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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우 Jan 11. 2021

버려지기 위해 태어난 존재는 없다

다이아몬드 감정 이야기

 직업상 매일 어떤 선택을 하는 사람들이 있다.


단순한 것에서 한 생명의 운명을 결정하는 가혹한 선택까지.  이 선택은 어떤 대상에게 축복이 되기도 하지만 어떤 대상에게는 생명이 걸린 심각한 문제가 되기도 한다. 병아리 감별사의 선택처럼.

지금부터 누군가의 선택 때문에 버려질 운명에 놓인 어느 불행한 다이아몬드에 대해 이야기하려고 한다.

 

녹턴은 보석감정사다


보석 감정사는 보석의 진품 여부를 가려내고, 가치를 평가하는 일을 한다. 그래서 보석감정은 다소 엄격하고 건조한 일이기도 하다. 녹턴은 스스로 잘 흥분하는 편이 아니고 상당히 냉정한 편이라 이 일이 잘 맞다고 생각한다. 감정은 감정 없이 해야 실수가 없으니까.  


감정하는 날은 조금 일찍 출근한다. 특히 다이아몬드 감정을 하는 날은 더 많은 신경을 쓴다. 모임도 나가지 않고, 좋은 컨디션을 유지하려 노력한다.


블라인드를 올리니 창문으로  가을 햇살이  들어온다. 이런 자연광이 감정하기 가장 좋은 환경이다. 먼저 주변을 정리하고 테이블을 닦는다. 다이아몬드 분실을 막으려면 청결이 우선이다. 청소가 끝나면 감정 장비를 하나씩 점검한다. 전장에 나가는 병사에게 무기만큼 중요한 것이 있을까.  


마이크로스코프(현미경)의 배율을 10배로 맞춘다. 폴로 라이 스코프(형광기) 불빛을 확인한다. 스펙트럼(분광기)의 모듈을 조절하고,  루페(휴대용 현미경) 홀더의 느슨한 나사를 단단히 조인다.  

마지막 순서로 마스터 스톤(컬러 체크용 다이아몬드 세트)을 차례대로 칼라박스 위에 올려놓는다.


시계가 10시를 가리킨다. 손가락 깍지를 끼고 쭈욱 팔을 뻗는다. 탁자 위에  리넨 천을 펼친다. 손바닥으로 천 주름을 평평하게 쓴다. 눈을 감고 심호흡을 한다.


이제 시작해볼까


녹턴은 파슬(봉지) 열어 다이아몬드를 접시에 쏟는다. 접시 위의 다이아몬드들이 햇살이 쏟아지는 바다처럼 찰랑거린다. 한 손으로 트위저 (다이아 집게)를 잡아 손등 위로 뱅그르르 돌린다.   흡사 펜을 돌리는 듯한 이 동작은 트위저에서 튕겨 다이아몬드를 잃어버린 후부터 시작된 일종의  액막이다.


잃어버리지 않고 무사히 마치게 하소서


첫 알을 집어 중량계 위에 올린다. 쇼팽의 피아노곡처럼  액정 속 숫자들이 춤을 추다 멈춘다.


 0.53ct 약간 비만이군. 

 중량 초과는 아니지만 다이어트가 필요해. 

 

다이아몬드의 칼라를 감정한다.

알을 하얀색의 박스 위에 놓고, 마스터 스톤과 비교한다.  마스터 스톤은 0,3~0.4캐럿의 천연 다이아몬드이다. 각각은 공인된 D F G H I J K M의 칼라로 되어있다. 보통 8개가 하나의 SET를 이룬다.


녹턴은 세 달치 월급으로 마스터스톤을 구입했다.


가격은 비쌌지만 한치의 주저함이 없었다. 감정사에게 마스터스톤은 피아니스트에게 피아노 같은 존재이기 때문이다. 가끔 울적하고 답답할 때 마스터스톤을 보면 마음이 평온해지는 것을 느낀다.  마스터스톤 G와 H 사이에 알을 놓는다. H보다는 더 무색으로 G칼라는 판단이 든다.


 펜을 들어 감정지에 G라고 쓴다


다이아몬드의 칼라는 무색에 가까울수록 비싸다. 

최고는 D, 거기에부터 노란빛이 가미되면 E, F, G... 의 알파벳 순서로 내려간다. 무색일수록 가치가 높은 이유는 투명도나 빛 반사가 뛰어나기 때문이다. 천연다이이아몬드는 보통 노란색이나 갈색의 내포물을 갖고 있고 무색은 희소하기 때문에 가격이 비싸다.


