세번, 강하지만 고독한, 항상성 등"을 키워드로 글초상화를 썼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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