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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승우 Jan 11. 2021

희망을 밝히는 등불

가넷 이야기

 그해 겨울은 유난히 추웠다


세계적인 경제위기가 발생했고, D의 첫 직장은 부도가 났고 실업자가 되었. 

D는 이유 없이 분도가 차올라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그는 그해 겨울 내내 대포항에 머물렀다.

   
D의 민박집은 가파른 언덕을 따라 한참을 올라가야 했다. 어촌마을에 흔히 볼 수 있는 시골집,  도시에서 나고 자란 그에게는 여러모로 불편한 곳이었다. 변변한 편의점도 하나 없고, 밥 먹을 식당도 한참을 가야 나오는 시골 속의 시골이었다. 그나마 큰 위안이 되는 것은 바다로 난 커다란 통창이 있다는 점이었다. 통창 너머로 바다가 오롯이 품에 안기는 멋진 풍경이었다.  

무엇보다 그를 가장 힘들게 한 것은 주인 할머니의 태도였다. 할머니는 굽은 허리에 항상 지팡이를 짚고 다녔다. 그녀는 D에게 무슨 적개심 같은 것이 있나 싶을 정도로 매사에 퉁명스럽고 쌀쌀맞았다. 민박집에는 할머니보다 더 늙은 개가 있었다. 하루 종일 개집에 웅크리고 앉아 꼼짝도 하지 않았다. 가끔 신음소리 같은 소리가 나서 살아는 있기는 하네 하는 생각이 들었다.

 

매일 무거운 마음에 쉬이 잠이 들지 못했다. 밤새네 뒤척거리다 겨우 선잠이 들 때면 어김없이 개 울음소리가 들렸다. 낮고 긴 신음소리가 끊어질 듯 이어졌다.  창문 너머로 누군가의 발자국 소리가 들렸지만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매일 밤 꿈인지 생시인지 분간도 안 되는 신음소리와 인기척에 시달렸다.  

 
정오가 한참 지나서 일어난 D는 포구로 내려갔다.  해변을 따라 도로를 걷다 보면 어촌계에서 운영하는 하는 작은 어시장이 있었다. 길 양쪽으로 포장이 드리워진 어시장은 인적이 뜸했다. 어쩌다 차가 멈추었다가 흥정을 마치면 재빨리 사라졌다. 멀리 방파제로부터 칼바람이 불어왔다. 옷깃을 여며도 바늘로 찌르는듯한 통증이 느껴졌다. 어시장은 걸을 때마다 질척거렸다. 시커먼 해초들이 서로 엉켜 바닥 이곳저곳 나뒹굴고 있었다. 마치 어디서부터 풀어야 할지 도무지 알 수 없는, 뒤엉켜버린 삶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짧은 겨울 해가 지자 거리는 어둠이 내렸다.

그는 선창가 포장마차 귀퉁이에 앉았다. 펄럭펄럭, 바다 멀리서 불어온 바람이 포장을 들칠 때마다 기침소리가 났다. 그것은 쿨럭쿨럭, 마음 저 깊은 우물에서 슬픔이 퍼올려지는 소리처럼 들렸다.

 
 산다는 것이 겨울바다 같아, 차갑고 깊고 어두운.
 
D는 혼잣말을 했다. 이렇게 주절거리지 않고는 바람을 견뎌낼 수가 없을 것 같았다. 바람이 다시 세차게 불어 포장을 흔들었다. 단단하고 거대한 바람이 신을 들어 바다 한가운데 내던질 것 같았다. D는 순간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 생각이 들었다. 차라리 스스로 바다경계에 몸을 던지는 것이 낫지 않을까.

그는 술에 잔뜩 취해 민박집에 돌아왔다. 그리고 잠이 들었다.


한참이 지나 잠결에 흐느끼는 개 울음소리를 들었다. 날카로운 꼬챙이가 머리를 긁는 것 같았다.  느낌이 났고 정신이 또렷해졌다. 이어 방문 앞을 서성거리는 발자국 소리가 들렸다.  유리창에 시커먼 그림자가 다가왔다. 누군가 자신을 바라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꿈인지 생시인지 잘 구분이 되질 않았다. 소름 끼치도록 무서웠지만  단단한 무언가가 그의 어깨를 눌러 일어날 수도 없었다.

그 일이 있고 며칠이 지났다.
다시 선창가 포장마차를 찾은 D는 우연히 두 사내의 대화를 듣게 되었다.