다이아몬드의 감정기준은 4C이다.


4C는 Color(칼라), Carat(중량), Clarity(내포물), Cut(컷팅)이다. 바로 4C를 최초로 감정기준으로 세운 것은 바로 GIA(Gemological Institute Of America, 미국 보석 학회)이다. 1940년대 설립된 이 학교의 4C감정은 전 세계적인 다이아몬드 표준 감정체계로 자리잡았다. 녹턴은 GIA에서 보석 공부를 했고, 보석 감정사 자격증을 획득했다. 


알을 형광기 아래에 놓는다. 스위치를 누르니 파란 불빛이 보인다. 형광 아래에서 알은 약간 푸른빛을 띤다. 이 미세한 푸른 빛을 놓치지 않고


 Faint(약한 형광)라고 쓴다


 형광물질에 의해 형광이 발현된다. 나이트클럽의 파란 형광봉이나 도깨비불을 생각하면 이해하기  쉽다.  이 형광은 다이아몬드의 identity(광물적 특징)의 하나다. 지나친 형광 즉 Strong은 자연광 에서도 파란빛을 띠기 때문에 뿌옇게 보인다. 이것은 투명도가 떨어져 가치가 낮다.

사진출처 Pixabay


 Clarity(내용)감정은 보석용 현미경을 사용한다.  

 

형광 검사를 마치면 본격적으로 다이아몬드 내부 의 내용( Clarity) 살핀다. 이때  마이크로스코프라는 보석용 특수 현미경을 사용한다. 이것은 단순히 표면을 확대하는 일반 현미경과 달리 내부로 내려가며 Depth(깊이)전체를 살필수 있게 해준다. 내부를 감정하기 위한 현미경 배율은 10X로 정해져있다. 60배에서 100배까지도 확대해 조사도 가능하지만 감정은 정해진 기준에 따른 비교이므로 정해진 배율로만 한다.


Clarity(내용)감정은 다이아몬드 내부의 다양한 상태와 내포물을 판단하는 것이다. 즉 내포물의 종류, 많고 적음, 크기와 분포를 살피고 그 내포물의 치명성을 점검한다. 치명성은 내부의 feather(쪼개짐)같은 것이 다이아몬드의 안정성에 얼마나 영향을 주는지를 따지는 것이다. 녹턴은  조절기를 돌려가며 표면에서 안쪽으로 내려가며 내부를 꼼꼼하게 조사한다.  


좌측 표면에 실금 같은 Feather(쪼개짐)보인다. 정중앙에 작은 다이아몬드 알갱이 3개가 보인다. 2시 지점의 아래쪽에 제법 큼직한 다이아몬드 결정을 즉 크리스털(Xtl)을 발견한다. 다행히 이것은 무색에 투명하다. 만약 검은색이고 불투명하면 가치가 떨어져 낮은 등급을 받게된다. 전체적인 검사의 결론은 내포물이 비교적 많고, 안정성에 영향을 주는 feather가 있어서


Clarity 등급을 SI2로 결정한다.  


다음으로 다이아몬드의 전체적인 사이즈를 측정한다. 밀리미터게이(millimeter gauge)를 사용해 다이아몬드의 원주와 높이등을 측정한다. 크라운(다이아몬드의 측면)의 각도를 재고, 테이블(다이아몬드상부의 가장 넓은 면)의 면적비율을 조사한다. 또한 거들(Girdle, 허리면)두께도 측정한다. 거들은 주얼리에 보석세팅시

깨지는 것을 막기 위해 일부러 만든 것이다. 매우 얇음에서 매우 두꺼움 까지 등급이 매겨진다. 이 거들이 너무 얇으면 주얼리 세팅시 깨질 염려가 있고, 또 너무 두꺼우면 Fish eye가 되어 빛 반사가 좋지 않다. 따라서 거들 두께는 적당한 것이 좋다.  


다음은 다이아몬드의 Cut(컷팅)을 감정한다.


컷팅은 다이아몬드가 얼마나 잘 연마되었는지를 살펴보는 것이다. 58개 면의 연마 상태, 좌우 대칭, 각 부분비율의 적정성 등을 판단한다. 흔히 사람은 뚜렷한 이목구비와 균형잡힌 몸매를 갖추면 아름답다라고 한다.  다이아몬드 역시 적절한 비율로 잘 깎이면 빛 반사가 좋기때문에 아름답다. 결국 컷팅은 4C중 다이아몬드의 아름다움 즉 미관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는 감정기준이라 할 수 있다.  검사결과 알은 컷팅이 깔끔하고 전체적인 비율도 매우 적절하다고 판단되었다.


