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도 언어다, 욕 안하고는 못 산다
욕도 언어다, 욕 안하고는 못 산다
어떤 사람은 ‘욕’이라는 언어 방식은 불결하며, 하급의 의사 표현이라고 생각할 것이다. 그러나 ‘욕’이라는 것은 굉장히 유서가 깊다. 또, 적절히 사용할 때 그 의미가 굉장히 탁월할 수도 있는 의사 표현이기도 하다.
욕하면 떠오를 만한 문학 작품이 있는데, 그게 바로 교과서에도 자주 실리는 현진건의 ‘운수 좋은 날’이다. (중학교에서 이 작품을 가르치면 슬프다고 우는 학생도 있다고 한다) 나 역시도 고등학교 때(혹은 중학교일 수도) 교과서에서 이 작품을 접한 것 같은데, 사실 중학생이 배울 만한 내용인지는 모르겠다.
주인공인 ‘김첨지’는 육체노동을 하는 인력거군으로 사용하는 언어도 굉장히 거칠다. 자신이 이렇게 아픈데 오늘은 일을 쉬라고 하는 부인의 뺨을 치면서 “오라질 년”이라고 욕하고, 소설의 결말 부분에서 죽은 부인 앞에서도 슬퍼서 울기보다는 역정을 내면서 “이년아, 말을 해, 말을! 입이 붙었어, 이 오라질년!”이라고 한다.
김첨지는 “이런 오라질 년! 조밥도 못 먹는 년이 설렁탕은. 또 처먹고 지랄병을 하게.”라는 막말을 쏟아내지만, 정작 인력거 장사가 잘되자 아내를 위해 설렁탕을 사 온다. 그 행동에서는 아내에 대한 따뜻한 감정이 묻어난다.
그의 말과 행동은 겉보기엔 불일치하지만, 바로 그 불일치를 통해 속마음에 담긴 복잡한 감정과 진심이 드러난다. 그리고 아내의 죽음을 확인한 뒤, 김첨지는 “닭똥 같은 눈물”을 흘리며 “미친 듯이 제 얼굴을 죽은 이의 얼굴에 한데 비벼”댄다. 그리고
“설렁탕을 사다 놓았는데 왜 먹지를 못하니,
왜 먹지를 못하니……
괴상하게도 오늘은 운수가 좋더니만……”
이라는 명대사를 남긴다. 이 장면은 김첨지의 거친 욕설 이면에 있는 사랑과 슬픔을 독자에게 강하게 전달하며 감동을 준다.
여기서 김첨지가 사용하는 “오라질 년”이라는 말의 의미는 예전에 죄인을 묶던 줄인 ‘오라’와 묶다라는 뜻의 ‘지다’가 합쳐진 합성어로 지금 말로 하면 ‘경찰서에 체포될 여자’라는 뜻이다.
욕이라는 게 지금 ‘내 기분이 더러우니 건들지 마라’ 같은 경고의 의미나 혹은 상대방에 대한 비하나 비난의 의미 이상의 뜻이 있는 것이 아니듯, 실제 부인이 경찰서에 잡혀가길 바라고 하는 말은 아니다.
또 ‘지랄병’이라는 것은 지금의 뇌전증 환자들이 경련이 일어나는 모습을 비하하는 말로 ‘유난하다’라는 의미로 사용하고 있다.
남자 중에는 김첨지가 있다면, 여자 중에서는 김유정의 동백꽃에 등장하는 점순이를 들 수 있다. 아직 이성에 관심이 없는 순수한 어린아이인 ‘나’와 이런 나에게 이성적 관심이 있는 ‘점순이’가 풀어나가는 이 이야기는, ‘나’의 입장에서는 학교 폭력이고 ‘점순이’에게는 러브스토리인데 그 관점의 차이에서 오는 간극이 웃음을 주는 포인트이다.
황순원의 소나기가 첫사랑이 가지고 있는 아련함이라면, 동백꽃은 첫사랑의 순수함과 당돌함이다. 그리고 여성 인물이 남성 인물보다 더 적극적이라는 점에서 신선하게 다가온다. 그런데 점순이라는 여자, 주인공인 나에게 관심은 있지만 표현하는 것이 서툴다. (그냥 감자를 주면 되지 “느 집엔 이거 없지?” 이런 말을 하니까 이 답답한 남자는 모르는 것이다)
그리고 나라고 하는 남자, 보통 둔한 것이 아니다. 점순이가 아무리 표현해도 절대 알아채지 못한다. 심통이 나서일까, 아니면 관심을 주지 않는 나에게 강경법을 사용한 것인지도 모르겠다. 결국 점순이는 나에게 가
“얘! 너 느 아버지가 고자라지?”
라는 패드립을 당당하게 사용하고 만다. 그러니까 화가 난 상태에서 상대방에게 가장 자극을 주는 말은 결국 패드립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일찌감치 알고 있었다.
믿고 싶지 않지만 이런 패륜적인 욕은 아주 유서가 깊다. “조선시대에도 악플러가 있었다고?”라는 유튜브를 보면 조선시대에도 이런 패드립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 내용을 소개하자면 아래와 같다.
조선 후기의 세책(貰冊)점은 요즘으로 하면 책 대여점, 유료 도서관 같은 것이다. 세책점에서 대여 후 회수한 책에는 사람들의 갖가지 댓글이 남아있다. 거기를 보면 요즘 악플 저리 가라 수준의 글을 볼 수 있다.
이 책 주인 보소. 이 책에 낙서가 많으니 다시 보수하여 세를 놓아먹거라.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네 어미를 종로 네거리에 갖다 놓고...
『금령전』에 적힌 낙서
이 책 주인은 볼지어다. 책이 재미있어 잘 보았다마는 책 주인의 모母가 생각이 절로 나서 기별하오.
니 부디 네 어미를 단장시켜서 이 글씨 쓰신 양반에게로 시집 보내라.
『설인귀전』에 적힌 낙서
첫 번째는 대여한 책에 낙서(악플을 비롯한 감상평)이 너무 많아 보기 힘들어 서점 주인을 욕한 것이고, 두 번째는 권 수를 늘려 돈을 더 받기 위해 한 권의 책을 여러 권으로 분철한 주인을 또 욕하는 것이다. 그때마다 주인의 어머니는 죄 없이 소환된다.
더 거슬러 올라가면 세조 시절의 실록에서도 패드립을 찾을 수 있다. 세조 13년(1467년), 세조는 여러 신하와 함께 성리학과 선(禪)에 대해 토론하는 자리를 마련했다. 이 자리에서 풍수학자 안효례와 유학자 최호원은 각자의 견해를 고집하며 논쟁을 벌였고, 감정이 격해져 인신공격까지 하게 되었다.
최호원이 안효례에게 “너는 백정(白丁)의 손자다”라고 하자, 안효례는 “내가 백정의 손자라면 너는 내 아들이다”라고 맞받아쳤다. 이런 패드립의 역사는 길고 질기다.
볼드 처리한 부분은 각주표시입니다.
각주 29) 세책(貰冊)은 ‘책(冊)을 세(貰) 놓다’라는 의미로, 다량의 책을 보유한 업자에게 돈을 주고 책을 빌려 읽는 독서 활동이자 상업적 서적 유통의 한 형태이다. 고서의 세책 영업은 18세기 중반 이후부터 20세기 초까지 지속되었다.
각주 30) 세조실록47권, 세조 14년 8월 14일 신축 1번째 기사 1468년 명 성화(成化) 4년 구종직, 안효례, 최호원이 선에 대해 격렬히 논란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