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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우 Jan 17. 2021

누구에게든 아름다운 지난 시절이 없었을까

터키석 이야기

거리는 햇살이 가득합니다  


 바람은 서늘하지만 햇살이 따스한 가을 오후, 점심식사를 마치고 회사 근처를 산책합니다.

비가 온 직후라 거리는 아기 얼굴처럼 말갛습니다. 걷는 내내 콧노래가 절로 나는 기분 좋은 날입니다.


여기는 양평동입니다.


 목동과 영등포 사이, 엄연한 서울이지만 모르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출근 길에 택시에서 졸다 두번이나 경기도 양평까지 간 적이 있었으니까요.
 예전부터 이곳 양평동은 금형공장들이 모여 있는 지역이었습니다. 산업화가 한참이던 80~90년대,
여기서 만들어진 공작기계나 공구들이 전국으로 팔려나갔습니다. 길거리 개도 만원 짜리를 입에 물고 다녔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니 그야말로 양평동 최고 전성기였지요. 가을 햇살이 넘실거리는 눈부신 오늘처럼 말입니다.  

 큰길에서 두 블록 올라가면 수원 식당이 있습니다.  붉은색 벽돌로 지어진 겨우10여명 남짓 앉을 수 있는 작은 식당입니다. 지금은 퇴락했지만 한때는 서울시장에 국회의원에 이름께나 날리던 사람들이 찾던 유명한 식당이었습니다.


전성기를 기억하듯 스무개도 넘는 화분들이 식당 앞을 지키고 있습니다. 이곳은  미닫이 열고 들어오는 모든 이들에게 모락모락 김 나는 한 끼 식사를 차려냅니다. 밥을 먹고 나오는 사람들의 얼굴에 가을 햇살이 내려 앉았습니다.

                         <사진 / 수원식당 >


식당 맞은편에 한성기업 주식회사가 있습니다

 

 철문 너머로 땡강 땡강 소리가 들립니다. 아직도 이곳에서 무엇인가 만들어 지고 있는 것이 분명합니다. 발뒤꿈치를 들어 담장 너머를 살펴봅니다. 도무지 무엇을 만드는지 알 수 없습니다.


 건물 중앙에는 커다란  굴뚝이 있습니다. 족히 20미터도 넘는 옛날 동네 목욕탕에 있던 바로 그  굴뚝입니다. 파란색 바탕 위에 슈퍼마리오가 그려져 있습니다. 마리오는 금방이라도 굴뚝에서 뛰어 내릴듯 합니다. 몇년 전까지만 해도 거기에는 마리오가 아니라 한성기업 주식회사라는 이름이 있었습니다.  


 사람들 말로는 불과 10여 년 전까지만 해도 꽤나 분주한 공장이었다고 합니다. 굴뚝 위로 하얀 연기가 피어오르고, 사람들이 무언가를 열심히 만들던 곳이었습니다.  많은 이들의 삶의 터전이었던 곳, 수고한 대가로  그들의 아이를 키우고, 행복한 미래를 꿈꾸던 곳. 눈을 감으면 여전히 댕강댕강 망치 소리가 들리는 듯합니다.
낡고 앙상한 굴뚝에 가을 햇살이 내려앉았습니다.

                   <사진 /  한성주식회사>


 공장을 지나 골목길을 걷습니다. 주민 센터를 막  돌아서면 금형공장 하나가 보입니다. 문을 연 유일한 곳이라 반가운 마음이 듭니다.

 살짝 들여다 보니  까만 기름때 묻은 공구들이 정리되지 않은 채 쌓여있습니다. 낮인데도 내부는  동굴처럼 어둡습니다. 공장 앞에는 사장인지 직원인지 노인 한 명이 의자에 앉아있습니다, 그 옆에 노인보다 더 늙은, 털이 숭숭 빠진 개가 졸고 있었습니다.