 따라서 컷팅 최고의 등급인 Excellent라고 쓴다


 ○ 중량  :  0.53ct  칼라 :  G  내용 :  SI2

 ○ 원주와 높이:  4.98- 5.01mm, 3.21mm

 ○ 테이블 비율 : 57% 컷팅 :  Excellent

 ○ 거들 두께 : Sl.thin to Medium/

 ○ 형광:  Faint   내포물 종류 : Xtl, Pp, Ftr


암 수표 같은 숫자들이 모두 채워지면 감정은 어느 정도 마무리된다. 대략 알 하나를 감정하는 시간은 5분 남짓 걸린다. 하지만 각각의 항목은 사실 매우 복잡하고 다양한 등급으로 세분화 되어있고 조합의 결과는 수천 수만가지에 이른다. 감정사는 이런 무한 조합을 일정한 기준에 의해 찾아내야 하기 때문에 엄청난 집중력과 정확한 판단력을 갖추어야 한다.


시계가 1시를 가리킨다.

감정이 끝난 알들이 접시에 가득하다.  이제 감정도 막바지다. 집중하자. 녹턴은 혼자 말을 하고 트위저로 알을 집는다. 비로소 만나는 마지막 알, 녹턴은 이 희열의 순간을 정말 사랑한다.

 

심호흡을 하고 바로 마지막 알을 살핀다


트위저로 잡아 여기저기 돌려가며 관찰한다.

표면은 크게 이상한 점이 없다. 조리개를 돌려 좀 더 깊숙한 곳으로 내려가 본다.  중앙 아래쪽으로 파란색 알갱이가 보인다. 주변에는 토성의 띠처럼 노란 입자들이 타원을 그리며 모여 있다.  

잠시 머리를 들어 현미경에서 눈을 뗀다. 

숨을 고르고 다시 현미경을 바라본다. 


파란색 알갱이를 다시 살펴본다. 고개를 갸우뚱한다. 그동안 한번도 본 적없는 내포물이었다. 볼수록 주변을 둘러싸고 있는 고리는 결코 평범한 것이  아니었다. 잭슨 플록의 페인팅 작품 같다 할까 거칠고 매우  불규칙하게 퍼져있었다. 녹턴이 지금까지 감정한 다이아몬드는 소도시의 사람 수는 족히 넘을 것이다. 이런 내면을 갖은 다이아몬드는 실로 처음이다.


 너 대체 누구니?


알에게 말을 걸어본다. 내포물의 수나 안정성을 생각하면  보석용으로 쓰는 등급은 매길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감정표에 등급을 표기하려다 멈추고 다시 알을 살펴본다. 그래도 무언가 이상하단 말이야. 녹턴은 머리를 흔든다.  


모든 것이 미궁에 빠진다.


노란띠의 중심에 있는 파란 알갱이는 도데체 머지? 이상한 불안감에 휩싸인다. 혹시 다이아몬드가 아닌 다른 광물일까? 먼 우주에서 온 미지의 광물은 아닐까? 녹턴은 혼란에 빠진다.  


알 수 없는 미지의 존재다.  


동료들이 점심을 마치고 돌아오는 소리가 들린다.

녹턴은 문제의 알을 앞에 놓고 생각에 잠긴다등으로 식은땀이 흐르고 두려움이 엄습한다.  

그동안 결정했던 감정 작업들이 주마등처럼 스친다.  자신이 내렸던 많은 결정들이 혹시 잘못된 것일까? 하는 의구심이 들기 시작한다. 이 알처럼 모든 것들은 애초에 미지의 존재였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어디선가 작은 소리가 들린다. 작은 웅성거리는 소리가 점점 커지더니 또렷하게 들리기 시작한다.


이봐 녹턴

난 이 세상에 나오기 위해 1600km의 뜨거운 용암 속에서 무려 200만 년을 기다렸어. 사랑하는 사람들의 반지에 올라가기 위해 모든 것을 참고 견뎠단 말야.

너의 선택으로 모든 것을 잃을 수는 없어. 너 따위가 감히 내 운명을 결정할 순 없어.


제발 나를 버리지 마

사진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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