"할머니가 요즘 등대에 안 보이네"

"그 할머니 아들 보낸 지 한 4~5년 됐지?"

"아미 그럴 거야. 새벽마다 지성을 드렸는데.. 통 안 보여"

 직감적으로 민박집 할머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몇 년 전 태풍 때, 뱃일하던 할머니의 아들이 실종되었다고 한다. 그 뒤로  매일 새벽마다 할머니는 등대에 나와 아들을 위해 지성을 드렸다고 한다. 그런데 요즘 보이질 않아 걱정스럽다는 이야기였다.  

 
그날도 D는 술에 취해  민박집에 돌아왔다. 바다에 구름이 낮게 드리워져 있었다. 금방이라도 눈이 내릴 것 같았다. 잠이 든 것은 새벽녘이었다.  D는 잠결에 예의 발자국 소리를 들었다. 뽀드득, 그것은 누군가 분명히 눈을 밟는 소리였다. 순간 그는 확 밀려드는 무서움으로 눈을 떴다. 가만히 방문을 열었다. 어둠 속에서 희끄무레한 작은 형체가 이쪽을 바라보고 있었다. 솜덩이 같은 함박눈이 내리고 있었다.

"누구세요?"

상대방은 하얗게 눈을 뒤집어쓴 채 나를 바라보았다.

"별일 없어?"

"네? 무슨 일이세요?"

"큰일이라도 치를까 봐"

매일 새벽 방앞을 서성거렸던 건 할머니였다. 혹시 그가 잘못된 선택을 할까 봐 할머니는 잠도 자지 않고 방앞을 지키고 있었던 것이다. 그는 갑자기 명치끝이 묵직해지고 끝이 찡했다.


"꼭 죽은 아들놈 같아서 "

가만히 손을 들어 등대를 가리켰다

"그 녀석 등대 불 따라올 거야. 지에미 보러 꼭 올 거야'

D는 할머니의 손을 잡았다. 갑자기 눈물이 쏟아졌다. 등대 불이 지나갈 때마다 바다 위로는 눈이 내리고 있었다.

그는 서둘러 민박집을 떠났다.
그해 겨울은 추웠고, 눈이 많이 내렸다. 그곳에는 등대가 하나 았었다. 할머니의 소망을 대신해 등댓불은 깊고 어두운 바다를 비추고 있었다. 바다 저 너머 작은 희망 하나가 있었다.   

사진출처 pixabay

가넷이란 보석을 아시나요?
 
가넷은 빨간색 때문에  루비라고도 불렸습니다. 이 보석의 역사는 아주 오래되었습니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 노아의 방주 시대입니다. 세상은 사람들의 죄로 가득했습니다. 더 이상 참을 수 없었던 하나님은 마침내 인간들을 심판하기로 합니다. 세상의 모든 생명을 물로 쓸어버리기로 작정하신 거죠. 노아에게 방주를 만들게 하고 노아의 가족과 암수 한쌍씩의 동식물이 모두 방주에 타자 방주의 문이 닫힙니다. 그때부터 비가 내리기 시작합니다. 몇 달에 걸쳐 쉬지 않고 내리는 비로 모든 것은 물에 잠깁니다.  


세상은 완전히 어둠에 뒤덮입니다. 그것은 온전한 어둠이었습니다. 이때 방주를 밝힌 빛이 있었습니다. 그것은 바로 세 개의 가넷에서 나오는 빛이었습니다. 비록 작고 희미했지만, 칠흑 같은 어둠을 밝혔던 유일한 빛이었습니다. 방주의 생명들은 그 빛 때문에 줄기차게 내리는 빗속에서 삶의 희망을 품을 수 있었습니다.
 
가넷의 보석 말은 희망입니다. 

코로나는 우리에게 많은 것들을 앗아갔습니다. 사랑하는 사람을 자유롭게 만나고, 마음껏 숨을 쉴 수 있는 자유도 잃었습니다. 끝나지 않을 것 같은 재앙 속에서 우리들의 삶은 시들어갑니다. 하지만 이 절망에서 우리를 지켜줄 작은 불빛 하나가 있다는 것을 압니다.

그해 겨울,  등댓불을 따라 올 아들을 기다리던 할머니의 바람처럼, 우리들의 간절한 바람들이 끝내 이 절망을 이겨낼 것을 믿습니다. 우리에게는 작은 불빛 하나가 있습니다.

그것은 희망입니다.


                                                가넷 원석, 사진 출처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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