슈네이드가 대표적 완충지대였지만 다른 모든 이들도 더나 덜 가까운 반경으로 동심원을 그리며 매순간 내게 필요한 한 두 마디를 해주기 위해서인 양 언제나 내 눈빛과 발걸음이 닿는 곳에 있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고용된 적 없는 무상의 수호천사로 지냈다. 다정함 한 조각씩 내어주고 산다는 건 그러한 일이다.
이런 낱낱의 느낌이 뭉쳐 하나의 모습으로 다가온 적이 있다. 11월 셋째 주, 우리 반 전체가 참여한 또 하나의 파티가 있었다. 파티 전 일주일 동안 아이들은 점심시간에 모여 추수감사절 파티를 준비하고 있었다. 그들에게는 의미가 큰 파티일 것이다. 우리네 추석처럼.
어느 날 조쉬가 내게 말했다. “언제 레베카네 집에 다 같이 모일 거고, 우리는 전통적인 추수감사절 음식을 마련할 거야, 칠면조 같은. 그냥 와서 먹기만 하면 되는데, 와줄래?”
기뻤다. 내가 우리 반의 다른 구성원들에게 정식으로 받아들여짐을 확인한 기분이었다. 그들의 명절이란 게 어떤 건지도 궁금했다. 간단한 주류는 각자 사 가기로 했다. 그런데 정작 당일이 되자 칠면조는 취사도구의 불충분으로 취소되어 도미노 피자로 대체되었다. 칠면조는 그만 다 날아가 버린 것이다. 학교 건물 입구에서 우연히 대학원생 마농을 마주쳤을 때 나는 팔을 팔랑팔랑 저으며 말했다. “그렇게 해서 칠면조는 다 날아갔구.”
마농은 무척 재미있어하며 다시 날갯짓을 해 보라고 했다.
그 날 저녁 차가운 밤공기를 뚫고 레베카네에 도착했다. 준비해 온 맥주를 까 마시는 동안 아이들이 하나둘씩 모여들었다. 레베카는 집주인의 커다란 본채 밖에 창고처럼 지어진 건물 2층을 쓰고 있었는데 오히려 다듬어지지 않은 다락방 같아 더 낭만적이었다. 공간도 넓고 좋은 TV를 비롯해 있을 건 다 있었다.
식탁에는 다른 반의 머리 긴 두 여학생이 앉아 있었다. 둘 다 똑같이 사라라는 이름이다. 사라들은 쌍둥이나 자매 혹은 그림자처럼 같이 먹고 늘 함께여서 사람들은 이들을 신기하게 여기며 ‘드 사라deux Sarah'(두 명의 사라)라고 칭했다. 어쩌다 그 둘 중 하나가 혼자 있는 걸 보면 의아하게 여길 정도였다.
곧 조쉬와 레베카가 내게 다가와 말했다. 와줘서 정말 기쁘고, 필요한 것은 뭐든 얘기하라고, 그리고 오고 싶을 때는 언제라도 또 와도 좋다고. 니코도 비슷한 말을 했다. 비록 이날, 온통 영어의 범람 속에서 대화들은 띄엄띄엄 들렸지만 친구들의 환대에 마음만은 무척 따뜻해졌다.
이 자리에는 멀리 미국으로부터 날아온 니코의 여자 친구도 있었다. 그녀는 니키라는 애칭으로 불렸고 이날 낮에는 이미 니코와 함께 우리 수업에 들어왔었다. 예쁜 데다 당찬 니키는 자기 거실에서처럼 편안하게 걸터앉고 돌아다녔다.
아이들은 도미노 피자 사이트를 열어 놓고 신중히 피자들을 골랐다. 곧 피자가 도착하자 그것들을 아무 바닥에나 늘어놓고 뜯으며 먹고 마셨다. 여기 도미노피자에는 이 지역의 각종 치즈들이 듬뿍 들어간다. 피레네의 염소치즈가 들어간 피자라니! 날아가 버린 칠면조 따위가 딱히 아쉽지 않았다.
이 파티의 절정은 자기가 감사하고 싶은 것들을 떠올려 돌아가면서 말하는 것이었다. 이런 건 처음 보는 관례였다. 다들 뭐라 했는지 또 나는 뭐라 했는지 기억도 나지 않는다. 단지 모두들 돌아가며 감사를 음미하고 있는 그 분위기가 좋았다.
처음 생면부지로 만난 후 두 달 동안 각자의 거리에서 원 안으로 조금씩 좁혀져 온 우리의 거리가 거기서 딱 장작더미들로 모여 온기를 점화해낸 순간이었다. 둥그렇게 둘러앉은 우리들 한복판에는 보이지 않는 모닥불이라도 모락모락 타오르는 듯했다. 깊은 늦가을 우리의 시간은 그렇게 피어오르고 또 저물고 있었다.
니코는 가장 좋은 친구들과 함께 있는 것 그리고 예쁜 여자 친구가 옆에 와준 것에 감사하다고 말했다. 통 결석이라곤 하지 않던 니코는 이날 이후 처음으로 이삼일 가량이나 예외적인 결석을 했다. 여자 친구와 인근 비아리츠의 멋진 해변으로 떠났기 때문이다. 페이스북을 통해 보면 이들은 계속 좋은 커플로 지내다가 얼마 전, 세상에서 가장 행복해 보이는 결혼식 사진을 올렸다.