 저 노인도 한때는 핏줄 선 팔뚝으로 망치질을 하지 않았을까요? 젊은 시절 받은 기술명장 인정서가 공장 한켠에 걸려 있을지도 모릅니다. 누구에게나 한 번쯤 빛나던 시절이 있었겠지요. 가을 햇살 같은 눈부신 날들 말이죠.


누워 있는 개와 개를 닮은 노인, 노인을 닮아 퇴락한 건물, 처마에는 세월이 쳐놓은 거미줄만 가득합니다.  무엇을 잡으려는 수고가 얼마나 허무한 것일까요?허공에 친 거미줄 사이로 하닐 없이 바람이 빠져나갑니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았습니다. 정말 눈이 부시게 아름다운 가을하늘입니다. 그때 양평동을 닮은 보석 하나가 떠올랐습니다.


세월을 닮은 보석, 터키석.

터키석은 가을 하늘색입니다. 거기에 사이사이 검은 색 줄이 쳐져 있습니다. 불순물 때문에 생겨난 이 줄들은 거미줄같습니다. 자세히 들여다 보면 파란바탕 위에 누군가 검정색 붓으로 휙휙 그은듯한 모습입니다. 그래서인지 굉장히 오래된 골동품같은 묘한 느낌이 드는 보석입니다. 아름답다라기 보다 오래되서 먼가 되게 중요한 것을 간직한 듯한 느낌말이죠.      

  오천 년 전 이집트 여왕 제르의 미라에서 터키석 팔찌가 발견되었으니 정말 오랫동안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은 보석임에 틀림없습니다.

터키석은 프랑스어 터쿼이즈에서 파생되었습니다. 프랑스 말로 ‘터키의 여자’라는 뜻입니다. 흥미로운 것은 터키에서는 터키석이 나오지 않습니다. 그런데도 그런 이름이 붙은 것은 시나이반도에서 채굴된 터키석이 터키를 거쳐 유럽으로 전해졌기 때문입니다.

 터키석의 색은 불투명한 파란색을 띱니다.

파란색은 구리를 함유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구리 함유량에 따라 하늘색에서 녹색을 띤 파란색까지 다양한 파란색이 나옵니다. 특히 이란에서 채굴된 터키석은 맑은 가을 하늘빛을 띱니다.  이것은 로빈 에그 블루(Robin Egg Blue)라고 하며 가장 최상급의 터키석입니다.

 

 터키석은 예로부터 좋은 기운을 주는 보석으로 여겨졌습니다.  실크로드를 이동하는 대상들은 말이나 낙타에 터키석을 매달아 기력을 북돋는데 사용했습니다.  중동에서 인도에 이르기까지 터키석은 잡귀로부터 사람을 보호한다고 해서 종교적 성물로 사용되었습니다.


 특히 미국의 인디언과 멕시코인들은 터키석이 죽은 사람을 지켜준다하여 무덤에 같이 묻어주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세계 곳곳에서  푸른 하늘색은  영생을 상징하는 색으로 여겼습니다. 그래서 터키석은 종교적 영물로 큰 사랑을 받았습니다.

  터키석의 하늘색은 시간이 가면 퇴색됩니다.  


현무암처럼 다공질이라 세월이 지나면 기름이나 이물질로 색깔이 조금씩 변합니다. 
 사람이 태어나, 젊은 시절을 지나 나이가 들어 가듯이, 터기석의 화려했던 푸른 하늘색도 시간이 지나면 옅어지고 투박해집니다. 터키석은 참 인간을 닮은 보석입니다. 태어나 행복했던 한때를 지나 늙어가는 이곳 양평동처럼 말입니다

산책을 마무리할 즈음 회사 앞 사거리에 도착합니다. 신호를 기다리는데 가위 소리가 들립니다. 엿장수입니다. 트롯 가락에 맞춰 철컹철컹 가위질이 경쾌합니다. 오랜만에 참 반가운 풍경입니다.

누군들 아름다운 시절 없는 사람이 있을까요?
구름 한 점 없는 가을 하늘이 터키석처럼
파랗게 지나가고 있습니다.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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