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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우 Feb 17. 2021

파닥파닥, 그

에메랄드처럼 빛나던 날

버스에서 내린다.


강가를 따라 난 신작로로 벌써 산그늘이 내려앉았다. 

풀벌레 소리가 잠시 숨을 죽이는 늦은 오후, 할아버지 집에 도착하려면 한 시간은 더 걸어야 한다.


군내버스가 하루 두 번 다니는 경상남도 두메산골, 할아버지는 이곳에서 산밭을 일구며 사셨다.  

젊은 시절 만주며, 연해주며 무역상으로 이곳저곳 다니50살이 넘자 은퇴를  시골로 내려가셨다. 그곳은 할아버지가 입버릇처럼 말하던 ‘막걸리 한 잔 하기 딱 좋은 곳’이었다.

물푸레나무가 잎겨드랑이로 흰 꽃을 피워 올리는 5월, 바햐흐로 여름이 시작되고 있었다.
강이 끝나 산들이 어깨를 맞대고갯길을 넘는다. 갑자기 산새 한 마리가 나뭇잎을 스치고 날아오른다. 산새를 쫓아 고개를 든다. 온통 초록빛이다. 그루터기에  걸터앉아 잠시 휴식을 취한다. 흔들리는 나뭇잎, 살랑거리는 풀잎 초록빛이다. 나뭇잎 사이로 햇살이 비친다. 바람이 햇살을 업고서 달아난다. 초록숲 사이에서는 바람마저 생생한 초록이다. 

한참을 걸어 드디어 고갯길을 넘는다. 눈앞에 저수지가 펼쳐진다

땅거미가 어둑어둑 내리고 앞산 머리로 때마침 해가 넘어가고 있다. 양이 산을 내려와 서서히 풍경을 물들이고 있었다. 멀리 마을 어귀에  느티나무가 보인다.

느티나무 아래 누군가가 앉아있다.

나를 기다리 할아버지다.

맏손자에 대한 사랑이 유달랐던 그, 1년 만의 만남설레었을까.  미동도 없이 저수지를 바라보고 있다. 마을에서는 군불 연기가 피어오른다. 한발씩 어둠이 내리며 저수지는 서서히 지워져 가고 있다.    

사진출처 Pixabay

 연을 품은 초록빛 보석, 에메랄드


에메랄드를 처음 본 것은 뉴욕에서 보석 학교를 다닐 때였다. 수업시간, 현미경으로 그것의 내부를 들여다보았다. 햇살이 쏟아지는 나무며, 바람에 살랑거리는 풀이 생생하게 보였다. 그  할아버지를 보러 가던 그날생각났다. 록이 온통 쏟아지던 날, 그날이  통째로 보석 안에 있었다.


 Garden Effect(정원 효과)


에메랄드의 내부는 나무와 풀 그리고 초록빛 햇살이 잘 어울어지는 정원이 연상된다. 바로 에메랄드의 내포물이 만드는 이 독특한 현상을 에메랄드의 정원효과라 부른다. 이런 아름다움을 극대화 하기 위해 에메랄드는 넓은 직사각형으로 가공한다. 바로 이 직사각형 컷은 에메랄드 컷이라 부른다. 자연을 통째로 품고 있는 보석, 에메랄드가 특별한 이유다.     


에메랄드고대 그리스어의 녹색을 뜻하는 “Smaragdus"에서 유래했다.


페리도트나 투어멀린에 비해 에메랄드의 녹색은 생생하고(lush)하고, 풍성(rich)다. 래서 에메랄드라는 이름은 부유하고 고급스러움 상징이 되기도 한다.

아일랜드를 에메랄드 섬으로, 시애틀을 에메랄드 시티라 한다. 같은 이유로 태국의 가장 성스러운 부처상은 실제로는 비취에메랄드 부처라 부른다. 특히 에메랄드의 녹색은 심신을 안정시키고, 눈의 피로를 가시게 하는 효능을 갖고 있다고 알려져 있다.


클레오파트라가  사랑했던 보석


고대 이집트인들은 예로부터 여러 장식에 에메랄드를 사용했다. 기원전 330년 이전부터  이집트에는 에메랄드 광산이 있었고, 귀족들 사이에  큰 인기였다. 특히 클레오파트라의 에메랄드 사랑은 남달랐다. 궁전 출입문의 바다거북을 통째로 에메랄드로 만들기도 했고, 측근들에게 자신의 얼굴 새겨 선물로 나눠줄 정도였다.


유태인의 구전에 따르면 하나님은 솔로몬 왕에게 모든 피조물을 다스릴 수 있는 4개의 성스러운 돌을 주었고 그중 하나가 에메랄드라고 한다. 남미의 잉카인과 아즈텍인들은 에메랄드를  신성한 보석으로 여겨 각종 종교적인 장식물에 사용하였다. 이후 이곳을 점령한 스페인 정복자들은  유럽과 아시아에 에메랄드를  전파시켰다. 에메랄드는 다이아몬드, 루비, 사파이어, 진주와 더불어 5대 보석 중 하나로 사랑받고 있다. 


최상질의 에메랄드는 콜롬비아 산이다  


콜롬비아의 보야카(Boyacá)와 쿤디나마르카(Cundinamarca) 지역에서 채굴된 에메랄드는 세계 최고의 품질을 자랑한다. 철분이 많아 불투명한 브라질산이나 바나듐이 많아 황색을 띠는 잠비아 산과 달리 콜롬이아 산은 경도가 높아 가공하기가 좋다. 하지만 무엇보다 콜롬비아산이 최고로 평가받는 것은 바로 초록빛 때문이라고 한다. 콜롬비아의 광대한 평원을 꼭 빼닮은 깊고 웅장한 초록빛, 이 빛은 광학적으로 ‘완벽한 채도’라 불리는 짙고 푸르스름한 녹색을 띤다.  콜롬비아 에메랄드는 가치가 뛰어나기 때문에 콜롬비아 경제에 매우 중요한 광물자원이었다. 하지만 다이아몬드처럼 이를 차지하기 위해 수많은 내전이 발생하였다. 지금도 많은 사람들이 에메랄드 때문에 희생당하고 있다. 그야말로 피의 에메랄드라 할 수 있다. 


 할아버지는 내가 다가가는 것을 모르는 눈치다.


깊은 사색에 잠겨 골똘히 저수지를 응시하고 있다. 찬찬히 담배연기를 내뿜는다. 나는 일부러 인기척을 낸다. 할아버지는 천천히 고개를 돌린다. 나를 발견하자 입가에 희미한 미소가 번진다.   


그 순간,  

저수지로 어 한 마리가 튀어 오른다. 파닥파닥

할아버지는 나를 향해 두 팔을 활짝 편다. 환하게 웃는다. 

세상은 온통 초록빛으로 빛난다. 시간이 반으로 접어 흐른다면

꼭 다시 한번 가고 싶은,  


에메랄드처럼 빛나던 그날. 

사진출처 Pixabay

참고문헌

1. www.gia.edu/emerald (미국 보석 학회 사이트의 에메랄드)

2. 월곡주얼리산업연구소

[글로벌 특파원_콜롬비아] 에메랄드 천국, 콜럼비아


대표사진 :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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